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응]삐라·뽀빠이·김추자 그리고 '목요포럼’'
[2004/10/30 시민연대]문화예술위원장
[2004/10/30 시민연대]문화예술위원장
초등학교 1, 2학년때 일이다. 학교를 다녀오면 책보자기 팽개치고 논밭으로 나간다.
벌렁 드러누워 파란하늘을 본다. 반짝이고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삐라'(bill의 일본말) 하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다 떨어지는 방향을 가늠해 냅다 뛴다. 물론 땅만 유심히 보고 다녀도 그까짓 삐라 몇십장은 쉽게 주웠다.
그것이 관제삐라든 북에서 넘어온 삐라든 관계 없었다. 등교길에 경찰서에 들려 삐라 10장당 공책 한 권과 맞바꾸면 그걸로 끝이다. 어린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활동이었다.
5, 6학년때 일이다. 당시 대표적인 군것질 과자로 '라면땅'이란 것이 있었다. 라면부스러기를 살짝 구어 포장한 과자였는데 '라면땅'보다 유사상품 '뽀빠이'가 더 인기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과자봉투에 간첩들의 암호문이 새겨져 있다는 거다. 그걸 발견한 사람에게는 대대적인 포상금이 내려졌다는 등 교실 안이 온통 '뽀빠이 소동'이었다. 난 그 이후로 과자봉투만 보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뚫어지게 쳐다보며 포상의 기회를 노렸다.
또한 당시 인기가수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라는 노래와 춤도 북한에 보내는 수신호라는 소문이 퍼지며 온통 세상은 암호 투성이였다.(아! 그때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중학교 1, 2학년 우표수집에 취미를 붙여가고 있었을 때라 아침이면 이화문방구(현재 안양여고 사거리) 안을 신규우표가 나왔나 한번씩 기웃거리곤 했다. 근데… 허름한 작업복에 흙 묻은 군화, 큼지막한 가방을 멘 한 아저씨를 보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동안 머릿속에 그려오던 '새벽산을 내려온 간첩'의 이미지와 너무도 흡사했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소인 찍힌 우표를 사서 편지봉투에 붙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속으로 '이제 횡재했다'고 외쳤다.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처럼 말이다.
누구는 간첩선도 신고하고 누구는 땅굴도 발견한다는데 이 정도면 효도 한번 하겠다 싶은 마음에 그 간첩(?)을 정신없이 미행하다 중앙시장 어느 골목에서 놓치고 말았다.(당연히 학교 지각한 죄로 죽도록 맞았다)
지금도 어느 시골에 가면 '이웃집에 온 손님 간첩인가 다시 보자', '앞서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 보자' 등의 문구가 새겨진 녹슨 철제간판이 남아있는걸 보곤 한다.(그때 많았던 그 간첩들은 다 어디 갔을까?)
지금은 2004년이고, 내 나이가 꺽어진 구십인데도 종종 아직도 살아있는 그 망령들이 나를 현기증 나게 한다.
최근에는 여전히 빨갱이나 좌경용공을 입에 달고 다니는 박홍 신부가 안양시청의 '목요포럼'이라는 근사한 광장에서 '화해와 통합을 이루는 생명가치'라는 아주 근사한 명제 하에 '레드코미디'가 있었고 동원된 관중들이 열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릴적 하늘을 날던 그 삐라들과 우울했던 내청춘과 그 낡아빠진 철제간판의 표어들과 김추자의 '거짓말이야'가 뒤엉키면서 춤을 춘다.(아무리 되돌리려 해도 역사는 꿈틀거리며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것 같다)
몇 일전 광주비엔날레를 관람하고 올라오는 길에 어느 고속도로 휴게실 공중화장실에 쓰여진 다음과 같은 표어들을 보며 아들과 함께 웃었다. 이 표어들을 박홍 신부에게 바친다.
화장실앞/ 多不有時(다불유시-시간이 별로 없다)
소변기앞/ 進步- '한걸음 더 앞으로'
벌렁 드러누워 파란하늘을 본다. 반짝이고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삐라'(bill의 일본말) 하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다 떨어지는 방향을 가늠해 냅다 뛴다. 물론 땅만 유심히 보고 다녀도 그까짓 삐라 몇십장은 쉽게 주웠다.
그것이 관제삐라든 북에서 넘어온 삐라든 관계 없었다. 등교길에 경찰서에 들려 삐라 10장당 공책 한 권과 맞바꾸면 그걸로 끝이다. 어린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활동이었다.
5, 6학년때 일이다. 당시 대표적인 군것질 과자로 '라면땅'이란 것이 있었다. 라면부스러기를 살짝 구어 포장한 과자였는데 '라면땅'보다 유사상품 '뽀빠이'가 더 인기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과자봉투에 간첩들의 암호문이 새겨져 있다는 거다. 그걸 발견한 사람에게는 대대적인 포상금이 내려졌다는 등 교실 안이 온통 '뽀빠이 소동'이었다. 난 그 이후로 과자봉투만 보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뚫어지게 쳐다보며 포상의 기회를 노렸다.
또한 당시 인기가수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라는 노래와 춤도 북한에 보내는 수신호라는 소문이 퍼지며 온통 세상은 암호 투성이였다.(아! 그때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중학교 1, 2학년 우표수집에 취미를 붙여가고 있었을 때라 아침이면 이화문방구(현재 안양여고 사거리) 안을 신규우표가 나왔나 한번씩 기웃거리곤 했다. 근데… 허름한 작업복에 흙 묻은 군화, 큼지막한 가방을 멘 한 아저씨를 보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동안 머릿속에 그려오던 '새벽산을 내려온 간첩'의 이미지와 너무도 흡사했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소인 찍힌 우표를 사서 편지봉투에 붙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속으로 '이제 횡재했다'고 외쳤다.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처럼 말이다.
누구는 간첩선도 신고하고 누구는 땅굴도 발견한다는데 이 정도면 효도 한번 하겠다 싶은 마음에 그 간첩(?)을 정신없이 미행하다 중앙시장 어느 골목에서 놓치고 말았다.(당연히 학교 지각한 죄로 죽도록 맞았다)
지금도 어느 시골에 가면 '이웃집에 온 손님 간첩인가 다시 보자', '앞서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 보자' 등의 문구가 새겨진 녹슨 철제간판이 남아있는걸 보곤 한다.(그때 많았던 그 간첩들은 다 어디 갔을까?)
지금은 2004년이고, 내 나이가 꺽어진 구십인데도 종종 아직도 살아있는 그 망령들이 나를 현기증 나게 한다.
최근에는 여전히 빨갱이나 좌경용공을 입에 달고 다니는 박홍 신부가 안양시청의 '목요포럼'이라는 근사한 광장에서 '화해와 통합을 이루는 생명가치'라는 아주 근사한 명제 하에 '레드코미디'가 있었고 동원된 관중들이 열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릴적 하늘을 날던 그 삐라들과 우울했던 내청춘과 그 낡아빠진 철제간판의 표어들과 김추자의 '거짓말이야'가 뒤엉키면서 춤을 춘다.(아무리 되돌리려 해도 역사는 꿈틀거리며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것 같다)
몇 일전 광주비엔날레를 관람하고 올라오는 길에 어느 고속도로 휴게실 공중화장실에 쓰여진 다음과 같은 표어들을 보며 아들과 함께 웃었다. 이 표어들을 박홍 신부에게 바친다.
화장실앞/ 多不有時(다불유시-시간이 별로 없다)
소변기앞/ 進步- '한걸음 더 앞으로'
2004-10-30 15: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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