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균]독수리가 하늘로 치솟는 수리산
[2007/07/18]
[2007/07/18]
수리산은 군포, 안양, 시흥 3개시의 진산이며, 시민의 안식처다. 이 산은 한강남방에서 관악산, 청계산과 더불어 수도 서울을 감싸고 있는 명산이다. 군포시에서 바라보면 그 능선이 병풍처럼 싸고 있다.
한국민은 서북풍을 가장 무서워한다. 하늬바람이다. 예부터 소한에 나간사람 찾지 말라 했으니 겨울 추위는 생사여탈을 결정하는 염라대왕격 이었을 게다.
그러나 사람이 출생할 때 서풍이 불면 검소한 사람이 탄생하고, 남풍이 불면 사치스러운 사람, 북풍엔 전사(戰士)가, 동풍엔 부자가 그리고 바람이 없는 날엔 바보가 탄생한다는 속설도 있다니, 바람 그것은 우리에겐 필요한 자연현상이 아닐까.
새봄이 찾아왔다. 꽃샘추위도 찾아왔었다. 그러나 꽃샘추위에도 꽃은 피었다. 새봄 반갑지 않은 손님 황사(黃沙)가 찾아왔다. 황사는 우리나라 서북쪽 방향 몽골,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서북살풍(西北殺風)이다. 큰 트럭 5000여대 모래 먼지가 우리 땅으로 불어온다니 상상을 초월하는 먼지바람이 아닌가. 옛날우리 선조들은 한양 땅에서는 인왕산 필운대의 살구꽃, 성북동일대 북둔의 복숭아꽃 흥인문밖 버드나무구경을 가장 즐거운 봄나들이로 생각했다. 꽃구경과 함께 흥을 돋구는 것은 ‘꽃달임’ ‘화전놀이’였다.
“봄은 무르익었을 때보다 다가오는 그때가 제일이라 했다. 또 새로운 생명이 막 깨어나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봄의 정수”라 했다.
옛사람들은 자연의 변화를 보고 계절을 깨우쳤으니, 볕이 좋은 개울가, 산에 올라 즐기던 봄놀이, 동그랗게 빚은 찹쌀떡 위에, 진달래꽃(참꽃) 올려 부친 참꽃 부침, 그것은 우리 선조들의 즐거운 봄맞이 행사였다. 우리들 천마산 야생화(들꽃)모임의 이 새로운 봄 최대과제는 식물촬영이다. 새벽에 일찍 산을 찾아가 해뜨기도 기다리고 새로 나온 봄꽃 동산을 살펴가면서 디카(디지털카메라)에 담아 넣는 일이다. 새봄 디카 래리는 수리산을 찾아가게 되었다. 변산 바람꽃이 수리산 태을봉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멀리 변산반도까지 갈 시간이 없으니 일요일 수리산을 찾아갔다.
월간 <사람과 산>잡지사에서는 한국산악 문학상 작품 공모를 내보내고 있다. 산행 중이나 산행 후에 산에 관한 기록을 정리하는 일이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닌듯 싶다.
땀을 흘리며, 숨이 턱에 차고 다리가 아프면 쉬어야 될 때는 쉬어야 하니 필기구 챙겨 기록하는 일은 엄두도 못낼 때가 허다하다. 반드시 기록해야 할 것을 기록하지 못할 때는 아쉬움도 많았다. 배낭 속에는 볼펜과 작은수첩을 넣어 다니고 있지만, 잊어버리기 일쑤이고 일기가 나쁠 땐 볼펜은 좋은 필기구가 아니다.
실험실습 데이터를 적을 때처럼 연필을 쓰는 것이 현명한 기록법이다. 테스트튜부에 연필로 라벨을 하여 냉장고에 넣어두면 절대로 번지지 않고 남아 있으니까!
최근 신문지상에는 속리산 문장대만을 고집하여 900여회를 등산한 건족할아버지 이야기가 화제로 나왔다. 사실 어떤 산의 등산회수를 기억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또 1000회를 채우겠다고 하시니….
우리산은 사시사철 그 얼굴을 바꾸고 있으니 하나의 산을 그래도 알려면 철따라 산을 찾아야 한다. 향생화를 취미로 하는 등산인들은 한 달에도 몇 번 가보아야 그 많은 들꽃들이 일주일을 멀다 않고 피고 지는 모습을 디카에 담을 수 있다.
등산 중에 다른 산 이야기가 나오면 가보았다는 사람, 가보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으로 편이 갈리고, 분명히 같이 등산했었는데 바득바득 아니라고 하는 사람…. 사람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어 아니라고, 같이 갔었다 우겨도 우스갯소리로 박박우기면 이긴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사관(史官)들의 사초(史抄)가 기록의 기초가 되었으니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존경스럽다.
서울근교 경기도 안양시, 군포시 그리고 안산시 지도를 살펴보며 수리산(修理山·488m)과 수암봉(秀岩峰·395m)은 등산지도를 펼쳐보니, 수리산 밑으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가 동서로 관통하며 서해안 고속도로로 신갈 안산간 고속도로도 산 남쪽에서 관통하니, 많은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수리산은 군포, 안양, 시흥 3개시의 진산(鎭山)이다. 3개시민의 안식처다. 이 산은 한강남방에서 관악산, 청계산과 더불어 수도 서울을 감싸고 있는 명산이다. 군포시에서 바라보면 그 능선이 병풍처럼 싸고 있다. 그래서 군포시 북서쪽에서 가장 큰 산으로 솟아있다.
태을봉(489m)을 중심으로 남서쪽에 슬기봉(451.5m) 북쪽에 관모봉(426.2m) 북서쪽에 수암봉(395m)이 포진하고 있다. 수리산(태을봉,슬기봉)은 군포시 서쪽에선 남북으로 형성되어, 안양시와 군포시 경계를 긋고 있다. 수리산 능선은 동서로 군포시를 양분하고 있다.
수리산은 독수리가 하늘로 치솟는 형상을 하고 있다. 수리산의 빼어난 산봉우리의 바위가 독수리처럼 생겼다고 한다.
신라 진흥왕 때 오늘의 속달동에 위치해있던 수리사(修理寺)가 있었는데 신심(信心)을 닦는 성지(聖地)라 하여 수현사(修現寺)로도 불렸고, 산 이름도 수현산으로 불려온 적도 있다고 전한다. 조선왕조에 와서는 왕손이 수도하던 곳이라 하여 ‘수李산’으로 부르기도 하다가 수리산이 되었다는 속설도 있다.
일부 풍수연구가들은 먼 옛날 천지개벽 때, 서해 바닷물이 이 산 위까지 들어와 수리가 앉을 만큼 남았다 하여 수리산이 되었다고 한다.
안산지방의 옛 전설에는 수암봉(秀巖峰)의 옛 이름인 독수리암(鷲岩)에서 유래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온다.
북애노인(北崖老人)의 ‘규원사화(揆園史話)’ 상권 단군기 속에는 동방의 여러 산들은 마이(馬耳)나 마니(摩尼)라는 이름을 가진 산들이 많은데 마이, 마니는 머리두(頭)자의 머리에서 유래한다고 보면 광주 수리산(修理山)이나 수리산(취산(鷲山))은 독수리봉을 뒷받침하는 속설이라 할 수 있다 했다. 수리산은 서울에서는 4호선 지하철을 이용하면 쉽게 찾아 갈 수 있다.
몇 년 전 수리산을 찾아갔을 때는 지하철 4호선 산본역에서 내려 용진사를 찾아 산행을 시작하였었다. 이제는 산본역 다음에 수리산역이 등산기점 플랫폼을 밟으면 수리산 입구 표시가 있고 아파트 숲을 찾아가야 되니 526동쪽에서 길을 찾아가라는 친절한 안내판이 서있다.
수리산은 평지에서 갑자기 솟은 듯 산계는 봉우리와 절벽이 규암으로 단단한 돌로 되어있고, 땅을 밟게 되는 육산이나 군포시쪽 능선은 예사롭지 않다.
산계곡은 풍화에 시달인 흑운모호상 편마암으로 비쭉비쭉, 날카로운 돌이 있는가 하면 시루떡 같은 편평석이 층을 이루어 놓았다. 학리적으로는 돌 모양은 안구상 편마암이 많고 부분적으로 백운모 및 흑운모 편암이 특징이다.
수리산은 6·25 전쟁 당시 치열한 전쟁터였다. 슬기봉지나 태을봉 찾아가는 능선길에는 독수리요새라 부르고 싶은 낭떠러지 바위지대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군포시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는 표현을 쓰는 듯싶다.
전쟁의 상처는 수리산 임상(林象)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다. 인공조림지역이 대부분이다. 독수리 요새, 봉우리에는 침엽수 소나무도 있지만, 활엽수가 반쯤, 혼성(효)림이 1/3정도다.
침엽수도 30% 되니까 보기 좋은 산이다. 수리산 등산로는 속달동, 병목안, 창박골에서도 올라 갈 수 있다.
속달동에는 경기도 유림 327ha가 있어 경기도 산림환경 연구소가 들어서 수목연구와 조사업무를 하고 있다.
속달동 수릉터 당숲에서는 음력10월 1일부터 2일간 동제(洞祭)가 열린다. 아름다운 마을 숲이다. 수리산은 100대 인기 명산 중 45위의 산이다.
2002년 생명의 숲으로 산림청은 제3회 아름다운 숲으로 전국대회 우수상을 받았다. 숲은 100~300년된 고목이 자랑거리다. 조선왕조 중기의 문신 정재륜(鄭載崙 1648~1723) 선생과 그의 부인 숙정(淑靜)공주의 무덤이 있어 조성한 숲이다.
안양, 안산, 군포시는 수암봉 인근에 각각 시에서 운영하는 삼림욕장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국민건강을 위한 지자체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군포시쪽 수리산은 암석덩어리 낭떠러지다. 들꽃 찾기 힘들다. 성결신학대학 이세종 교수는 ‘수리산고(修理山稿)’에서 수리산을 평안한 산으로 기술하였다. 병목안 계곡을 찾아 내려가면서 계곡에서 현호색 군락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큰 소득이었고, 꿩의 바람꽃, 노루귀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잊지 않고 들고 갔던 수첩과 볼펜이 부끄럽지 않았다.
한국민은 서북풍을 가장 무서워한다. 하늬바람이다. 예부터 소한에 나간사람 찾지 말라 했으니 겨울 추위는 생사여탈을 결정하는 염라대왕격 이었을 게다.
그러나 사람이 출생할 때 서풍이 불면 검소한 사람이 탄생하고, 남풍이 불면 사치스러운 사람, 북풍엔 전사(戰士)가, 동풍엔 부자가 그리고 바람이 없는 날엔 바보가 탄생한다는 속설도 있다니, 바람 그것은 우리에겐 필요한 자연현상이 아닐까.
새봄이 찾아왔다. 꽃샘추위도 찾아왔었다. 그러나 꽃샘추위에도 꽃은 피었다. 새봄 반갑지 않은 손님 황사(黃沙)가 찾아왔다. 황사는 우리나라 서북쪽 방향 몽골,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서북살풍(西北殺風)이다. 큰 트럭 5000여대 모래 먼지가 우리 땅으로 불어온다니 상상을 초월하는 먼지바람이 아닌가. 옛날우리 선조들은 한양 땅에서는 인왕산 필운대의 살구꽃, 성북동일대 북둔의 복숭아꽃 흥인문밖 버드나무구경을 가장 즐거운 봄나들이로 생각했다. 꽃구경과 함께 흥을 돋구는 것은 ‘꽃달임’ ‘화전놀이’였다.
“봄은 무르익었을 때보다 다가오는 그때가 제일이라 했다. 또 새로운 생명이 막 깨어나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봄의 정수”라 했다.
옛사람들은 자연의 변화를 보고 계절을 깨우쳤으니, 볕이 좋은 개울가, 산에 올라 즐기던 봄놀이, 동그랗게 빚은 찹쌀떡 위에, 진달래꽃(참꽃) 올려 부친 참꽃 부침, 그것은 우리 선조들의 즐거운 봄맞이 행사였다. 우리들 천마산 야생화(들꽃)모임의 이 새로운 봄 최대과제는 식물촬영이다. 새벽에 일찍 산을 찾아가 해뜨기도 기다리고 새로 나온 봄꽃 동산을 살펴가면서 디카(디지털카메라)에 담아 넣는 일이다. 새봄 디카 래리는 수리산을 찾아가게 되었다. 변산 바람꽃이 수리산 태을봉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멀리 변산반도까지 갈 시간이 없으니 일요일 수리산을 찾아갔다.
월간 <사람과 산>잡지사에서는 한국산악 문학상 작품 공모를 내보내고 있다. 산행 중이나 산행 후에 산에 관한 기록을 정리하는 일이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닌듯 싶다.
땀을 흘리며, 숨이 턱에 차고 다리가 아프면 쉬어야 될 때는 쉬어야 하니 필기구 챙겨 기록하는 일은 엄두도 못낼 때가 허다하다. 반드시 기록해야 할 것을 기록하지 못할 때는 아쉬움도 많았다. 배낭 속에는 볼펜과 작은수첩을 넣어 다니고 있지만, 잊어버리기 일쑤이고 일기가 나쁠 땐 볼펜은 좋은 필기구가 아니다.
실험실습 데이터를 적을 때처럼 연필을 쓰는 것이 현명한 기록법이다. 테스트튜부에 연필로 라벨을 하여 냉장고에 넣어두면 절대로 번지지 않고 남아 있으니까!
최근 신문지상에는 속리산 문장대만을 고집하여 900여회를 등산한 건족할아버지 이야기가 화제로 나왔다. 사실 어떤 산의 등산회수를 기억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또 1000회를 채우겠다고 하시니….
우리산은 사시사철 그 얼굴을 바꾸고 있으니 하나의 산을 그래도 알려면 철따라 산을 찾아야 한다. 향생화를 취미로 하는 등산인들은 한 달에도 몇 번 가보아야 그 많은 들꽃들이 일주일을 멀다 않고 피고 지는 모습을 디카에 담을 수 있다.
등산 중에 다른 산 이야기가 나오면 가보았다는 사람, 가보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으로 편이 갈리고, 분명히 같이 등산했었는데 바득바득 아니라고 하는 사람…. 사람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어 아니라고, 같이 갔었다 우겨도 우스갯소리로 박박우기면 이긴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사관(史官)들의 사초(史抄)가 기록의 기초가 되었으니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존경스럽다.
서울근교 경기도 안양시, 군포시 그리고 안산시 지도를 살펴보며 수리산(修理山·488m)과 수암봉(秀岩峰·395m)은 등산지도를 펼쳐보니, 수리산 밑으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가 동서로 관통하며 서해안 고속도로로 신갈 안산간 고속도로도 산 남쪽에서 관통하니, 많은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수리산은 군포, 안양, 시흥 3개시의 진산(鎭山)이다. 3개시민의 안식처다. 이 산은 한강남방에서 관악산, 청계산과 더불어 수도 서울을 감싸고 있는 명산이다. 군포시에서 바라보면 그 능선이 병풍처럼 싸고 있다. 그래서 군포시 북서쪽에서 가장 큰 산으로 솟아있다.
태을봉(489m)을 중심으로 남서쪽에 슬기봉(451.5m) 북쪽에 관모봉(426.2m) 북서쪽에 수암봉(395m)이 포진하고 있다. 수리산(태을봉,슬기봉)은 군포시 서쪽에선 남북으로 형성되어, 안양시와 군포시 경계를 긋고 있다. 수리산 능선은 동서로 군포시를 양분하고 있다.
수리산은 독수리가 하늘로 치솟는 형상을 하고 있다. 수리산의 빼어난 산봉우리의 바위가 독수리처럼 생겼다고 한다.
신라 진흥왕 때 오늘의 속달동에 위치해있던 수리사(修理寺)가 있었는데 신심(信心)을 닦는 성지(聖地)라 하여 수현사(修現寺)로도 불렸고, 산 이름도 수현산으로 불려온 적도 있다고 전한다. 조선왕조에 와서는 왕손이 수도하던 곳이라 하여 ‘수李산’으로 부르기도 하다가 수리산이 되었다는 속설도 있다.
일부 풍수연구가들은 먼 옛날 천지개벽 때, 서해 바닷물이 이 산 위까지 들어와 수리가 앉을 만큼 남았다 하여 수리산이 되었다고 한다.
안산지방의 옛 전설에는 수암봉(秀巖峰)의 옛 이름인 독수리암(鷲岩)에서 유래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온다.
북애노인(北崖老人)의 ‘규원사화(揆園史話)’ 상권 단군기 속에는 동방의 여러 산들은 마이(馬耳)나 마니(摩尼)라는 이름을 가진 산들이 많은데 마이, 마니는 머리두(頭)자의 머리에서 유래한다고 보면 광주 수리산(修理山)이나 수리산(취산(鷲山))은 독수리봉을 뒷받침하는 속설이라 할 수 있다 했다. 수리산은 서울에서는 4호선 지하철을 이용하면 쉽게 찾아 갈 수 있다.
몇 년 전 수리산을 찾아갔을 때는 지하철 4호선 산본역에서 내려 용진사를 찾아 산행을 시작하였었다. 이제는 산본역 다음에 수리산역이 등산기점 플랫폼을 밟으면 수리산 입구 표시가 있고 아파트 숲을 찾아가야 되니 526동쪽에서 길을 찾아가라는 친절한 안내판이 서있다.
수리산은 평지에서 갑자기 솟은 듯 산계는 봉우리와 절벽이 규암으로 단단한 돌로 되어있고, 땅을 밟게 되는 육산이나 군포시쪽 능선은 예사롭지 않다.
산계곡은 풍화에 시달인 흑운모호상 편마암으로 비쭉비쭉, 날카로운 돌이 있는가 하면 시루떡 같은 편평석이 층을 이루어 놓았다. 학리적으로는 돌 모양은 안구상 편마암이 많고 부분적으로 백운모 및 흑운모 편암이 특징이다.
수리산은 6·25 전쟁 당시 치열한 전쟁터였다. 슬기봉지나 태을봉 찾아가는 능선길에는 독수리요새라 부르고 싶은 낭떠러지 바위지대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군포시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는 표현을 쓰는 듯싶다.
전쟁의 상처는 수리산 임상(林象)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다. 인공조림지역이 대부분이다. 독수리 요새, 봉우리에는 침엽수 소나무도 있지만, 활엽수가 반쯤, 혼성(효)림이 1/3정도다.
침엽수도 30% 되니까 보기 좋은 산이다. 수리산 등산로는 속달동, 병목안, 창박골에서도 올라 갈 수 있다.
속달동에는 경기도 유림 327ha가 있어 경기도 산림환경 연구소가 들어서 수목연구와 조사업무를 하고 있다.
속달동 수릉터 당숲에서는 음력10월 1일부터 2일간 동제(洞祭)가 열린다. 아름다운 마을 숲이다. 수리산은 100대 인기 명산 중 45위의 산이다.
2002년 생명의 숲으로 산림청은 제3회 아름다운 숲으로 전국대회 우수상을 받았다. 숲은 100~300년된 고목이 자랑거리다. 조선왕조 중기의 문신 정재륜(鄭載崙 1648~1723) 선생과 그의 부인 숙정(淑靜)공주의 무덤이 있어 조성한 숲이다.
안양, 안산, 군포시는 수암봉 인근에 각각 시에서 운영하는 삼림욕장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국민건강을 위한 지자체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군포시쪽 수리산은 암석덩어리 낭떠러지다. 들꽃 찾기 힘들다. 성결신학대학 이세종 교수는 ‘수리산고(修理山稿)’에서 수리산을 평안한 산으로 기술하였다. 병목안 계곡을 찾아 내려가면서 계곡에서 현호색 군락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큰 소득이었고, 꿩의 바람꽃, 노루귀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잊지 않고 들고 갔던 수첩과 볼펜이 부끄럽지 않았다.
2007-07-18 12: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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