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자료 337

[자료]마애종/문화유산에 대한 올곧은 이해의 자리가 되기를

[자료]마애종/문화유산에 대한 올곧은 이해의 자리가 되기를 [2008/11/14 안양민예총]이필운 안양시장 문화유산에 대한 올곧은 이해의 자리가 되기를 이 필 운 안양시장 금년에 벌써 3회째를 맞게 된 「安養世界 마애종 문화포럼」을 개최하게 된 것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안양의 문화유산 보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 자리를 마련 해 주신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안양지부 임종순 지부장님과 회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문화재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예지와 숨결이 깃들여 있는 소중한 보배이며, 자산입니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여 후손에게 전승하는 것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안양의 문화재를 대표하는 ‘마애종’은 암벽에 승려가 종을 치는 모습을 조각한 것으로 현..

[자료]마애종/민족의 가슴에 아름다운 울림으로!

[자료]마애종/민족의 가슴에 아름다운 울림으로! [2008/11/14 안양민예총]김용태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회장 민족의 가슴에 아름다운 울림으로! 김 용 태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회장 청명한 하늘만큼 가을의 풍성한 기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상황에서 오늘 [안양세계 마애종 포럼]이 참으로 진취적이고 뜻 깊은 자리로 여겨집니다. 우리 민예총은 자유와 평화를 꿈꾸며 군사독재에 저항하고 민주화에 앞장서며 시대의 고통을 함께 한 예술인 단체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얼마나 어려운 시기가 많았습니까? 하지만 선조들께서는 그때마다 새로운 희망으로 온 몸을 던져 등불이 되셨고, 그렇게 시대를 밝히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옛 것을 익히고 본 받아 새로움을 창조한다”는 ..

[자료]마애종/천년의 세월을 깨고

[자료]마애종/천년의 세월을 깨고 [2008/11/14 안양민예총]임 종 순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안양지부장 천년의 세월을 깨고 임 종 순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안양지부장 천년 전, 안양 관악산 골짜기에 화려한 사찰이 있었다. 신라와 고려의 정신적 토대를 이어가기 위해 수백의 수도승들과 최영 장군을 비롯해 젊은 인재들이 수양하던 곳. 그 사찰을 벗어난 외진 곳에 하천을 내려다보며 묵묵히 큰 바위가 서 있다. 그곳에 어느 이름 없는 석공이 바위를 쪼아 종을 그리며 자신을 새긴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화려한 사찰과 탑들은 흔적도 없고, 바위에 스님과 종(鍾)만이 마주하고 있다. 천년의 세월을 침묵한 종(鍾)이여! 세상에 함몰된 중생들을 깨우치기 위해 안양과 한민족의 안녕을 위해 어찌할 수 ..

[자료]안양 미륵은 어디로 갔나?

[자료]안양 미륵은 어디로 갔나? [10/15 마애종사랑] 안양 미륵은 어디로 갔나? 안양 미륵의 기록은 문헌적 기록은 거의 없고 다만 구전으로 전해 오는 설에 의지하고 있다. 안양미륵당 이란 말은 정조가 아버지능이 있는 화성(수원)을 가기 위해 기획한 園幸乙卯整理儀軌에 궁에서 수원(화성)까지 거둥의 안전을 위해 척후소로 24 곳의 塘馬를 설치하는 중에 제13 당마소가 安養彌勒堂站 이란 말이 있고 口傳에는 정조가 안양을 지날 때 번번이 말이 발길을 떼지 못 하자 그 연유가 미륵부처에게 불공을 드리지 않는 탓이라 하여 불공을 드리니 비로소 말이 움직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미륵을 언제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고 다만 그 위치는 지금의 안양역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구전에는 언제 ..

안양권에서 가장 오래된 군포장 얘기

안양권에서 가장 오래된 군포장 얘기 [2007/08/13 군포시티뉴스]리포터 - 장병연 추억에나 남아 있음직한 오일장, 지금은 개발로 인해 수도권주변의 오일장이 성남의 모란 시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라졌지만, 우리 군포에도 인근 사람들을 불러 모아 신나게 장을 벌렸던 유명한 이 있었다. 당시 군포장은 인근 충청도에까지 입소문이 흘러 장돌뱅이들과 장꾼들을 불러 모아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웬만한 장꾼들이라면 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컸던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어린 시절, 장날은 명절 다음으로 기다려지는 설렘이었다. 장에 가신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을 자반고등어와 총천연색이 어우러진 사탕, 그 사탕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줄무늬가 들어간 왕눈깔사탕이었..

안양은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의 효시

우리나라 영화 중 블록버스터의 효시는 어떤 작품일까. 영화진흥위가 지난 1월 발행한 연구보고서 ‘한국영화산업 구조분석’에 따르면 ‘쉬리’를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초 작품이라 했다. 하지만 ‘쉬리’가 우리나라 블록버스터의 효시는 아니다. ‘쉬리 ’가 31억원의 제작비(마케팅비 포함)와 초특급흥행(전국관객 약 580만명)이라는 기록을 남긴데다 강제규 감독이 이 영화로 100억원이나 벌었으니 한국형 블록버스터 하면 팬들이 제일 먼저 ‘ 쉬리’를 떠올리는 것 같다. 하지만 영화연구가 정종화씨의 주장은 다르다. “1960년대는 우리나라 영화의 전성기였어요. 그 당시에 지금의 블록버스터에 해당하는 영화가 여러 편 있었는데 권영순 감독의 ‘진시황제와 만리장성’은 초대형작품이죠. 한양영화사가 3500 만원을 들여 만든..

[자료]안양에서 출토된 금동佛像 이야기

[자료]안양에서 출토된 금동佛像 이야기 [2006/07/21 안양시홈페이지]百濟漢山光德(安養)寺址 채송화 스님에게 도서소개 도서명 : 百濟漢山光德(安養)寺址出土金銅阿彌陀如來坐像 저자 : 趙尙河 박사 (출판사 : 有韓社) 안양시립만안도서관 제75793호 (2006년 4월 20일 기증본) 귀한 책 한 권 소개하겠습니다. 서울 시내 큰 서점에서도 찾지 못하여 하는 수 없이 저자 조상하 박사님이 안양시립도서관에 기증한 책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첨부의 사진이 바로 그것입니다. 경기도 시흥군 동면 안양리(현 안양유원지) 소재 안양사지와 중초사지로 알려져 있던 古寺刹址에서 1973년10월20일 한 농부가 개 사육장을 짓기 위해 집 뒤 밭을 파던 중 지하 1m 지층에서 진흙덩어리를 발견하고는 돌인 줄 알고 집어던졌다..

[자료]박달동 군용지(軍用地) 사건(1)

[자료]박달동 군용지(軍用地) 사건(1) [06/23 안양시민신문]성결대학교 교수·안양학연구소 소장 박달동 군용지(軍用地) 사건(1) ‘새 시대 정의사회구현과 복지국가건설 및 국토통일 대성업을 완수하시기 위하여 불철주야 심혈을 기울여 오신 대통령 각하의 노고에 대하여 우리 농민 일동은 진심으로 무한한 경의를 표합니다. (-중략-) 따라서 어느 때보다도 전 국민의 단합과 일사불란한 국력의 비축이 중요한 이때에 변방의 소사로 심려를 끼쳐드리게 됨은 「백성의 억울함은 임금의 아픔」이라는 옛 성현의 가르침을 쫓음이오니 저의 농민들의 하소연을 통촉하시와 진위옥석을 가려주시옵고 정의사회의 참뜻과 실상을 만천하에 밝혀 주시옵기 간망합니다’ 위 글은 1980년대 초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안양시 박달동 농지경작인 일..

[자료]안양에서 덕장골까지

[자료]안양에서 덕장골까지 [02/27 네이버블로그]귀천/귀향/귀인 도시가 농촌을 먹어버리는 모양을 표현하는 데 잠식(蠶食)이라는 말이 적절할 듯하다. 누에가 야금야금 뽕잎을 먹어가듯이 도시화(urbanization)가 이루어졌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 도시화의 파도에 잠겨버렸다. 시골에서 유소년기를 자란 나로서는 도시라는 괴물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긴 것 같은 박탈감을 늘 가지고 있다.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어디 변화되지 않은 곳이 있으랴마는 지금 가보면 그야말로 알 수 없게 변화된 곳이 안양과 덕장골 사이이다. 안양은 하루에 몇 번씩 기차가 지나다니고, 플라타너스 가로수 사이로 차들이 왕래하던 지방의 소읍이었다. 삼막사 아래로 안양풀장이라는 유원지가 있었고, 근처에는 포도밭이 많았다. 안양을 산자수명..

[자료]일제강점기 안양에는 비행기공장이 있었다

2005년 8월15일, 광복된지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친일파 후손의 땅 소송이 줄을 잇는 반면 친일파 명단이 속속 발표되며 안양지역 또한 친일 수탈의 아픔과 흔적들을 간직하고 있다. 역사에 담긴 기록들을 재조명한다. 최근 일제에게 비행기를 헌납한 친일 인사들과 단체들의 명단이 일부 공개된 가운데 일제 침략의 수단인 전투기를 제작해 제공하던 비행기 제작공장이 안양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이곳에서 생산된 비행기가 친일파들에 의해 헌납까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체육공원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지만 안양9동 채석장 역시 일제가 경부선 철도의 명학에서 평택까지 구간을 부설하며 자갈채취와 운반을 위해 1901년께 바위산을 온통 파헤치는 등 안양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