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김대규]안양 사랑의 변명

안양똑딱이 2016. 7. 2. 16:48
[김대규]안양 사랑의 변명

[2007/05/25]시인
안양 사랑의 변명

사람이 한 세상을 살면서 어찌 하고 싶은 말이라고 다 하랴. 말이 인간관계의 제1요소임을 감안할 때, 가정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불화(不和)를 초래하는 것이 말임을 새삼 강조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분쟁과 갈등도 말로 풀어갈 수밖에 없다. 말은 인간생활의 알파요 오메가다.

부연하자면, 해서는 안 될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알파요, 하지 않으면 안 될 말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오메가다. 인간의 모든 언어활동은 이 알파와 오메가 사이의 줄타기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줄타기에서 떨어져보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글도 마찬가지다. 말이 기호화된 것이 글이지만, 말보다 글은 몇 배 더 어렵다. 말은 자연스럽게 해도 글을 자연스럽게 쓰는 사람은 사실 아무도 없다. 잘못된 말은 금방 바로잡아 다시 말할 수 있지만, 글은 일단 발표되면 그것으로 끝난다. ‘설화(舌禍)’보다 ‘필화(筆禍)’가 더 무섭다.

그래서 사람들은 믿는 사람에게만 속내를 털어놓기도 하고, ‘고백성사’도 한다. 어디에다 하소연할 수도 없는 얘기는 일기에 쓰던가, 아니면 사후의 발표를 전제로 자서전에 남기기도 한다.

서두가 너무 장황했다. 요즘 들어 세상 살아가기가 옛날보다 훨씬 힘들다는 생각이 부쩍 더해진다. 물론 시대도 변했고, 나이 탓도 있겠지.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외부 상황의 변화보다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여기 일일이 다 밝혀 적을 수는 없기에 요점만 간추려 보겠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들을지 모르겠는데, 문제의 핵심은 내가 이 나이에 이르도록 내 삶의 목표를 위해 처절하게 전력투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시인’으로서 시만을 위한 삶을 꾸려야 했을 터인 즉, 지역사회의 여러 가지 일들에 어쩔 수 없이 관계해 왔다는 것.

위의 ‘어쩔 수 없이’라는 말을 나는 ‘운명적’이라는 의미로 썼다. 그 운명은 내가 ‘안양’에 태어난 일로부터 시작해서, 안양초·중·공고를 거쳐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안양여중고·안양체육회(배구협회)·안양상공회의소·안양문인협회·안양문화원·안양예총·안양대학·안양시의 여러 관계업무, 그리고 최근의 안양시민신문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런 가운데 적지 않은 오해나 비판도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 정치적 권력이나 재화로부터는 완전히 자유로운 시인의 순수성으로 안양을 사랑하고자 했다.

고향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내지 않는 정신적인 애향세(愛鄕稅)를 더 물어야 한다. 그것은 무보상·무조건의 사랑이다.

사람은 생각이 모자라면 이해를 못하고 뜻이 다르면 편이 갈리게 마련이다. 이해를 못 할 때 알아보려고 노력을 하면 참 아름다운 일이다. 같은 편은 아니어도 최소한 상대방에게 인간적인 연민과 인격적인 예우는 할 줄 알아야 한다. 신분보다는 심성이, 뜻보다는 사람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내 곁에도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산처럼 믿음직스럽고 물처럼 맑은 사람도 있다. 나이, 남녀가 관계없다. ‘사람’이 문제다.

고백하건대 나는 가장으로, 사회인으로, 시인으로 사는 일보다 어떻게 하면 ‘사람’으로 바르고 착하게 사는 것일까에 대해 마음을 기울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답을 얻지는 못했다.

나를 원망하는 사람을 내 가슴에 들여놓지 않는 수련은 많이 한 편이다. 그런데 아직 문사(文士)로서는 잘못됐다고 여겨지는 나라 일에 대해 ‘글’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라는 사명감에서는 완전히 빠져나오질 못했다. 역시 사람의 문제이리라.

안양에도 내 판단에는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많다. 그렇다고 그걸 다 말과 글로 옮길 수는 없다. 이러할 때, 서로 ‘대화’가 되는 상대라면 해법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서로 반목이 심화되는 것이다. 당초에는 안양에 살면서 겪게 되는 부당한 처사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예거하며 의중을 표출해볼 요량이었는데, 이렇듯 상징적으로만 일관했다. 이 역시 안양 사랑의 변명이 아닐까.

2007-05-26 23:5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