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20240125]안양어린이도서관 현판식과 육영수 여사(1970)

안양똑딱이 2024. 1. 25. 08:25

 

2024.01.25/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안양 #육영수 #since1970/ 양지회 지원으로 마련한 안양어린이도서관 현판식에 참석한 육영수여사, 국가기록원인 성남나라기록원에 영구보존돼 있는 기록물로 정부 공보처 홍보국에서 1970.04.29일 촬영했다.
사진을 보면 건물 외벽에 읍민관이라 적혀 있다, 또 현관앞에는 재건국민운동시흥군위원회라 적힌 나무 현판도 보인다. 어린이도서관이 마련된곳이 안양 장래동(현 안양4동)에 있던 읍민관(현 얀양빌딩.1층에 다이소 자리)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욱영수 여사가 안양시민들과 함께 있는 동네풍경이 보이는 다른 사진을 분석한 결과 아니었다.
최초의 안양 읍민관은 1950년대 안양 장내동(현 안양4동)에 생겼다. 이곳에서는 8.15광복절, 궐기대회 등 당시 시흥군과 안양읍의 공적행사들을 개최하던 공공장소였다. 1970년대에는 읍민관 간판을 안양극장으로 바꾸어 달았다. 당시 일반에 매각된것이지는 기록이 없어 불확실하다., 아울러 이무렵 안양2동에 두번째 읍민관이 신축된것으로 보인다. 안양극장은 1970년대 중반 철거된후 경신년(1980년)에 현재의 건물(안양빌딩)이 신축된다. 안양빌당에는 다시 안양극장이 들어서는데 2006년까지 운영하다 폐업한다.
사진속 건물은 1969년 무렵 안양2동에 새로 지어진 두번째 읍민관으로 보인다. 1970년에 찍은 읍민관 현판이 내걸린 사진을 보면 외형이 아주 깔끔한 형태가 새로 신축한 모습이다. 따라서 이 건물은 안양4동 읍민관이 아니라 안양2동에 새로 신축한 읍민관으로 추정된다. 이곳에는 시흥군 도서관과 문화원이 있었으며 1991년(6월 29일 준공)에는 안양2동사무소로 새로 신축돼 2024년 현재까지 사용중으로 주변은 안양역세권지구 재개발사업이 진행중이다,
 
한편 기록을 보면 양지회 라는 이름의 단체는 두개가 있다. 중앙일보 기사(1992.05.29)를 보면 하나는 전직 안기부(중앙정보부)요원들의 친목단체로,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안기부의 부훈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이 모임은 지금도 있다. 또 하나의 양지회는 이미 사라졌다. 바로 육영수 여사가 주도해 창설했던 모임이었다. 고위공직자의 부인들로 구성돼 활발한 봉사활동을 펴나감으로써 찬사를 받았으나 한편으로 육 여사의 본뜻과는 달리 「막강한 치맛바람」으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1964년 12월에 발족한 양지회는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실세가 거의 망라된 이 엄청난 인물들의 부인이 바로 양지회 회원들이었다. 개각으로 자리를 물러난 이의 부인은 자동적으로 회원자격을 잃었다. 사단장이나 도지사 급 정도는 아예 모임에 낄 자격도 없었다. 전직 총리·장관 중 중량급 인사의 부인에 한해 모임의 명예회원으로 모셔졌으나 이미 남편의 갓끈이 떨어진 터라 나오기를 꺼렸다고 한다.
양지회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73년 회원수첩에는 총2백1명의 회원명단이 적혀있다. 명예회원 1백86명의 명단은 뒷부분에 별도로 추가됐다. 2백1명은 행정부 98명(청 장급이상), 국영기업체 42명(사장과 부사장), 금융단 28명(행장과 전무), 군부 33명(소장급 이상중 요직자)등으로 이루어졌다.
육여사는 만년에 양지회(陽地會) 명예회장과 자연보존협회 총재를 지내면서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 창간, 남산에 어린이회관 설립, 서울 구의동 일대에 어린이대공원 조성 등 어린이 문제와 나환자 돕기에 앞장서 비교적 좋은 인상을 남겼으며 1974년 8·15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 서울국립극장 단상에서 문세광(文世光)에 저격당해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