타임머신/옛사진읽기 613

1983년, 안양종합운동장 기공식 장면

#안양 #옛사진/ 1983년 안양공설운동장(현 안양종합운동장)의 기공식 장면입니다. 시흥군 안양읍 당시 안양 석수동 충훈부(석수동) 현 럭키아파트 자리에 공설운동장이 있었는데 1986년 6월 30일 비산동에 새 운동장을 건립해 이전합니다. 최근 작고하신 지역원로 변원신 어르신의 말씀에 의하면 그 이전인 1960년대 공설운동장 마련을 처음 논의하는 과정에서 안양9동 새마을지역을 후보지로 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석수동의 안양공설운동장은 1970년대 시흥군과 안양읍 당시 다양한 행사들이 치러졌으며 1977년 안양 대홍수때는 피난민 수용지로 대규모 천막들이 설치되기도 합니다. 이후 안양읍이 안양시로 승격하면서 안양시 공설운동장 설립이 추진돼 현재의 비산동에 새로 공설운동장을 마련하게 된 것이지요. 안양 안양종..

1946년 종친회 안양 선산을 찾은 백범 김구선생

백범 김구 선생께서 해방 직후인 1946년(일부 기록에는 1949년) 4월 5일 청명일(한식)에 안양을 다녀가셨는데 당시 관양동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얘기를 몇년전 들었습니다. 며칠전 김구 선생의 모습이 담긴 그때의 귀중한 사진을 입수해 소개해 드립니다.이 사진은 안양 토박이로 관양동에 사는 제 후배 김재훈님의 집 족보책에 있는 사진입니다. 족보에는 단기 4282년(1949년)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종친회 일부 기록에는 1946년이라고 되어 있어 확인이 필요합니다. 김구 선생이 안양에 오신 이유는 안양 관양1동 329-1에 안동김씨 대종친회 문영공(휘 恂:충렬공 3째 아드님) 산소가 있는데 참배하러 오신 것이지요. 당시 전국 종친 100여 명이 모여 절사(節祀)를 올리고..

1970년대 중반 안양시내 중앙로

#안양 #도시 #골목/ 1970년대 중반 안양시내 중앙로의 모습. 현재의 2001아울렛 사거리에서 서울 방향으로 찍은 사진으로 좌측이 중앙시장, 우측이 인양 일번가입니다. 사진 좌측에 단층의 읍민관(안양극장)을 허물고 빌딩이 들어서고 거리를 오가는 택시들이 현대 '포니'로 불때 1970년대 중반 이후로 사료됩니다. 사진자료-안양시청

1960년대 1번국도만 있던 시절의 안양읍내

#옛도시 #안양 #마을 #동네 #골목 #1960년대 1960년대 중반 안양시 만안구(당시 안양읍)의 모습입니다. 북쪽인 석수동 방향에서 남쪽인 안양1동 시내쪽을 항해 찍은 항공사진으로 안양읍내의 북부동(안양2동) 지역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변원신 어르신의 구술에 의하면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에는 대부분 오끼농장이 있던 자리였다고 합니다. 농장의 흔적은 1960년대에도 만안초등학교 북쪽, 안양보육원(현 좋은집) 인근에서 볼 수 있었지요. 사진 아래쪽 큰 건물이 만안초등학교입니다. 그, 앞으로 흐르는 하천이 수리산에서 안양9동과 3동을 거쳐 안양역 옆으로 흘러 다시 박달동쪽 안양천으로 연결되던 수암천입니다. 현재의 수암천 물줄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지요. 사진은 겨울의 풍경으로 하얗게 언 하천의 모습..

1980년대 초 안양역과 한국제지 안양공장 주변

네이버에서 안양을 검색하면 나타나는 사진으로 1980년대 초 안양역과 역앞 로터리의 풍경입니다. 사진 중앙은 안양역, 사진 윗쪽은 서울 방향으로 도로변에 시커멓게 보이는 곳이 연탄공장, 안양역 우측에 보이는 곳은 1958년에 설립된 한국제지 안양공장의 모습이며, 안양역앞으로 서울-수원간 1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지요. 사진 중앙의 시계탑이 세워진 원형 로터리에서 좌측길(삼원극장 방향) 초입에는 당시 유명세를 날렸던 대영카바레 건물(현재 짓다만 철골조 빌딩)이 보이고 로터리 윗쪽으로 시외버스터미널과 그 위에 수암천이 흐르고 있고요. 사진 좌측 아랫쪽에는 안양1번가로 들어가는 골복길도 보입니다. 당시 안양역은 1호선 전철과 함께 완행열차와 무궁화, 통일호가 간혹 정차하던 아주 단촐한 역이었으나 2002년 2만..

가왕 조용필이 작곡한 안양 비산초교 교가

대한민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일컫는 가왕 조용필이 초등학교의 교가를 작곡했다? 사실이랍니다. 사진에 보는 것처럼 경기 안양시에 있는 비산초등학교의 교가를 작곡했지요. 추적을 해보니 이 학교는 1978년에 설립되었는데 교가가 없었답니다. 80년 무렵 마침 이 학교에 조용필씨의 조카(조수지)가 다녔는데 학교측의 부탁을 받고 1983년 교가를 작곡해 주었다는 군요. 학교측에 따르면 작사는 당시 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전정술 교장 선생님'이 글을 썼다고 합니다. 조용필씨는 조카 수지를 무척이나 아꼈는데 그 애정은 일본 최고의 뮤지션들이 참여해 만들 10집 Part I의 네번째 트랙의 '수지'(조수지 작곡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조용필 작곡으로 저작권을 조카에게 선물했을 정도라는군요

1968년 안양 화단극장 삼거리

#안양 #화단극장 #타임머신/ 위 사진은 주한미군병사 닐미샬로프가 1968년에 컬러슬라이드로 촬영한 안양 화단극장앞 삼거리(안양여고사거리에서 구도로쪽)의 풍경이다. 화단극장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안양 최초의 극장으로 사진 삼거리 에서 우마차가 나오는 좌측 길로 가면 있었고 오른쪽 길은 안양역 방향이다. 아이스케키 가게 뒤로는 경부선 철길이 지난다. 아래 사진은 45년이란 시간이 흘러 2013년 12월8일에 같은 자리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1970년대 김중업 설계 유유 안양공장 전경

2013년 10월 19일 안양예술공원의 안양파빌리온 안내데스크 뒷편에서 빛바랜 한장의 사진 판넬을 발견했다. 1970년대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주)유유 안양공장(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212) 건물이다. 중초사지 절터를 유유 창립자인 유득한 씨가 1941년 매입해 6.25전쟁 이후인 1959년 5월 안양공장을 건립한 후 2007년 제천으로 이전하기 까지 운영되어 왔다. ㈜유유 안양공장에 자리한 사무동과 공장동 건물은 한국의 손꼽히는 건축가 김중업(金重業,1922∼1988)의 초기작품이자 50년대를 대표하는 산업건축물로 어려운 시대에 공장에 예술을 가미해 건축했다는 것은 높은 안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특히 사무동 지붕은 역보로 되어 있고 생산동은 캔트리버로 형성 삼성천의 시야를 확..

1963년, 안양역 재건호 탈선사고 대한뉴스 영상

1963년 2월 14일 안양역 인근에서 발생한 재건호의 탈선 사고 현장 모습이 담긴 대한뉴스(제404호,1963.02.16일 상영) 영상입니다. 재건호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던 특급열차의 명칭으로 이날 사고는 당시로서는 매우 큰 사고였기에 국무회의에서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부산발 서울행 재건호가 안양역으로 진입할 무렵의 안양시장(구시장) 건널목 앞에서 발생했는데 구경 나온 사람들로 구시장 인근이 혼잡할 정도였던 것이 생각납니다. 또 안양에서 과천으로 가는 길목이 막혀 버스가 호계동쪽으로 우회했지요. 당시 자료와 신문기사를 찾아보니 '재건호가 안양읍 남부포인트를 통과 직후, 기관차 뒤에 달렸던 보일라의 연결이 끊어져 객차 7량이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승객 20여명이 중경상을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