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20240117]의왕 성라자로마을 입구 아치 조형물(1971년)

안양똑딱이 2024. 1. 17. 05:04

1971년 정문 모습

2024.01.15/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성라자로마을 #의왕 #since1971/ 1번국도변애 세워졌전 성라자로마을을 상징하는 삼각 아치형 조형물. 이 조형물은 1971년 7월 23일 세워졌으며 문 옆에는 역시 김세중 교수가 조각한 ‘새삶의 예수상’이 있다. 처음에는 서울-수원간 1번국도(경수산업도로) 입구에 세워져 버스를 지나다 조형물을 보면 성라자로마을 임을 알수 있었다. 지금은 삼각형 아치와 조형물이 약 500여 미터 안쪽인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사진 왼쪽 뒤로 보이는 산이 모락산이다. 정문의 조형물을 지나 성라자로마을까지 좌우는 1970년대 야산과 밭이다. 좌측 산자락 밑에 고천국민학교(현 고천초교) 오전분교가 있어 나환자 자녀들이 다녔다. 1980년에는 라자로마을 가는길 주변에 양계장과 축사, 많은 가구 공장들이 자리했었다. 영세 규모의 가구공장들은 1990년대 의왕을 대표하는 가구거리로 자리잡는다.
성 라자로마을은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원골로 66)에 위치한 천주교 최초의 구라사업 기관으로 1950년 6월 2일에 설립되었다.
1945년 광복 후 서울 근교의 유랑 나환자들에 대한 구호 및 의료사업의 필요성을 느낀 메리놀외방전교회 소속의 캐롤(Carroll,G.) 주교가 1950년 6월 부천군 오류동에 성라자로원을 개원하였으나 6·25전쟁의 발발로 그 활동이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전쟁으로 약 8,000명에 달하던 나환자들이 수용소에서 풀려나 극도의 빈곤과 질병에 버려지자, 캐롤 주교는 1951년 경기도 화성군 일왕면 오금리 산 87(현 의왕 내손동)에 20만평의 대지를 구입한 뒤 성라자로원을 다시 개원하였으며 초대원장으로 서울교구 이경재 신부가 부임한다.
1988년 10월 당시 전국 98개 나환자정착촌 중 50여개소가 천주교와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이 가운데 25개소는 천주교회가 직접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고 그 가운데에서 가장 대표적인 정착촌이 성라자로마을이다.
성라자로마을 역시 개원 초기에는 주로 이동진료를 실시했으나 1962년부터 정착촌을 마련하고 나환자들을 이곳에 거주하게 하였다. 성라자로마을은 1967년 수원교구가 서울교구에서 분리됨으로써 수원교구 소속으로 이관되었다. 1975년 성당을 건립하였고, 1981년에는 설립 30주년을 맞이하여 피정(避靜)의 집을 개설하였다. 현재 성라자로마을에는 환우들의 생황공간에 1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병동·진료소·교육관 등 부대시설이 갖추어져 있다.또 피정의집인 아론의집과 은퇴 사제들을 위한 사제마을이 있다.
 
1970년대 중반 정문 모습

2000년 성라자로마을 50주년대 복원한 조형물과 정문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