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20240124]의왕에 있는 한국나병연구원과 오전리(1976년)

안양똑딱이 2024. 1. 24. 06:46

한국나병연구원(1976)

 

2024.01.24/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의왕 #한국나병연구원 #since1976/ 성라자로마을 입구인 경기도 시흥군 의왕면 오전리 산87)에 세워진 한국나병연구원의 초창기 모습이다.

한국나병연구원은 192846일 조선나병근절책 연구회 발족을 시작으로 그 첫발을 내딛은 사단법인 대한나협회를 모태로 하여 1976622일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설립되었다. 한센병에 대한 완전한 퇴치와 한센병 환자의 재활을 위한 진료 및 연구를 확충하기 위해 만들어진 본 연구소는 신환자 조기 발견과 한센인에 대한 양질의 전문의료서비스, 한센병 진단 및 최신 치료방법 개발 등을 주 임무로 하고 있으며, 198241일에는 대한나협회로 흡수 통합되어 한센인에 대한 보다 전인적인 보건복지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진료 및 연구를 수행해 오고 있다.

사진에는 새로 준공한 한국나병연구원 건물과 함께 1970년대 중반의 시흥군 오전리(현 의왕시 오전동) 풍경을 볼수 있다. 사진 하단의 도로에 있는 경비실을 지나 왼쪽으로 들어가면 성라자로마을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1번국도(경수산업도로). 사진 위쪽의 츅사 형태의 건물들은 양계장과 가구공장들로 추정된다, 가구 공장들은 이후 의왕 가구거리 형성의 모태가 되었다

가톨릭신문 1976103일자에는 나병연구원의 준공기사가 실려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안양한국 나병연구원준공

한국 최초로 나병 연구 위한 각종 시설 구비

발행일 | 가톨릭신문 1976-10-03[1027, 3]

 

안양성라자로마을(경기도 시흥군 의왕면 오전리 산87)에 세워진 한국나병연구원(재단법인 이사장 정희섭이 24일 오후 3시 준공식을 가짐으로써성라자로마을은 한국에서는 최초로 모든 시설을 갖춘 나환자들의 마을로 발돋움했다.

 

나환자 진료와 나병 연구 및 나병 관리 요원 훈련을 목적으로 보건사회부가 주관하여 건립한 이 연구원은 대지 3479평에 건평 약 747평의 백색 건물로 착공 9개월 반 만에 완공됐다.

 

연구원 대지는 수원교구 재단이성라자로마을의 땅을 50년 기한부로 대여했고, 건축비 12천만 엔은 일본의 사사가와기념보건협력재단에서 희사했으며 시설비 약 5천만 엔은 일본 까리따스와 일본 성심여대 동창생 등 독지가들의 헌금으로 마련됐다.

 

앞으로 50년 이내에 나병을 이 땅에서 완전히 퇴치할 목표로 발족된 이 연구원은 나환자를 도와 달라는 한 수녀의 편지 한 장과나병 진료소가 있었으면하는 이경재 신부의 소망이 한데 영글어 오늘의 한국나병연구원이란 거창한 열매로 나타났다. 지난 1972423성라자로마을에서는 남자 환자들의 숙소인반석의 집낙성식이 있었다. 이 집은도꾜대교구의 교우들이 낸 헌금으로 지었기 때문에 시라야나기(白柳) 대주교가 개관 테이프를 끊었다.

 

그 자리에는 일본에서 우리나라에 진출해 있는 스승예수의자매회 소속 스텔라(일본명=土亭) 수녀 등 일본인 수녀들도 참석했다. 일본 황태자비()인 미찌고(美智子)와 일본 성심여대 동기 동창인 스텔라 수녀는 그때성라자로마을을 둘러보고 느낀 바 있었던지 미찌꼬에게한국의 나환자를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 달라는 편지를 써서 김포공항을 떠나는 白柳 대주교에게 전했다. 스텔라 수녀의 편지를 받은 황태자비는 전() 주한 일본대사였던 가나야마(金山政英)씨를 불러황실의 몸이니 내 대신 도움의 길을 모색해 달라고 당부했다. 金山씨는일본의 다미안 신부로 통하는 復生병원장 이와시다 소이찌(岩下壯一) 신부로부터 나환자들과 함께 성세를 받은 사람이라 나환자에 관심이 많았다.

 

그해 61金山씨는 白柳 대주교를 방문, 이 문제를 상의했는데 마침도꾜에 머물러 있던 이경재 신부와 회동하게 됐다. 그 자리에서 이 신부는 나병 진료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3천만 엔만 있으면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날 이후 金山씨는 일본 기업주들을 만나고 일본경제인연합회와도 접촉했다. 별 진전이 없이 2년이 지난 19748, 일본 천황의 동생 다까마쯔 노이마(高松宮)씨가 金山씨를 불러 모금 현황을 알아본 후, 사사가와 良一씨를 소개했다.

 

사사가와씨는 1964년 전 동남아의 나병 퇴치와 사회복지 개선을 위해사사가와기념보건협력재단을 창설하여 그 회장직에 있었다.

 

사사가와씨의 협조를 얻은 金山씨는 재단 이사장인이시다데(石館守三)씨를 대동, 안양 현지를 답사하기에 이르렀다. 이 신부의 안내로 현지를 둘러본 이시다데씨는성라자로마을에 전국의 나환자를 대상으로 할 나병연구원 겸 병원을 한국 정부 주관으로 짓기로 결정했다. 조그마한 진료소를 짓겠다던 이 신부의 계획이 엄청나게 확대되는 순간이었다. 사사가와 재단은 건축비 12천만 엔을 박근혜양을 통해 정부에 전달했다.

 

보건사회부 소속인 이 연구원의 운영비는 정부 예산에서 지급되고, 남들이 가장 싫어하는 환자들의 옷 세탁과 취사는 성모영보수도원(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수녀들이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