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1938년 안양소학교(현 안양초교) 1학년의 안양풀장 소풍

안양똑딱이 2016. 7. 20. 17:04

#안양 #역사 #기록 #기억 #사람 #응팔이다 #응답하라 #1938년 #안양풀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일제강점기인 소화 13년 4월 27일 안양풀장으로 소풍을 나서 안양소학교(안양초교) 1학년(8회? 졸업생) 학생들로 지금 85세의 어르신들이 아닐까 싶다. 
안양초등학교는 1929년 개교했으며 2015년으로 86회 졸업생까지 무려 38,186명을 배출한 안양의 역사와 함께했다. 
일제시대 때만 해도 안양에는 학교가 없었다. 그 당시 학생들은 먼 거리에 위치한 군포보통학교나 과천, 안산까지 등교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었다. 
학교 건립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안양 유지들과 주민들이 기성회를 조직하고 학교 설립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안양산업사 엄기승 사장과 당시 초대 서이면장인 조한구 씨도 학교 건립 모금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자금은 제대로 모이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안 동아일보에서 전국에 대대적인 홍보를 해줬다. 전국에 있는 많은 국민들이 성금 모금에 동참했고, 일본인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모금운동은 성공리에 이뤄졌다.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1929년 12월 20일 안양공립보통학교가 개교했다. 현재 안양초등학교의 전신이다. 처음에는 4년제로 유지되다가 후에 6년제로 바뀌면서 안양 교육 발전에 초석을 다졌다. 학교 정문이 당초에는 만안로변에 있었으나 현재는 서쪽에 정문이 자리하고 있다. 학교가 자리한 곳은 주접동과 남부동 사이에 있는 교하동(校下洞.敎化洞) <안양5동> 마을로, 구 한말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지역이 소나무가 무성했던 곳으로 학교가 설립되기 이전인 일제강점 후 왜병의 군사훈련장으로 이용되던 곳이라 한다.
교화동 마을의 유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 조선조 중엽에 이 마을에 어느 가난한 부부가 외아들과 함께 살았는데,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라 아들을 공부시킬 수 없게 되자, 그 아들이 서당 선생의 도움으로 무료로 글을 배워 노력 끝에 과거에 합격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그에게 높은 관직을 제수하려 했으나 끝내 사양하고, 오직 이곳 마을에 향교를 짓고 우매한 백성을 가르칠 것을 임금에게 아뢰자, 이에 감탄한 임금이 이곳에 커다란 집을 지어주고 敎化堂으로 명명해 주었는데, 그 후부터 이 주변의 마을을 敎化洞으로 부르다가, 1927년 안양국 민학교가 세워지자 학교 밑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校下洞 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한편 안양초교보다 더 오래된 학교는 과천초교와 군포 초교다. 군포초교는 1919년 조선총독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아 다음해인 1920 4월 1일에 군포공립보통학교로 설립됐다.
당시 【매일신보】는 1924년 11월 27일자에서. 군포시는 당시 행정구역상 시흥군 남면에 속해 있었는데 호수가 700호 미만의 작은 면이었으나 일찍이 교육과 산업에 대한 노력이 남달라 지역 유지와 주민들의 열의로 군포공립보통학교를 설립하였다고 그 설립이유를 적고 있다.
특히 일제의 교육정책에 의해서 당시 대부분의 소도시 초등학교 과정은 4년제로 중학교로의 진학이 어려운 실정이었으나 군포공립보통학교는 인근에서 유일하게 6년제 학교로 설립이 되었으여 이 때문에 4년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로 진학하려면 6년제 학교인 군포공립보통학교로 편입할 수 밖에 없어 주변지역인 의왕이나, 안양, 안산, 광명, 시흥지역에서 까지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아 1930년대까지도 통학난을 겪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