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포시 '별 덕후' 강봉석 주무관
너 나 우리 별 헤는 밤 이 사람의 진심이다
기호일보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962942
기자명 임영근 기자
‘별’ 이야기만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별 덕후’가 있다. 주인공은 군포시청 공직자로 17년간 누리천문대를 지키는 강봉석 주무관이다. 고교 시절 처음 본 은하수에 반해 하늘을 연구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생활하는 강 주무관의 좌충우돌 인생 이야기를 조명해 봤다.
강봉석 주무관.
# 당돌한 고교생의 천문학 입문 계기
강 주무관이 천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강화도에 놀러가 밤하늘 은하수를 보게 되면서다. 서울이 고향인 강 주무관이 평소 바라보던 도심의 흐릿한 하늘과 달리 강화도의 짙은 어둠 속 맑은 하늘에서 빛나는 은하수는 마치 첫사랑을 만난 듯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하늘에 대한 궁금증이 싹트게 된 시작이었다.
이후 천체망원경을 구입하고자 용돈을 모았다. 약 1년간 모은 돈은 고교 3학년생 입장에서는 큰 금액이었지만, 망원경 판매 가격의 3분의 1도 채 되지 않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이 학생은 당돌하게도 천체망원경을 제작하는 공장을 직접 찾아 나섰다. 그리고 꼬깃꼬깃 모은 돈을 내놓고는 "천체망원경 사기에는 부족한 금액이지만 미래 천문학자를 위해 망원경을 만들어 달라"고 사정했다. 아니 떼를 썼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찾아간 곳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천체망원경 제작사인 서울의 A과학사다. 그곳에서 지금은 작고한 김한철 사장을 만났다. 강 주무관은 김 사장이 아마추어 천문 분야에서 유명한 분이었지만 당시는 몰랐다고 한다.
몽골 테를지 별사진.
어린 학생이 밤하늘의 별을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찾아왔다는 소식을 접한 김 사장은 기특한 마음이 들었는지 흔쾌히 ‘헐값’을 받고 망원경을 제작해 집으로 보내 주겠다고 수락하고 학생을 돌려보냈다.
한 달 정도 뒤에 천체망원경을 받은 강 주무관은 매일 밤하늘 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천문학 불모지였던 당시, 우리나라에서 구하기도 힘들 정도의 천문학 잡지를 김 사장이 1년간 보내 줬다고 한다. 그 잡지에서 허블망원경이 우주로 쏘아 올려진 사실도 알게 됐고, 갖가지 과학지식을 습득하며 천문가의 꿈을 키워 나갔다.
# ‘천문대 건립’ 무모한 프로젝트가 실현되다
이후 강 주무관은 충북대 천문우주학과에서 천문 연구에 매진하다 1998년 졸업을 하게 된다. 당시는 IMF 구제금융으로 온 국민이 힘들었던 시기였다. 더구나 천문학을 연구하며 취업할 곳은 한국천문연구원 외에는 전무한 실정이었다.
젊은 패기 하나밖에 없던 강 주무관은 선배와 함께 직접 천문대를 짓기로 마음먹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인공 불빛이 없는 곳을 찾아야 했기에 조용한 제주도 바닷가를 건립지로 정했다. 그리고 몇 달 고생한 끝에 적당한 폐교를 발견한 뒤 마을 이장을 만나 동의도 구하고 시의 허가도 받았다. 폐교 옥상에서 부푼 꿈을 안고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날이 어두워지자 바닷가에 오징어잡이배(채낚이배)가 환하게 비추는 게 아닌가? 인공 불빛이 없는 곳이어야 하는데 다 된 줄 알았던 계획이 물보라와 함께 부서져 나갔다.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2006년 부분일식 특별 관측회.
하지만 그 어떤 고난도 강 주무관을 멈춰 세우지는 못했다. 강 주무관은 지도교수를 찾아가 예천군 내에 천문대를 만드는 ‘무모한’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연구소 법인을 차렸다. 선배가 운영하던 주유소를 팔아 건립비를 마련하고, 교수님 땅을 강제로 빼앗다시피 해서 그 자리에 조그맣게 천문대 부지를 마련했다. 설계사, 건축사와 어떻게 건물을 지을지를 함께 고민했다. 천문대 건물에서 숙식을 해 가며 손수 민간 천문대를 지었다. 드디어 예천천문우주센터가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2002년 4월 26일이었다. 예천군과 협의해 기부채납 형식으로 운영비를 지원받아 3년 정도 일했다.
그러다 집안에 사정이 생겨 더 이상 근무를 하지 못하고 서울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 유성우 보여 주려 수백 명 모았는데…
천문학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살면서 꼭 보고 싶은 3대 천문현상이 있다. 바로 오로라, 개기일식, 유성우다.
강 주무관은 오로라가 죽을 만큼 보고 싶어 2013년 2월 알래스카를 방문했다. 11년 주기로 보기 좋은 시간이 돌아온다. 밤 평균온도가 다행히 영하 35℃ 정도로 평년보다 높아 덜 춥고 날씨도 좋아 어렵지 않게 체류기간 5일 내내 오로라는 두 눈으로 관찰했다.
알래스카를 다녀온 뒤 보통 말로만 듣고 TV에서나 보던 오로라 관측의 감동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생생한 관측기를 전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유성우는 2002년 예천군에 있을 때 봤다. 사자자리 유성우는 33년에 한 번 돌아오는 진귀한 천문현상이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궤도 계산 결과 1999년 사자자리 유성우가 내리리라 예측했다. 이 특별한 기회를 여러 사람들에게 선사하고자 충북대 운동장에 500명이 넘는 시민들을 모았지만 고작 별똥별 두 개를 관측하는 데 그쳤다. 천문 예측은 기상예보와 비슷하다. 더구나 33년 주기로 돌아오는 현상을 정확하게 맞추기는 힘들다. 사자자리 유성우 관측이 3년 동안 실패했다. 2002년에는 관측을 포기했는데, 그 해 기다리던 ‘별비’가 쏟아졌다. 유성우 관측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려던 계획은 혼자 보게 되는 대실패로 돌아갔다.
# 군포 누리천문대 지킴이
예천천문우주센터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2004년 여름, 군포시에 천문대가 들어선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턱대고 공사 현장인 대야미동을 찾았다. 30대 초반 젊은 나이지만 천체 분야에 나름 일가견이 있던 강 주무관의 시각에 공사 현장의 잘못된 부분이 여럿 눈에 띄었다.
태양관측 단체견학.
당시 담당자는 개관 준비도 바쁘고 천문시설, 망원경 설치, 장비 등에 대해 잘 모르니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담당자와 얘기도 나누고 꽤 자주 들르면서 도움도 줬다. 마침 이때가 천문대 개소 이후 이를 운영·교육할 천문 분야 전문가가 필요해 공직자 채용공고를 내려던 시기였다. 누구보다 천문 분야에 박식한 지식을 갖췄던 강 주무관은 채용에 응시해 당당히 합격했다. 천문대 시설 개·보수부터 천체관측, 천문행사, 시민천문대 컨설팅, 각종 교육 등 1인 다역을 소화해 내며 지금까지 누리천문대를 지킨다.
강 주무관은 군포시 반월호숫가에 큰 규모의 시민천문대 건립을 꿈꾼다. 가능하다면 국내 최초의 태양천문대를 건설해 밤에는 물론 낮에도 볼거리가 풍부한 특별하고 재미있는 시민천문대를 만들어 청소년들에게 우주과학에 대한 꿈을 키워 주고 싶은 마음이다.
사람들은 대개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이냐고 물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삶’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꿈을 좇아 용감하게 돌진해 뜻한 바를 이뤄 내고, 이제는 자신과 같이 천체의 신비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사는 강 주무관은 진정 행복한, 군포의 물건 중 물건이다.
군포=임영근 기자 iy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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