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훈]시민운동과 미술운동의 결합은 어떻게 가능한가.
[2005/12/19 안양천프로젝트 기획팀장]
[2005/12/19 안양천프로젝트 기획팀장]
시민운동과 미술운동의 결합은 어떻게 가능한가.
부산MBC 부설 (사) 문화도시네트워크는 지난 2005년 1월 18일 <문화가 도시를 바꾼다>는 강연을 주최하고 강연의 하나로 안양천 프로젝트를 초대했다. 당시 필자는 <시민운동과 미술운동의 결합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제목으로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러 시민단체의 관계자들에게 안양천 프로젝트의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이 책에서는 당시의 원고를 기본골격으로 삼아 설명이 미진했던 부분을 수정/보완해 보았다.
이 강연은 시민/환경단체 활동가, 비영리 문화단체 실무자, 자원봉사 활동가 등 비영리섹터 문화운동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 문화활동가는 매사에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혹은 그러기 위해서라도 현장은 끊임없는 토론의 장이 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교과서적인 현장이란 존재하는 것인가? 교육은 정리된 사고와 지식을 바탕으로 그것을 유용하게 전달하는 것인데, 솔직히 말해 2004년에 시작된 안양천프로젝트는 이제 시작이고 아직까지 많은 것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지금 단계에서 교육은 성급할지도 모른다. 현재 1회를 마친 안양천 프로젝트는 정리의 과정에 있고 좀더 다양한 관점에서의 평가가 요구된다. 이 강연이 목표하는 ‘지역가꾸기 문화운동의 새로운 모색’이 안양천 프로젝트 사례를 통해 가능할 지는 필자를 포함해 참여자의 진지한 접근과 거침없는 토론을 통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는 교육적 차원보다는 아이디어 교류의 차원에서 안양천 프로젝트를 소개할 것이다. 과연 안양천프로젝트를 기획한 사람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숨어있는지-그것이 궁금하지 않겠나? 더불어 이 강연이 앞으로 안양-부산 혹은 다른 지역과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가져 본다.
‘문화가 도시를 바꾼다.’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다. 달콤하기까지 하다. 이 문장은 2005년에 새로 만들어진 문화예술위원회의 슬로건과 정확하게 오버랩 된다. “예술이 세상을 바꿉니다.” 문화가 무엇이길래 도시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말인가? 문화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가? 바로 이러한 의문에 답을 하는 것이 이 강연의 목적일 것이다. 필자는 이 질문의 핵심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로 이해하고 이야기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를 단순히 방법론이라 말하기 어렵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어떻게 바꾼다”라는 표현 속에는 이미 ‘바뀐’ 도시와 세상을 그리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보통 ‘비전’이나 ‘청사진’이라 하는데, 어떤 구체적인 이미지나 상으로 제시되는 것이 보통이다. 만약 구체적인 상을 제시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언어와 문자가 보충된다(‘동원된다’는 표현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이제 도시의 변화나, 세상의 변화에 대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고, 실제 그렇게 바꿔 보자고 생각했다면,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먼저 지지자를 모아야 한다. 그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청사진을 펼쳐놓고, 혹은 언어와 문자를 동원해 가까운 주변인부터 이해시켜 간다. 그리고 그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가의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원리 또한 간단하다. 일반적으로 자연의 변화를 순리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변화의 상, 변화의 과정,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현상, 즉 순리임을 강조하여 설득해가면 되는 것이다. 참고로 도리(道理), 대세(大勢)나 추세(趨勢), 유행(流行) 등의 표현은 바로 순리와 유사한 개념어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비전과 청사진을 가진 이들이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 자신들의 비전이 순리임을 주장한다. 이렇듯 두개, 세 개, 네 개의 청사진이 가능한 것이 또한 세상일이다. 필자는 이런 세상일을 ‘정치(政治)’라고 정리하고 싶다.
문화나 예술은 모두에게 좋은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일종의 취향의 문제로 이해 될 수 있다. 다수의 취향과 소수의 취향이 존재할 수 있다. 여기에서 극소수의 취향까지 이야기 하자면, 정말이지 끝없는 논쟁에 휘말릴 수 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취향’이라는 것과 윗 단락에서 언급한 ‘비전’이 어떻게 만나게 되느냐이다. 이것이 이 글의 주제 <시민운동과 미술운동의 결합은 어떻게 가능하가>를 풀어가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두 가지 키워드를 ‘정치’와 ‘예술’로 풀어볼 수 있다. 시민운동이 인간의 정치활동과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고 한다면 미술운동은 인간의 예술활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다. 정치적인 동물에게 무엇보다 언어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문자나 이미지 보다 선행되는 의사전달 매체이다. 다시 말해 언어는 의사소통을 하는데 있어 중요한 수단이다. 정치란 결국 소통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행위-위에서 필자가 정리한 “정치란 일종의 대화와 설득의 행위”-즉 커뮤니케이션이다. “미디어는 메시지이다”라고 한다면, 정치-즉 커뮤니케이션은 그 메시지(의사)의 소통가능성인 것이다. 자기 생각 혹은 비전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행위-그것을 쉽게 ‘설득’이라 한다. 정치는 설득이다.
지역운동가의 한 사람이면서, 안양천 프로젝트의 운영위원장을 맡았던 박찬응 씨의 경우를 보자. 안양천 가까이에서 30년 이상을 살아온 박관장은 안양천을 잘 알고 있는 한 사람이었다. 1985년 미대를 졸업한 그는 대략 1999년까지 안양을 중심으로 미술작가로서 활동을 하기도 했고, 1991년부터는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미술관련 서적을 출판하기도 했다. 미술활동 이외에도 안양시민단체의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안양지역에서 작가로, 사업가로, 시민으로 많은 일들을 추진했던 그는 특히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석수동에 대한 애착이 대단히 강한 지역애찬론자로 2002년 석수시장에 ‘스톤앤워터’라고 하는 예술공간을 설립했다. 그는 스톤앤워터를 설립과정을 다음과 같이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몇몇 친구들을 만나 이곳 석수동의 비전을 이야기하고 내가 만들고자 하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10명의 11명은 부정적인 말뿐이다. 화랑을 하려면 인사동에 가서 해라, 차라리 돈 버는 카페를 해라, 걱정 된다 등등. 오직 류병학 만이 가능성과 성공확률을 점치고 있었다. 나 스스로도 100% 확신하고 시작하는 일은 아니다.”(『리빙퍼니처』, 아침미디어, 223페이지. 박찬응 관장의 작업일지의 시작부분 중에서)
10명 가운데 11명이 부정적이었다고 표현할 만큼 그의 비전은 많은 이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던 것 같다. 더군다나 자신조차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의 진술에서 등장하는 (스톤앤워터 개관전을 기획한) 류병학-박관장의 친구였던, 단 한 사람의 확신이 다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한 방’이 된 셈이다. 마치 도박과도 같아 보이는 이러한 결정은 ‘정치’라 할 수 없고 ‘예술’로 이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박관장은 어쨌거나 다수를 설득시키는데 실패했고, 비장한 결단(혹은 직관)이 필요했던 것은 ‘예술’로 이해 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스톤앤워터는 석수동 주민이 원했던 것도 아니고, 안양시에서 지원해 준 것도 아닌 오직 두 사람-류병학의 확신과 박관장의 비전으로 설립된 공간인 것이다.
그렇다면 박관장이 가지고 있었다는 석수동의 비전이란 무엇일까?
석수동에는 고찰과 문화재(안양의 문화재 80%가 밀집해 있다)가 많고 자연환경도 나쁘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과 환경을 고려해 석수동을 살기 좋은 동네로 가꿔나가자는 것이 박관장의 생각이다. 특히 스톤앤워터가 있는 석수시장은 현재 침체된 재래시장으로 언젠가는 재개발이 될 것이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석수시장의 자리에 고층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것이다. 인근에는 이미 높은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하나둘씩 생겨나 동네가 삭막하게 변하고 있다. 박관장은 석수시장이 밀집거주공간이 아닌 여유로운 문화공간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풍부한 자연환경과 문화재, 교통망을 활용해 고부가가치의 문화컨텐츠가 개발되는 문화예술밸리- 예술의 마을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필자가 볼 때, 그 비전이 허황되거나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떻게 설득하느냐의 과제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박관장의 정치활동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는 정치보다는 예술활동을 택했다. 그것이 바로 스톤앤워터(Stone & Water)의 설립이었다. 박관장은 석수동의 이름을 딴 예술공간을 만들어 류병학을 비롯해 많은 전시 기획자와 작가들을 불러들여 석수동의 비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작가들에게 석수동-석수시장을 소재로 한 작품제작을 권장한다. 전시와 출판을 통해 석수동은 ‘스톤앤워터’라는 이름으로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스톤앤워터는 기존의 미술관, 화랑, 갤러리, 대안공간 등으로 규정하지 않고 보충대리공간(Supplement space)이라는 신개념을 사용했다. 설립취지문에 보충대리공간을 “미술의 영역을 생활 속으로 확장하여 부재, 결손, 부족, 손상된 도시 환경과 생활 조건들을 보수, 보완, 보충, 대리하는 적극적 예술공간”이라 설명하고 있다. 일테면 이 공간은 박관장의 정치활동을 예술활동으로 대리하는 ‘적극적인 예술공간’ 인 셈이다.
현재 전시기획자 겸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류병학은 스톤앤워터의 개관전 <리빙퍼니처>를 기획했고, 『리빙퍼니처』, 『재건축프로젝트2002』 두 권의 책을 통해 석수동을 ‘명당’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박관장이 실천적 행동가라면 류병학은 이론적 행동가로서 이 둘의 합작이 바로 스톤앤워터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개관전 <리빙퍼니처 living furniture>가 사적 공간(집안)에서의 예술이었다면 <퍼블릭 퍼니처 public furniture>는 공공장소(집밖)에서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퍼블릭 퍼니처’는 우체통이나 공중전화, 공공화장실, 버스정류장, 화단, 분수대 등 도시학에서 말하는 스트리트퍼니처(street furniture)에 공공미술(public art)을 접목시킨 류병학의 개념으로, 그는 석수시장과 안양천 일대에 퍼블릭 퍼니처를 펼쳐보이고자 했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이 프로젝트는 안양시가 예산지원을 보이코트 함으로써 미완성의 프로젝트로 남게 된다. 비록 미완성 프로젝트로 그쳤지만 류병학의 <퍼블릭 퍼니처>는 안양천 프로젝트의 출발이면서, 지역가꾸기 문화운동의 한 사례로도 볼 수 있다.
박관장은 최근 『미술과 담론』이라는 미술지에 「진정한 대안은 지역미술에 있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바 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의 진술을 통해 드러난다.
“아무리 따지고 곰곰이 생각해 봐도 지금의 대안공간들은 ‘대안공간’이라는 무엇을 위한 대안인지, 무엇에 대한 대안인지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한다. 예술이 사회에 대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몫은 없어 보인다. 굳이 상상 속에서 대안공간들을 그려본다면 지역 곳곳에 구체적인 지역의 생활과 문제에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즉,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대안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면 보충공간이라도....”
일단 그는 예술이 사회에 대하여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꿔 말하면 예술가의 사회적 참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존의 대안공간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을 내리고 대안공간은 지역 곳곳에 구체적인 지역의 생활과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예술이 사회에 대하여 나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박관장은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시민단체의 요구를 잘 이해하고 있으리라 본다. 필자 역시 한 문화시민단체와의 접촉을 통해 그들이 미술의 참여를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정치의 현장에 예술이 필요하다? 왜?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예술은 간단히 말해 선전선동에 가장 효과적인 매체이다. 정치적 미디어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고 보면 예술은 정치와 역사적으로 많은 일들을 함께 해왔다. 문학, 미술, 음악, 무용 모든 예술이 정치적 미디어가 되었던 셈이다. 정치가의 혀끝에서 단내를 풍기는 유창한 웅변도 하나의 퍼포먼스 예술인 것이다. 역사가 말해주듯 예술은 정치권력에 봉사하기도 했고 그 반대로 정치권력에 저항하기도 했다. 혹은 은둔하기도 했다. 필자는 정치가 예술을 (봉사이든 저항이든) 필요로 할 때, 혹은 예술 스스로 정치를 하기위해서는 정치적인 이슈와 갈등 속에 예술이 ‘제대로’ 위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슈와 갈등을 바로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알게 되면, 예술은 타자에 의해 위치(배치)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위치하게 된다. 정치의 선전도구와 이벤트로서의 예술이 아닌 스스로 발언하고 개입하는 예술이 되자는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예술의 정치화’의 대략이다. 예술이 스스로 정치화한다는 것은 예술가가 정치인과 동등한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개시키는 자세와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안양천 프로젝트의 후원을 받기위해 수차례 안양시 관계자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공공장소에서의 공공미술이 부딪히는-피해가기 어려운 행정적, 정치적 문제들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뿌리 깊은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주의와 정치적 실리주의는 여전히 비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항상 공무원을 선입견을 가지고 대할 필요는 없다. 필자는 그래도 진지한 공무원들을 몇 만날 수 있었다.) 필자가 생각하는 공공미술의 최대 위험요소는 바로 정치의 미학화와 관련된 일련의 관주도, 관변단체들의 안일한 공공미술 기획들이다.
공공미술이 공공의 이슈를 가지고 보다 많은 공공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려는 의도는 분명 정치와 닮은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유사성은 공공미술의 기획서에서 나타나는 선동과 선전의 전략적 슬로건, 대의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수사학들, 추상적인 기대효과의 나열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비단 안양천 프로젝트의 기획서도 그러한 슬로건이나 수사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정치권이 언제부터인가 쏟아내기 시작한 문화담론들은 확실히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문화/예술의 개념과 수사학들만을 찾아내 그들 고유의 정치적 수사학과 결합시킨 것이다. 이것을 정치의 미학화에 의한 ‘미학적 키치’이라면 반대로 예술이 정치화한 수사학들은 ‘정치적 키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선거기간에 유세연설을 하고 지역현안에 대해 토론하고 공약하는 일련의 정치활동과 예술가의 활동을 비교해 보자. 같은 목표를 가지더라도 그 매커니즘은 다르다.
서울(중앙)과 지방(변방)으로 구분되는 권력의 지형도를 각인시키고 있는 우리가 지역에 기반을 둔 미술운동을 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공공의 정물화나 공공의 풍경화가 나올 법하다. 지역성과 공공성이 결합한 공공미술은 어떤가? ‘공공미술’하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환경미화나 환경개선, 건축물 장식물과 같이 단순히 공공을 위한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으로 그치는 미술이 아니라, 지역의 여러 이슈에 대해 발언하고 개입하고 참여하는 미술. 바로 여기에 박관장의 지역대안론이나 안양천 프로젝트의 의미가 있다 하겠다.
이러한 맥락에서 안양천 프로젝트는 한마디로 ‘개입의 예술’이었다. 개입의 대상이었던 안양천, 삼덕제지공장 자체는 각각 안양천 살리기 운동과 시민공원조성이라는 정치적인 이슈-즉 지역의 공공 아젠다(의제)의 장소이다. 이번 안양천 프로젝트는 공공미술에 있어서 현장성, 장소특정성, 기록성, 공공성, 행동성이 어떻게 실행되는지,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미술을 보여주었다. 좁은 스톤앤워터 실내공간을 벗어나 예술은 일상 속으로, 공공 속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공공영역으로 들어간 예술은 단순히 그 영역을 물리적으로 점유하지 않는다. 공공의 아젠다에 개입해 이슈와 담론을 만들어 간다. 스톤앤워터의 ‘생활 속의 예술’은 단순히 미술의 대중화가 아니라 지역성, 공공성, 일상성이 결합되는 개입의 예술이다. 예술가는 일상의 미시정치를 발견하고 지역적인 아젠다(지역의제)를 예술작품을 통해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표현하게 되는 예술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이 바로 예술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한 모더니즘 예술의 성숙한 면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세계화된 모더니즘 예술이 각 지역의 특수한 현장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근거는 예술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예술언어의 보편성과 특수성(지역성)의 변증법적 종합에 있다. 지역미술에 대한 새로운 관점 역시 미시적(지역적)으로만 그쳐서는 안 되고 미시적 관찰과 연구가 거시적(보편적)으로 종합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미술운동이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라고 보는 시각도 팽배하다. 그러나 거대담론이 아닌 미시적 담론으로 운동을 접근한다면 도처에 운동은 진행형이다. 운동은 변화에 대한 요구를 집단적으로 표출하는 것으로, 우리사회가 보여주는 총제적인 역동성은 다름 아닌 수많은 운동들의 총체성이라 할 수 있다.
안양천 프로젝트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는 다음의 백기영 예술감독의 진술에서 잘 드러나 있다. “안양천프로젝트는 예술의 물줄기를 기운차게 흐르게 하는 예술 실험프로젝트이다. 여기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제각기 자기 지평의 도주선을 차고 나와 새로운 경계를 향해 흘러갈 것이다. 안양천은 한강으로 흘러가지만, 예술가들의 상상력은 안양천을 따라 도시의 일상 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예술과 예술의 네트워크, 예술과 사회의 네트워크, 사회와 사회의 네트워크...우리는 촘촘한 그물망을 안양천에 던져 무수한 쓰레기들을 건진다는 생각으로 한 올 한 올의 그물을 조직해 나가야 한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과 다양한 경험이 필요할 것이다. 안양천 프로젝트의 과제는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안양천을 연구하고 지속적인 프로젝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이 즉흥적인 것이 아닌 충분히 검토되어 기획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이 정치에 이용당하지 않고 예술이 적극적으로 정치를 이용한다면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은 한 단계 진보하지 않을까.
2005.1. <문화가 도시를 바꾼다>자료집 수록
2005.11 <안양천프로젝트>단행본에서 수정
부산MBC 부설 (사) 문화도시네트워크는 지난 2005년 1월 18일 <문화가 도시를 바꾼다>는 강연을 주최하고 강연의 하나로 안양천 프로젝트를 초대했다. 당시 필자는 <시민운동과 미술운동의 결합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제목으로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러 시민단체의 관계자들에게 안양천 프로젝트의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이 책에서는 당시의 원고를 기본골격으로 삼아 설명이 미진했던 부분을 수정/보완해 보았다.
이 강연은 시민/환경단체 활동가, 비영리 문화단체 실무자, 자원봉사 활동가 등 비영리섹터 문화운동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 문화활동가는 매사에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혹은 그러기 위해서라도 현장은 끊임없는 토론의 장이 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교과서적인 현장이란 존재하는 것인가? 교육은 정리된 사고와 지식을 바탕으로 그것을 유용하게 전달하는 것인데, 솔직히 말해 2004년에 시작된 안양천프로젝트는 이제 시작이고 아직까지 많은 것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지금 단계에서 교육은 성급할지도 모른다. 현재 1회를 마친 안양천 프로젝트는 정리의 과정에 있고 좀더 다양한 관점에서의 평가가 요구된다. 이 강연이 목표하는 ‘지역가꾸기 문화운동의 새로운 모색’이 안양천 프로젝트 사례를 통해 가능할 지는 필자를 포함해 참여자의 진지한 접근과 거침없는 토론을 통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는 교육적 차원보다는 아이디어 교류의 차원에서 안양천 프로젝트를 소개할 것이다. 과연 안양천프로젝트를 기획한 사람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숨어있는지-그것이 궁금하지 않겠나? 더불어 이 강연이 앞으로 안양-부산 혹은 다른 지역과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가져 본다.
‘문화가 도시를 바꾼다.’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다. 달콤하기까지 하다. 이 문장은 2005년에 새로 만들어진 문화예술위원회의 슬로건과 정확하게 오버랩 된다. “예술이 세상을 바꿉니다.” 문화가 무엇이길래 도시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말인가? 문화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가? 바로 이러한 의문에 답을 하는 것이 이 강연의 목적일 것이다. 필자는 이 질문의 핵심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로 이해하고 이야기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를 단순히 방법론이라 말하기 어렵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어떻게 바꾼다”라는 표현 속에는 이미 ‘바뀐’ 도시와 세상을 그리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보통 ‘비전’이나 ‘청사진’이라 하는데, 어떤 구체적인 이미지나 상으로 제시되는 것이 보통이다. 만약 구체적인 상을 제시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언어와 문자가 보충된다(‘동원된다’는 표현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이제 도시의 변화나, 세상의 변화에 대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고, 실제 그렇게 바꿔 보자고 생각했다면,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먼저 지지자를 모아야 한다. 그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청사진을 펼쳐놓고, 혹은 언어와 문자를 동원해 가까운 주변인부터 이해시켜 간다. 그리고 그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가의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원리 또한 간단하다. 일반적으로 자연의 변화를 순리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변화의 상, 변화의 과정,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현상, 즉 순리임을 강조하여 설득해가면 되는 것이다. 참고로 도리(道理), 대세(大勢)나 추세(趨勢), 유행(流行) 등의 표현은 바로 순리와 유사한 개념어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비전과 청사진을 가진 이들이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 자신들의 비전이 순리임을 주장한다. 이렇듯 두개, 세 개, 네 개의 청사진이 가능한 것이 또한 세상일이다. 필자는 이런 세상일을 ‘정치(政治)’라고 정리하고 싶다.
문화나 예술은 모두에게 좋은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일종의 취향의 문제로 이해 될 수 있다. 다수의 취향과 소수의 취향이 존재할 수 있다. 여기에서 극소수의 취향까지 이야기 하자면, 정말이지 끝없는 논쟁에 휘말릴 수 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취향’이라는 것과 윗 단락에서 언급한 ‘비전’이 어떻게 만나게 되느냐이다. 이것이 이 글의 주제 <시민운동과 미술운동의 결합은 어떻게 가능하가>를 풀어가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두 가지 키워드를 ‘정치’와 ‘예술’로 풀어볼 수 있다. 시민운동이 인간의 정치활동과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고 한다면 미술운동은 인간의 예술활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다. 정치적인 동물에게 무엇보다 언어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문자나 이미지 보다 선행되는 의사전달 매체이다. 다시 말해 언어는 의사소통을 하는데 있어 중요한 수단이다. 정치란 결국 소통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행위-위에서 필자가 정리한 “정치란 일종의 대화와 설득의 행위”-즉 커뮤니케이션이다. “미디어는 메시지이다”라고 한다면, 정치-즉 커뮤니케이션은 그 메시지(의사)의 소통가능성인 것이다. 자기 생각 혹은 비전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행위-그것을 쉽게 ‘설득’이라 한다. 정치는 설득이다.
지역운동가의 한 사람이면서, 안양천 프로젝트의 운영위원장을 맡았던 박찬응 씨의 경우를 보자. 안양천 가까이에서 30년 이상을 살아온 박관장은 안양천을 잘 알고 있는 한 사람이었다. 1985년 미대를 졸업한 그는 대략 1999년까지 안양을 중심으로 미술작가로서 활동을 하기도 했고, 1991년부터는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미술관련 서적을 출판하기도 했다. 미술활동 이외에도 안양시민단체의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안양지역에서 작가로, 사업가로, 시민으로 많은 일들을 추진했던 그는 특히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석수동에 대한 애착이 대단히 강한 지역애찬론자로 2002년 석수시장에 ‘스톤앤워터’라고 하는 예술공간을 설립했다. 그는 스톤앤워터를 설립과정을 다음과 같이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몇몇 친구들을 만나 이곳 석수동의 비전을 이야기하고 내가 만들고자 하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10명의 11명은 부정적인 말뿐이다. 화랑을 하려면 인사동에 가서 해라, 차라리 돈 버는 카페를 해라, 걱정 된다 등등. 오직 류병학 만이 가능성과 성공확률을 점치고 있었다. 나 스스로도 100% 확신하고 시작하는 일은 아니다.”(『리빙퍼니처』, 아침미디어, 223페이지. 박찬응 관장의 작업일지의 시작부분 중에서)
10명 가운데 11명이 부정적이었다고 표현할 만큼 그의 비전은 많은 이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던 것 같다. 더군다나 자신조차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의 진술에서 등장하는 (스톤앤워터 개관전을 기획한) 류병학-박관장의 친구였던, 단 한 사람의 확신이 다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한 방’이 된 셈이다. 마치 도박과도 같아 보이는 이러한 결정은 ‘정치’라 할 수 없고 ‘예술’로 이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박관장은 어쨌거나 다수를 설득시키는데 실패했고, 비장한 결단(혹은 직관)이 필요했던 것은 ‘예술’로 이해 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스톤앤워터는 석수동 주민이 원했던 것도 아니고, 안양시에서 지원해 준 것도 아닌 오직 두 사람-류병학의 확신과 박관장의 비전으로 설립된 공간인 것이다.
그렇다면 박관장이 가지고 있었다는 석수동의 비전이란 무엇일까?
석수동에는 고찰과 문화재(안양의 문화재 80%가 밀집해 있다)가 많고 자연환경도 나쁘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과 환경을 고려해 석수동을 살기 좋은 동네로 가꿔나가자는 것이 박관장의 생각이다. 특히 스톤앤워터가 있는 석수시장은 현재 침체된 재래시장으로 언젠가는 재개발이 될 것이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석수시장의 자리에 고층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것이다. 인근에는 이미 높은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하나둘씩 생겨나 동네가 삭막하게 변하고 있다. 박관장은 석수시장이 밀집거주공간이 아닌 여유로운 문화공간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풍부한 자연환경과 문화재, 교통망을 활용해 고부가가치의 문화컨텐츠가 개발되는 문화예술밸리- 예술의 마을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필자가 볼 때, 그 비전이 허황되거나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떻게 설득하느냐의 과제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박관장의 정치활동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는 정치보다는 예술활동을 택했다. 그것이 바로 스톤앤워터(Stone & Water)의 설립이었다. 박관장은 석수동의 이름을 딴 예술공간을 만들어 류병학을 비롯해 많은 전시 기획자와 작가들을 불러들여 석수동의 비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작가들에게 석수동-석수시장을 소재로 한 작품제작을 권장한다. 전시와 출판을 통해 석수동은 ‘스톤앤워터’라는 이름으로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스톤앤워터는 기존의 미술관, 화랑, 갤러리, 대안공간 등으로 규정하지 않고 보충대리공간(Supplement space)이라는 신개념을 사용했다. 설립취지문에 보충대리공간을 “미술의 영역을 생활 속으로 확장하여 부재, 결손, 부족, 손상된 도시 환경과 생활 조건들을 보수, 보완, 보충, 대리하는 적극적 예술공간”이라 설명하고 있다. 일테면 이 공간은 박관장의 정치활동을 예술활동으로 대리하는 ‘적극적인 예술공간’ 인 셈이다.
현재 전시기획자 겸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류병학은 스톤앤워터의 개관전 <리빙퍼니처>를 기획했고, 『리빙퍼니처』, 『재건축프로젝트2002』 두 권의 책을 통해 석수동을 ‘명당’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박관장이 실천적 행동가라면 류병학은 이론적 행동가로서 이 둘의 합작이 바로 스톤앤워터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개관전 <리빙퍼니처 living furniture>가 사적 공간(집안)에서의 예술이었다면 <퍼블릭 퍼니처 public furniture>는 공공장소(집밖)에서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퍼블릭 퍼니처’는 우체통이나 공중전화, 공공화장실, 버스정류장, 화단, 분수대 등 도시학에서 말하는 스트리트퍼니처(street furniture)에 공공미술(public art)을 접목시킨 류병학의 개념으로, 그는 석수시장과 안양천 일대에 퍼블릭 퍼니처를 펼쳐보이고자 했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이 프로젝트는 안양시가 예산지원을 보이코트 함으로써 미완성의 프로젝트로 남게 된다. 비록 미완성 프로젝트로 그쳤지만 류병학의 <퍼블릭 퍼니처>는 안양천 프로젝트의 출발이면서, 지역가꾸기 문화운동의 한 사례로도 볼 수 있다.
박관장은 최근 『미술과 담론』이라는 미술지에 「진정한 대안은 지역미술에 있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바 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의 진술을 통해 드러난다.
“아무리 따지고 곰곰이 생각해 봐도 지금의 대안공간들은 ‘대안공간’이라는 무엇을 위한 대안인지, 무엇에 대한 대안인지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한다. 예술이 사회에 대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몫은 없어 보인다. 굳이 상상 속에서 대안공간들을 그려본다면 지역 곳곳에 구체적인 지역의 생활과 문제에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즉,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대안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면 보충공간이라도....”
일단 그는 예술이 사회에 대하여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꿔 말하면 예술가의 사회적 참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존의 대안공간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을 내리고 대안공간은 지역 곳곳에 구체적인 지역의 생활과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예술이 사회에 대하여 나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박관장은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시민단체의 요구를 잘 이해하고 있으리라 본다. 필자 역시 한 문화시민단체와의 접촉을 통해 그들이 미술의 참여를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정치의 현장에 예술이 필요하다? 왜?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예술은 간단히 말해 선전선동에 가장 효과적인 매체이다. 정치적 미디어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고 보면 예술은 정치와 역사적으로 많은 일들을 함께 해왔다. 문학, 미술, 음악, 무용 모든 예술이 정치적 미디어가 되었던 셈이다. 정치가의 혀끝에서 단내를 풍기는 유창한 웅변도 하나의 퍼포먼스 예술인 것이다. 역사가 말해주듯 예술은 정치권력에 봉사하기도 했고 그 반대로 정치권력에 저항하기도 했다. 혹은 은둔하기도 했다. 필자는 정치가 예술을 (봉사이든 저항이든) 필요로 할 때, 혹은 예술 스스로 정치를 하기위해서는 정치적인 이슈와 갈등 속에 예술이 ‘제대로’ 위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슈와 갈등을 바로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알게 되면, 예술은 타자에 의해 위치(배치)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위치하게 된다. 정치의 선전도구와 이벤트로서의 예술이 아닌 스스로 발언하고 개입하는 예술이 되자는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예술의 정치화’의 대략이다. 예술이 스스로 정치화한다는 것은 예술가가 정치인과 동등한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개시키는 자세와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안양천 프로젝트의 후원을 받기위해 수차례 안양시 관계자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공공장소에서의 공공미술이 부딪히는-피해가기 어려운 행정적, 정치적 문제들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뿌리 깊은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주의와 정치적 실리주의는 여전히 비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항상 공무원을 선입견을 가지고 대할 필요는 없다. 필자는 그래도 진지한 공무원들을 몇 만날 수 있었다.) 필자가 생각하는 공공미술의 최대 위험요소는 바로 정치의 미학화와 관련된 일련의 관주도, 관변단체들의 안일한 공공미술 기획들이다.
공공미술이 공공의 이슈를 가지고 보다 많은 공공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려는 의도는 분명 정치와 닮은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유사성은 공공미술의 기획서에서 나타나는 선동과 선전의 전략적 슬로건, 대의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수사학들, 추상적인 기대효과의 나열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비단 안양천 프로젝트의 기획서도 그러한 슬로건이나 수사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정치권이 언제부터인가 쏟아내기 시작한 문화담론들은 확실히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문화/예술의 개념과 수사학들만을 찾아내 그들 고유의 정치적 수사학과 결합시킨 것이다. 이것을 정치의 미학화에 의한 ‘미학적 키치’이라면 반대로 예술이 정치화한 수사학들은 ‘정치적 키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선거기간에 유세연설을 하고 지역현안에 대해 토론하고 공약하는 일련의 정치활동과 예술가의 활동을 비교해 보자. 같은 목표를 가지더라도 그 매커니즘은 다르다.
서울(중앙)과 지방(변방)으로 구분되는 권력의 지형도를 각인시키고 있는 우리가 지역에 기반을 둔 미술운동을 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공공의 정물화나 공공의 풍경화가 나올 법하다. 지역성과 공공성이 결합한 공공미술은 어떤가? ‘공공미술’하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환경미화나 환경개선, 건축물 장식물과 같이 단순히 공공을 위한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으로 그치는 미술이 아니라, 지역의 여러 이슈에 대해 발언하고 개입하고 참여하는 미술. 바로 여기에 박관장의 지역대안론이나 안양천 프로젝트의 의미가 있다 하겠다.
이러한 맥락에서 안양천 프로젝트는 한마디로 ‘개입의 예술’이었다. 개입의 대상이었던 안양천, 삼덕제지공장 자체는 각각 안양천 살리기 운동과 시민공원조성이라는 정치적인 이슈-즉 지역의 공공 아젠다(의제)의 장소이다. 이번 안양천 프로젝트는 공공미술에 있어서 현장성, 장소특정성, 기록성, 공공성, 행동성이 어떻게 실행되는지,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미술을 보여주었다. 좁은 스톤앤워터 실내공간을 벗어나 예술은 일상 속으로, 공공 속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공공영역으로 들어간 예술은 단순히 그 영역을 물리적으로 점유하지 않는다. 공공의 아젠다에 개입해 이슈와 담론을 만들어 간다. 스톤앤워터의 ‘생활 속의 예술’은 단순히 미술의 대중화가 아니라 지역성, 공공성, 일상성이 결합되는 개입의 예술이다. 예술가는 일상의 미시정치를 발견하고 지역적인 아젠다(지역의제)를 예술작품을 통해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표현하게 되는 예술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이 바로 예술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한 모더니즘 예술의 성숙한 면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세계화된 모더니즘 예술이 각 지역의 특수한 현장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근거는 예술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예술언어의 보편성과 특수성(지역성)의 변증법적 종합에 있다. 지역미술에 대한 새로운 관점 역시 미시적(지역적)으로만 그쳐서는 안 되고 미시적 관찰과 연구가 거시적(보편적)으로 종합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미술운동이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라고 보는 시각도 팽배하다. 그러나 거대담론이 아닌 미시적 담론으로 운동을 접근한다면 도처에 운동은 진행형이다. 운동은 변화에 대한 요구를 집단적으로 표출하는 것으로, 우리사회가 보여주는 총제적인 역동성은 다름 아닌 수많은 운동들의 총체성이라 할 수 있다.
안양천 프로젝트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는 다음의 백기영 예술감독의 진술에서 잘 드러나 있다. “안양천프로젝트는 예술의 물줄기를 기운차게 흐르게 하는 예술 실험프로젝트이다. 여기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제각기 자기 지평의 도주선을 차고 나와 새로운 경계를 향해 흘러갈 것이다. 안양천은 한강으로 흘러가지만, 예술가들의 상상력은 안양천을 따라 도시의 일상 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예술과 예술의 네트워크, 예술과 사회의 네트워크, 사회와 사회의 네트워크...우리는 촘촘한 그물망을 안양천에 던져 무수한 쓰레기들을 건진다는 생각으로 한 올 한 올의 그물을 조직해 나가야 한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과 다양한 경험이 필요할 것이다. 안양천 프로젝트의 과제는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안양천을 연구하고 지속적인 프로젝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이 즉흥적인 것이 아닌 충분히 검토되어 기획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이 정치에 이용당하지 않고 예술이 적극적으로 정치를 이용한다면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은 한 단계 진보하지 않을까.
2005.1. <문화가 도시를 바꾼다>자료집 수록
2005.11 <안양천프로젝트>단행본에서 수정
2005-12-19 10:5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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