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키우던 메리가 한 번은 닭을 물고 왔다.
비포장 더푼물 고개를 털털거리며 올라가던 닭차에서 탈출한 놈을 메리가 잡아 물고 온 것이다.
그날 우리도 메리도 닭고기를 먹었다.
집 굴뚝 옆으로 얼기설기 그물망을 엮어서 병아리를 키웠는데 금방 중닭이 되고 어미닭이 되고 그랬다.
그런데 쥐의 소행인지 아니면 족제비의 소행인지 몰라도 가끔 아침에 가슴팍이 뚫려 내장을 쏟아 놓고는 헐떡이는 닭들이 나오곤 했다.
그런 날도 우리는 닭고기를 먹었다.
그 때는 닭잡는 게 참 쉬웠다. 고통스러워 하는 걸 보느니 얼른 확...
안양 시내로 이사를 나온 뒤 닭잡을 일이 없었는데 어느날 뒷방 세들어 살던 민정이던가 정이던가 꼬맹이네 엄마가 나를 불러 내다봤더니 닭이 발을 묶인 채 꼬꼬댁 거리고 있었다.
총각. 닭잡아 봤어?
잡아는 봤는데 ..
이것 좀 잡아줘. 내가 똥집 줄게.
쭈뻣거리며 과도를 들고 달려들었다가 곧 후회를 했다.
다친 닭이 아니라 멀쩡한 닭을 잡으려 드니 고통을 주는 것이었다.
결국 잡기야 잡았지만 마음이 안좋았다.
요즘은 고기가 넘쳐난다.
특히 닭고기는 더욱 넘쳐난다.
닭이든 돼지든 소든 안먹고 살 수는 없겠지만 가급적 줄이려고 작정을 해본다. 10%만이라도 줄여볼까?
지구를 오염시키는 것 중에 육식을 위한 축산업의 비중이 상당하다고 한다.
실제로 시골에 살고 싶어 싼 집이 나오는 게 있어서 들여다보면 십중팔구 근방에 농장 축사가 있다.
환경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농장을 지날 기회가 있었다. 가이드가 하는 말이 재수가 좋으면 소떼를 볼 수도 있다고 했지만 광활한 농장을 다 지나도록 소는 구경도 못했다.
연한 풀을 찾아 이동하는데 한번 지나간 곳은 한참 지나서 풀이 다시 나야 돌아 온단다.
그러니 농장은 늘 푸르단다.
그런 거와 비교하면 비좁은 축사 안에서 사료만 먹고 사는 소나 돼지는 얼마나 불행한가?
넓고 푸른 농장의 소는 상대적으로 행복하겠지.
글쓴이 임희택(맑은한울)님은
안양시 박달동 범고개에서 태어난 1963년생 안양토박이로 안서초, 안양동중(신성중), 신성고, 한양대(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안양시민권리찾기운동본부 대표 등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고 맑은한울 별칭의 논객으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며 사회복지사로, 맑고 밝고 온누리를 추구하는 자칭 진정한 보수주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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