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자료 494

[20240109]제1회 안양시민미술전 포스터(1988년)

2024.01.09/ #아카이브 #기록 #안양 #미술전 #포스터/ 1988년 10월 20일부터 23일까지 안양미술관에서 개최된 《제1회 안양시민미술전》의 홍보 포스터로 이억배 작가가 보관해왔던 자료다. 제1회 안양미술전은 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에서 주최하였는데 참여작가는 임용덕, 이호규, 이소영, 임현순, 이경애, 이경덕, 이경옥, 김명수, 엄경자, 안경란, 김미식, 이춘옥, 황은하, 신명자, 장미옥, 강순영, 이애숙, 김희형, 홍대봉, 이강식, 박찬응, 이억배, 정유정, 권윤덕, 권애숙, 김한일, 이정아, 주완수, 황용훈, 류봉현, 이명숙, 한동희, 김부예, 장도용, 임효숙, 한범희, 하은희, 김연금, 한은경, 김윤형, 김영희, 곽인혁, 박순항, 한정현, 정승각, 이기석, 황미영, 박관식, 박신자 ..

[20240109]서울의 관문 과천과 남태령 옛이야기

함께쓰는 과천시지 훝어보기 http://www.gcbook.or.kr □ 과천의 행정구역 변화 과천은 삼국시대애는 고구려의 '율목(栗木)' 또는 '동사흘(冬斯 )' 또는 '율목군(栗木郡)'이었다. 이를 신라 제35대 경덕왕이 '율진군(栗津郡)'으로 고친 것을 고려 초에 '과주(果州)'로 고쳤고, 8대 헌종 9년(1018)에 이를 광주(廣州)에 붙였다가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3대 태종 13(1413)에 지금의 이름인 '과천(果川)'으로 고쳐서 현감을 두었는데, 다음 해에 금천(衿川.지금의 서울 금천구와 시흥시 일부)에 합쳐 '금과(衿果)'라 하였다가 두어 달 만에 복구되고, 7대 세조 때에 다시 금천에 합하였다가 얼마 안 가서 또 복구하였다. 그리고, 조선 말인 고종 32년(189..

[20240109]과천과 남태령 옛길

며칠씩 묵으면서 과거장에서 갖추어야 할 예절과 기풍등을 매사에 빈틈없이 익히 고 수련한 다음 과거 전날은 이 산 자락에서 흐르는 맑은 시냇물에 몸을 정갈하게 닦고, 서울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해서 과거를 보 러가는 과객들이 목욕을 하는 시내라 해서 과천(科川)이라는 지명이 붙게 되었다고도 하고 과거 보러 가는 과객들이 묵어가는 촌 이라 해서 과촌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점차 실과 果자를 붙혀서 부르게 된 오늘의 과천이라고 전해옵니 다. http://www.gctour.go.kr/gctour/kor/infor/intro_5_9.jsp 서울서 한강을 건너, 노량진 나루에 이르고, 다시 흑석동(黑石洞)을 지나 강변을 끼고 한강을 바라보면서 동작동(銅雀洞) 이수교(梨水橋)를 우편으로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