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집
안동네 살다가 주막거리로 이사를 나온 뒤인지 아니면 그전부터 있었는지 기억에 없을 정도로 관심이 없던 그 집이 관심거리 안으로 들어온 것은 그집 아들 경덕이 형때문이었다.
우리집 앞 한길에는 아버지와 청년들이 학림산에서 옮겨다 세워놓은 비석같은 바위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날도 그 바위에 기어 올라갔다 뛰어내리기를 무한반복하고 있었다.
비록 내 키가 작기는 했지만 까치발을 들고 두손을 치켜들어도 꼭대기에 닿지 않을 정도의 높이를 가진 비석바위였는데 시외버스가 지날때마다 먼지가 폴폴 날리는 속에서도 내 또래 아이들의 기막힌 놀이터 역할을 하였다.
하여간
동인천 가는 버스인지 물왕리 가는 버스인지 먼지 날리며 더푼물 고개쪽으로 올라가고 먼지 뒤에서 마치 서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말탄 이가 짠하고 나타나 말 위에서 거들거들 내 쪽을 보며 내려오는데 순간 '아, 디게 멋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으로 지나는데 그저 넋빠진 눈으로 멍하니 서서 바라만 보는데 그 형이 그런다.
'너 한 번 타볼래?'
내성적인 난 그저 얼굴 벌겋게 하고 뒤로 물러서는데 그가 그런다.
"우리 집에 놀러 올래 ?"
"응."
"조금 있다가 와. 구경 시켜줄게."
나는 곧바로 그 뒤를 따라갔다.
말집 곧 경덕이형네집은 도살장 자리 산중턱에 있었다.
입구에는 우리 메리하고는 차원이 다른 서양개가 있었고 마당입구에는 거위와 칠면조와 닭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마당 한 켠에는 꿩사육장이 있어 낯선 사람을 보고 놀라 푸드덕 거렸다.
사육장 안으로 손을 넣어 떨어진 장끼 꼬리털 하나 집어 드는데 경덕이형이 말을 묶어놓고 다가왔다.
우리같은 촌사람이 아니라 그 형은 완전히 도회지풍이었다. 깨끗한 셔츠, 잘 다려진 바지, 흰 얼굴 그리고 부드러운 말투...
"까투리가 꺼벙이를 여덟마리나 깠어." 그러고는 현관 안으로 들어가며 불렀다.
"들어와."
거실 한 켠에는 장식장이 서있었고 처음 보는 것들이 진열돼 있었다.
거실 테이블에는 장끼가 움직이지 않고 서 있어서 손으로 슬쩍 만지니 "응, 박제야."
해서 "어떻게 만들어?" 하니
"작년에 죽어서 아버지 친구가 만들어 오셨어." 하였다.
그 밖에도 박제나 진열된 것들이 약간은 어두운 거실에서 만나니 으스스 해져서 "나 갈래." 하고는 집으로 돌아 왔다.
그 뒤 말이 한마리 죽었다느니 하는 말이 나왔고 말집은 어느 틈에 이사를 갔고 얼마 안가 그 집터를 앞으로 해서 뒤로 산을 더 깎고 그 자리에 도살장이 들어 왔다.
아직도 가끔 그 집 마당이며 거실의 분위기가 생각나곤 한다.
멋진 매너와 말투와 말탄 모습의 경덕이형도...
글쓴이 임희택(맑은한울)님은
안양시 박달동 범고개에서 태어난 1963년생 안양토박이로 안서초, 안양동중(신성중), 신성고, 한양대(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안양시민권리찾기운동본부 대표 등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고 맑은한울 별칭의 논객으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며 사회복지사로, 맑고 밝고 온누리를 추구하는 자칭 진정한 보수주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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