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20250704]의왕 왕곡동 초입에 있던 청풍김씨 묘문비각

안양똑딱이 2025. 7. 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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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는 청풍김씨 묘문으로 속칭 사면비이고 글씨체는 석봉공 한호의 글씨를 집자하였다. 조선 영조대왕 시절에 영의정을 역임하신 고정공(휘 치인. 시호 헌숙1716~1790)께서 1760년경 선영의 묘소에 석물을 설치할 시기에 함께 세운것으로, 원래의 자리는 삼남길에서 마을 초입인 복죽동 노변(왕곡동 604 왕곡초교 운동장)에 있었다. 묘문과 더불어 하마석이 노변(왕곡동296-2)에 있었으나 1978년경 개발로 유실되었다. 하마석의 크기는 가로4자 세로3자 두께2자의 크기이고 화강석으로 되어 있었다. 묘비는 1995년에 도시계획에 의하여 개발되면서 왕곡동 76에 이전하였으며 이후 2008년 왕곡로 확장공사로 왕곡동 586-2로 다시 이전했다.

 

의왕 왕곡동 입구에 있던 청풍김씨 묘석으로 청품 김씨는 이 곳에서 4대에 걸처 6명의 정승, 2명의 대제학을 배출하고, 삼대정승, 부자영상이란 희대의 명문거족으로서, 선영의 묘문비를 노방에 세워, 삼남도백을 위시하여 대소관원들이 부임인사나, 노재상 문후와 묘소참배 때에 노변 하마석에서 필히 하마하고, 도보로 마을 안으로 진입하게 하는 표석이기도 하다.

 

또한, 정조 임금이 아버지 진종(사도세자)의 묘소인 화산에 행차할 때에, 스승이자 좌의정이신 몽오공 (휘 종수 시호 문충 1728~1799)의 조상님이 이 곳에 묘가 있으므로, 스승님께 대한 예로 이 곳에서 정조임금이 선영을 향하여 하마를 하고, 예를 갖추고는 화산을 향했다는 일화가 있다.

 

의왕시 왕곡동은 왕륜과 지곡마을을 합쳐 부른 것이고 왕륜마을은 청풍김씨 입향조인 김우증이 연산군을 몰아내고 정국공신 3등이 되면서 백운산(), 오봉산(), 지지대(), 모락산() 사방십리를 사패지로 받아 형성된 마을이다.

 

김유(金楺, 1653~1719)의 선계는 입향조인 6대조 김우증, 5대조 김여광 그리고 김여광이 손이 없자 족문에서 양자온 고조부 김계, 증조부 김인백, 할아버지는 김극형이고 아버지는 전라감사 김징이다. 어머니는 함평 이씨로 양곡선생 이의길의 따님이다. 숙종대 홍문관 대제학을 역임한 문형 김유는 특히 그의 아들들이 현달하여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되는데 이는 차남 김취로가 이조판서를 4남인 김약로가 좌의정, 막내인 김상로가 영의정에 올랐기 때문이다.

 

김유의 원배는 전주 이씨 이명진(월산대군 후손)의 딸로 일찍 죽어 후사가 없고 계배인 여산 송씨(송박의 딸)에게서 53녀를 두었다. 차례로 김정로(좌랑), 김취로, 김성로(도사), 김약로, 김상로이다. 딸은 정석조, 황재하, 유봉에게 출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