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941

[20260825]안양-판교간 57번 도로 확장 개통식(1998.11.09)

2026.08.25/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안양 #판교 #57번도로 #임창열안양-판교간을 잇는 57번 지방도로의 1998년 11월 9일 개통식 모습으로 57번 도로의 확장을 설계했던 임창열 민선2기 경기도지사가 개통테이프를 끊었다.안양판교로는 국가지원지방도 57호선으로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인덕원사거리(기점)에서 종점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백현1교차로(종점)를 잇는 12.3km의 도로이다.원래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길은 안양공동묘지 한복판을 통과해서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넘어가던 가로수가 울창한 2차로 도로였다. 계속되는 통행량 증가로 인해서 1990년대 후반에 4차로로 확장 및 개량되었고, 최종적으로 현재의 형태로 도로를 이설하고 직선화하여 2010년 판교신도시 조..

[20260824]1922년 발행 경성도 별첨수록 <경성부근교통약도>

1922년 발행된 경성도에 별첨지도로 수록된 경성부근교통약도이다. 1번국도(정조대왕능행차로-시흥대로)와 경부선 기차길이 표시돼 있으며 안양과 군포장이 일본어로 표기돼 있다. 은 일제강점 발행인 서울지도 중앙에서 가장 크고 큰 지도이다. 지도의 축척은 1:10,000이며, 1917년에 초판 인쇄된 후 1918 · 1921 · 1926년판 등이 연속 간행 패널, 1915년에 처음 측도測圖하고, 1921년에 제2회 수정도한 것을 그해 다음인 1922년 7월 인쇄 ·한 것이다. 저작권소유자는 조선총독부이고, 발행물 발행자는 의무량부이다. 가장 먼저 간행된 1917년판이 2장 1조, 이 지도는 4장 1조로 고양군 숭인면 · 뚝도면, 광주군준이 새로 추가된 것을 알 수 있다. 별도의 표시가 북쪽을 위쪽으로 향하게 ..

[20260824]버스와 트럭 등 차량들이 통과했던 1번국도 만안교

2026.08.24/ #아카이브 #안양 #만안교 #기록 #옛사진 #since1970/ 만안교가 1980년 현재의 자리로 해체 이전하기 전 원래 있던 곳으로 당시 다리위 1번국도를 버스와 트럭과들이 통과하는 모습이 담긴 기록으로 매우 견고하고 튼튼하게 축조됐음을 보여준다. 사진 뒤로 보이는 하얀 건물은 대륙석면(한국스레트) 고무공장으로 현재의 영화아파트가 들어선 자리다. 사진 오른쪽으로 안양유원지 들어가던 도로와 우측으로 안양시내 방향이 만나는 삼거리 교차로(안양 버스를 비롯 서울-수원 등 시외버스 정차)가 있었으며 당시 안양유원지쪽으로 땡댕댕 건널목(지금의 지하차도 상부)이 있었다.1795년(정조19)년에 축조된 만안교는 당초 안양천에 세워졌었다. 1905년에 경부선 철도를 부설하는 과정에서 안양천 물길..

[20260824]소설가 이무영(李無影) 군포에 직접 짓고 살던 집

2026.08.24/ #아카이브 #군포 #이무영 #소설가/ 군포시 지명유래 및 씨족역사 향토사료 학술조사용역 보고서에 수록된 사진으로 소설가 이무영이 군포에 직집 짓고 살던 집앞에서 찍은 사진으로 가족의 모습이 담겨있다.농민문학을 특기로 하는 소설가 이무영은 한국의 농민문학 선구자로 군포에 살던 당시 농촌을 소재로 한 소설을 많이 썼다. 그는 1935년 5월 동아일보사 학예부 기자가 되어 재직하다가 1939년 7월 퇴사하고 경기도 시흥군 군포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농민문학 창작에 열중하였다. 이 시기 이무영의 대표작이자 농민소설의 명작으로 평가되는 「제1과 제1장」(1939), 「흙의 노예」(1940)를 발표하였다. 1940년 4월 안양에 자리한 경성보육학원에서 조선문학과를 담당하며 생도감 겸 서무주임으로..

[20260820]안양 최초 사립여중 안양여자중학교 1960년 모습

2026.08.20./ #아카이브 #기록 #역사 #안양여중 #since1960/ 안양여자중학교의 초창기 모습으로 정문앞 공터(현재 재개발중)에서 학교 정문을 항해 찍은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찾아낸 사료에 1960년 촬영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안양시 만안구 안양로 357에 위치한 안양여중은 1952년 3월 22일에 개교한 사립중학교로 안양여자고등학교(1960년 개교)와 함께 있으며 대림대학교와 같이 대림그룹을 모기업으로 하는 대림학원 재단에 속해있다. 재단은 한때 안양여중고를 비산동 수푸루지 뒷산(현 대림대학교 자리)으로 이전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사진속 학교 정문앞 비포장도로는 현재의 중앙로이며 사진 우측 뒤로 비이는 산은 안양 석수동 꽃메산이다. 1960년대 까지 안양을 남북으로 괸..

[20260819]안양유치원 제4회(단기 4293년) 졸업기념 사진

2026.08.19/ #아키이브 #기록 #옛사진 #since1960 #안양유치원/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아카이브 자료에서 찾은 안양 최초의 유아교육기관으로 안양천주교회에서 1956년 설립해 운영을 시작한 안양유치원 제4회 졸업기념사진(단기 4293년3월30일)이다. 사진속 어린이들은 평균 1954년생들로 현재 칠순이 훌쩍 넘은 어르신들이 됐다. 중앙에 앉은 어른은 구요셉 안양천주교회 구천우 초대 주임신부님과 안양유치원 원감선생님이다. 사진속 장소는 안양유치원(이후 근로자회관-전진상복지관-가톨릭회관)건물앞이다. 구천우 신부님은 1954년 9월7일 안양성당의 초대주임신부로 부임해 성전 신축및 수리산공소 등을 돌보는등 약 10년간 안양지역 사목을 담당했으며 안양지역 최초의 유치원인 안양유치원을 1965년에..

[20260818]1970년대 안양유원지 포도 미팅장소 송도포도원

2026.08.18/ #아카이브 #옛사진 #안양포도 #안양유원지 #since1970/ 안양유원지 입구(현 안양예술공원 주차장) 근처에 자리했던 안양포도 재배 및 판매 농가 송도포도원 모습으로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83병기대대)에 근무했던 미군(닐미샬로프와 다른 미군)이 찍은 사진이다. 1950~70년대 안양시내는 물론 당시 시흥군 많은 지역에서 포도를 재배해 포도 서리를 통해 달콤한 맛도 볼수 있었다. 안양유원지에도 포도농가가 많았는데 삼성천 계곡 차가운 물에 몸을 담글수 있는 시기(7-8월초)가 끝나며 풀장과 수영장에서 보트타기를 하고 안양포도가 있는 8월말부터 9월에는 당도 높은 안양포도를 맛보러 오는 소풍객과 미팅과 야유회를 나온 대학생들이 많았다. 지금도 안양과 의왕 경계지역인 호계동 끝자락에는 ..

[20260808]1970년대 안양유원지 입구(지하차도)에 세워진 아치

2026.08.08. #아카이브 #기록 #옛사진 #since1960 #안양유원지 #유유산업 젊은 여성이 1960년대 안양유원지 가는 도로(현예술공원로) 길목에 설치된 아치 조형물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이 사진은 안양문화예술재단 등 안양시가 옛 안양유원지를 소개 리플렛 등 홍보자료로 많이 이용하는 기록물이다. 아치 조형물은 당시 안양유원지 초입에 있던 제약회사인 유유산업(현 안양박물관)에서 설치했음과 도로가 비포장에 아주 좁았음을 보여준다.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듯 아치에는 '반공' '방첩'이란 글귀도 쓰여져 있다. 아치 조형물로 세워진 곳은 현 안양유원지 지하차도(경부선 철길) 인근으로 추정된다. 현재 안양예술공원 사거리 하면 아르테자이 아파트단지앞 교차로를 말하지만 과거 안양유윈지 사거리라 하면 1번국..

[20260807]안양 석수동 미군부대 '캠프 핸드리치'라 불리웠다

2026.08.07/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안양 #since1969/ 안양 석수동에 있던 미군부대 83병기대대의 다른 이름 camp handrich로 표기된 부대 정문 모습으로 현재의 안양시 석수 e편한세상아파트 앞 골목인 경수대로 1201번길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83병기대대가 camp handrich(캠프 핸드리치)로 명명된것은 제2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 육군 군인으로 명예훈장과 동성훈장을 받았던 멜빈 오스카 핸드리치(1919.01.26~1950.08.26)의 명예를 기리기 위해 1969년 8월 4일 명명했다. 한편 안양 석수동에 자리했던 미 83병기대대는 특수탄약을 관리하던 부대로 안양 박달 군용지라 불리우던 수리산자락의 탄약 벙커에 있던 전술 핵탄두와 로켓을 관리.운영하던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