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진기록 1692

[20170615]흉칙한 안양 문예로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2017.02-06/ #안양 #나무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전지/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멋진 안양6동의 문예로. 2017년 2월10일 전지작업(가지치기)이란 명분 아래 싹둑싹둑 잘라내 그야말로 흉칙할 정도로 벌거숭이로 만들어 놓았던 나무들이 6월이 되니 푸릇푸릇 조금씩 나오는 잎새들이 벌거벗은 나무들의 가지들을 가려주니 그나마 좀 낳네요. 안양시의 가로수 전지작업(가지치기)은 왜 저렇게 까지 해야 하나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무지막지함에도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거기에 사업 발주를 통해 적지않은 예산이 소요됨은 물론이다.

[탐사35]안양3동 양짓말 언덕위 동네(2013.12.14)

2013년 12월 14일 안양기억찾기 탐사대가 35차 여정으로 찾은 곳은 안양3동 양지마을(양짓말) 뒷편의 언덕위 동네입니다. 이날 하얀 눈이 소복히 내려 비탈길을 어떻게 올라갈까 걱정을 했는데 동에서 했는지, 주민들이 했는지 차량이 다니는 길에는 염화칼슘이 뿌려져 있네요. 눈발이 좀 그치자 비탈길을 올라 오밀조밀한 동네 골목길에도 아저씨에 젊은 청년에 할머니까지 이집 저집에서 동네 주민들이 나와 눈을 치우는데 이젠 도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 이 동네 주민들에게는 익숙하고 당연한 듯한 표정들입니다. 양짓말(양지마을)은 이 마을의 지세가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예로 부터 '양짓말'로 불리우다 행정명칭인 양지동(陽地洞)으로 지금은 안양3동이라 불리우지요. 안양3동에는 1928년에 안양 ..

[탐사33]안양3동 대농단지 골목길1(2013.11.30)

2013년 11월 마지막 날인 30일 안양기억찾기 탐사대가 33차 여정으로 찾아간 곳은 안양 박달1동과 안양3동의 대농단지라 불리우는 곳입니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인 1932년 일본인들에 의해 군복용 광목을 생산하는 조선직물주식회사가 설립되고 조선견직이 들어섰던 대규모 공장이었지요. 이 곳에는 1938년 조선총독부의 지시로 화신백화점 총수였던 박흥식이 해방을 앞둔 1944년 8월19일 자본금 5천만원(당시화폐)으로 부지 3만평에 건평 1만평 규모의 초대형 조선비행기주식회사를 설립합니다. 조선비행기주식회사의 설립과정은 박흥식에 대한 반민특위 공소장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는데, 인근 토지를 몰수하는 등 총독부 힘을 빌려 접수해 비행기공장을 건설하였으며 생산시설은 조선군사령부 병참부의 중개로 만주 관동군의 지원..

[탐사32]공개탐사/안양 상록.명학마을(2013.11.23)

2013.11.23/ #안양 #마을 #동네 #골목 #안양탐사대 #32차/ 안양탐사대 32차 여정은 늘푸른안양21실천협의회가 주최하고 마을자치위원회가 주관한 제2회 마을축제 '마을의 기억 꿈꾸는 내일' 행사인 11월 23일 안양8동 상록마을과 명학마을의 골목길 탐사에 함께 했습니다. 10여년의 도심숲 지키기 운동을 통해 시민품으로 돌아온 명학공원(옛 경기도 가축위생시험소 부지)에서 숲 지키기 운동의 역사를 공원 한 귀퉁이에 초라하게 자리한 200년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장려상 표지판을 보며 시작한 탐사 여정은 상록마을의 골목길과 혜진.예슬이의 아픔이 담긴 천국으로 가는 계단도 둘러보고, 항상 굳게 닫혀 있었는데 이날 마침 문이 열린 해성농장에도 살짝 들어가 보고, 명학마을 지명 유래라 할 수 있는 ..

[탐사31]안양 관양동과 동편마을 일대(2013.11.17)

2013년 11월 17일 안양기억찾기 탐사대의 31차 여정은 관양시장을 출발해 연륜이 있는 아파트 만큼이나 단풍나무가 단지내에 곱게 핀 관양현대아파트를 지나 언론에 보도된 이순자 땅이 어디인지를 찾아보았습니다. 이어 관악산 산림욕장의 아름다운 풍광과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 관양지구로 불리우는 동편마을 둘레길을 한바퀴 돌아보고 관양동 주택가에서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골목길을 담아 보았습니다.

[20170513]삼남길 1구간 '과천-안양' 한양관문길

#옛길 #삼남길 #도보 #걷기 #1구간 #한양관문길 #과천 #안양 #남태령 #온온사 #시흥향교 #가자우물 #찬우물 #인덕원터 과거 옛길을 보면 조선시대에 전국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있었다. 1970년 신경준과 홍봉한 등이 영조의 명에 따라 편찬을 시작한 『증보문헌비고』 라는 책은 전국의 도로를 총 9개로 정리하고 있고, 신경준의 『도로고』 는 6개, 김정호의 『대동지지』 는 전국의 도로를 10개로 정리하고 있다. 이들 도로는 의주로 가는 길을 첫 번째 길로 해서 시계 방향으로 순서를 매겼는데, 중국과 통하는 의주대로, 일본을 오가는 사신들이 이용했던 영남대로, 한양과 삼남지방을 이었던 삼남대로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 길들을 통해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가교 역학을 수행했고, 조선 시대에는 ..

[20170513]안양, 조선시대 만안교.사찰 등 석재 채취 현장?

#안양 #석재 #돌 #만안교 #안양사지 #중초사지 #채석/ 우리 조상들은 청동기 고인돌 시대부터 돌을 잘라내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방법은 잘라야 할 선에 따라 구명들을 열지어 파고 마른 단단한 나무를 구멍에 박고 물을 부으면 나무가 팽창하면서 그 단단한 돌도 쪼개지지요. 안양예술공원 주차장 건너편 낙원마을 뒤 산자락(안양2동 예술공원 118번길 21-27 뒤)에 오르면 커다란 바위들이 있는데 일부 바위는 돌을 잘라낸 흔적이 있고 일부 바위는 돌을 잘라내기 위해 구멍을 뚫어놓은 것들도 있습니다. 과거 여기서 잘라낸 석재들은 인근의 만안교를 놓는데 또는 중초사와 안양사의 당간지주, 석탑 등을 만들때 쓰였졌을 수도 있습니다. 이 현장은 안양2동 어르신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던 곳인데 김귀연 전 안양2동주민자치..

[20170517]안양 최고의 단독주택단지로 바뀐 낙원마을

2017.05.17/ #안양 #낙원마을 #안양예술공원 #전원마을/ 안양시 안양2동 안양예술공원 김중업박물관에서 동남쪽 산자락에 보이는 단독주택단지 낙원마을. 아마 안양에서 가장 고급 단독주택단지가 아닐까 싶은 이 곳은 2004년까지만 하더라도 안양시가 지정한 전통마을이 있던 곳이다. 낙원마을은 1950년대만 하더라도 험준한 산골이었는데, 1959년경, 박정원와 안학순 부부가 이 마을에 정착해 식수로 사용하던 ‘화심천’(和心泉) 우물이 건강에 좋다고 소문이 나자 이곳으로 이사오는 사람들도 늘어나면서 ’65년 45호에서 ’70년에는 90여 세대로 늘어나 400명을 육박했다. 마을 주민들은 이 우물을 자신들의 생명수요, 어머님의 젖줄이라 생각해 1985년부터 마을합동행사로 ‘우물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평..

[20170517]안양예술공원 낙원마을 뒷산의 쌍무덤과 상석

2017.05.17/ #안양 #무덤 #상석 #봉분 #안양2동 #안양예술공원/ 안양예술공원 낙원마을 뒤 산자락에 있는 무덤. 관리가 안된지 아주 오래된듯한 무덤은 세월만큼이나 나즈막하게 주저앉은 쌍 봉분앞에 큼지막한 상석이 놓여져 있다. 한쪽 봉분위로 참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수령이 50년은 됨직한걸 보니 이 무덤은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석의 크기로 볼때 무덤의 주인공이 평민은 아닌듯 싶다. 무덤속 주인공들이 궁금하다.

[탐사30]안양 박달동(5) 박달1동사무소 주변(2013.11.09)

2013년 11월 9일 안양기억찾기 탐사대의 30차 여정,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우산을 쓰고 찾아간 곳은 박달1동주민자치센터 주변과 박달시장입니다. 박달동이 워낙 커서 다섯번째 동네와 골목길을 누볐는데 오늘에서야 박달2동에서 박달1동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볼거리가 많아 앞으로도 두번은 더 돌아야 할 것 만 같습니다. 박달1동은 안양여고 뒷편으로 예전에 안양2동과 함께 북부동이라 부르던 곳이지요. 안양2동 대농단지가 즐어서기전에는 구역이 잘 정리된 곳에 단독주택들이 쭈욱 들어섰던 안양 원도심에서 부자동네중에 한곳이었지요. 지금도 골목길이 사방팔방으로 쭉쭉 뻗은 것이 만안구에서는 보기드물게 시원하기만 합니다. 이곳도 주거문화의 흐름과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중 한곳입니다. 간혹 옛날 한옥주택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