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희]종이와 잉크로 맺은 인연 소중히

[강찬희]종이와 잉크로 맺은 인연 소중히

[06/24]안양 학림사 실장

종이와 잉크로 맺은 인연 소중히
주보 인쇄하러 오던 아이, 청년이 되어 청첩정 맡기러 오다

그동안 ‘학림사’ 라는 인쇄업체를 운영하며 안양시민과 동고동락 한 분입니다. 안양뉴스를 통해 그동안 학림사를 이용해 주신 고객들과 고객을 넘어 ‘친구’ 가 된 분들에게 그동안의 소희를 밝히며 인사를 드리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편집자 주

종이, 잉크, 흑백, 칼라, 교정, 오타, 시안 등 저의 일과 속에서 늘 함께하며 이름만으로도 행복함이 느껴지는, 사랑스런 단어들입니다. 늘 같은 일들의 반복인 듯하지만, 사람들마다의 취향과 느낌이 다르기에 같은 원고라도 똑 같은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마다의 다양한 가치와 생각을 원고를 통하여 만나는 인쇄!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고, 하얀 종이위에 저마다의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어 살아 있음을 느끼며 존재를 나누는 인쇄는 우리의 일상생활 중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친구이기도 합니다.

1981년10월, 지하상가 한 켠에서 희미한 조명아래 습식복사기 한 대를 가지고 출발 했습니다. 이북을 고향으로 둔 실향민의 아픔을 뒤로 한 채 생계수단의 의미로 출발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되돌아보면 종이와의 인연과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는 매력으로 짧지 않은 세월을 버티어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종이와 잉크 앞에 누구나 평등함을 생각하며 지난 세월동안 많은 분들의 애정과 사랑을 생각하면 하는 일에 대한 나의열정을 멈 출수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매주 주보를 인쇄하러 오던 아이는 어느새 건장한 청년이 되어 결혼 한다며 청첩장을 맡기러 왔습니다. 그리고, 재산문제로 자식들 간 싸움에 마음아파 하시며 유언장을 만들기 위해 오셨던 할아버지는 이미 고인이 되셨습니다. 지금도 가끔은 그 할아버지가 눈가에 가득 고여 있던 눈물이 생각납니다.

고등학생 때 과제물을 인쇄하러 왔다가 인연이 되어 지금도 형, 동생 하며 지내는 친근한 형제가 되었습니다. 또, 얼마 전 세례를 받은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며 성모님이 새겨진 액자를 선물해 주신 자매님도 인쇄를 통해 맺은 인연입니다. 98년 저의 결혼식에 축가를 불러준 ‘숨은 사랑찾기’ 자원봉사회 학생들도 종이와 잉크로 맺은 인연입니다.

종이와 잉크로 맺은 인연은 일가친척 없는 실향민의 외로움을 달래주었고 저의 성장에 든든한 버팀목으로, 서로를 바라 볼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주었습니다.

1980년대의 암울했던 시대적 아픔을 함께하며 상황에 따라 글과 그림들이 살아 숨 쉬던 시절에도 인쇄문화는 우리가슴속에 고스란히 남아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얼마 전 6,10항쟁 평화기원 거리행진 때, 당시의 유인물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유인물에서 세월의 덧없음과 당시의 많은 피 흘림 속에 외쳐대던 함성과 의미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열사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를 반성하고 항쟁은 끝이 아닌 진행형임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그렇게 갈망하던 세상을 위해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짐해 보았습니다. 이렇듯 종이와 잉크는 아픔을 희망으로, 희망을 행복으로, 나눔의 기쁨을 모두에게 안겨주며 우리의 삶속에 함께 살아 숨 쉬는 친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글을 통하여 지금까지 저희 학림사 를 애정과 사랑으로 함께해 주셨던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 넘치는 사랑과 격려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늘 겸손과 정직한모습 으로 함께할 것이며 사회의 약자를 위해서도 늘 배려하는 마음과 나눔을 실천 하는 이웃이 되겠습니다. 열린 생각을 지향하며 인쇄문화를 누구나가 평등하게 이용 하고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2007-06-25 20:5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