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조완기]군포의 정치이야기 4탄(2020.06.18)

안양똑딱이 2020. 6. 18. 15:40

 

 

제가 아는 군포의 정치이야기를 총선(군포시장)을 중심으로 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번에 나누어 게시 할겁니다.

 

군포시 정치 이야기 NO. 4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는 야당의 실력자인 김대중 총재가 정계에 복귀하면서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가 제 1야당이 되면서 통합민주당은 졸지에 제 3당이 되었다.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과 김종필 총재가 이끄는 자유민주연합을 포함한 4개의 정당이 한국사회의 주요 정당이었다. 군포시 선거구가 시흥시와 분구되어 단독 선거구가 된 이후 첫 번째 국회의원 선거였다. 그렇기 때문에 산본 신도시의 표심을 가늠해보는 중요한 선거였다고 평가 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95년 초대 민선 시장 선거에서 소각장 이슈가 워낙 강해서 산본 신도시의 정치성향을 가늠하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정치흐름으로는 15대 총선은 당시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의 선전여부에 따라 차기 대선을 준비 하느냐 못하느냐의 가늠자 선거이기도 했다.

당시 군포시에 출마한 후보 면면을 살펴보면 신한국당의 강창웅씨는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변호사 개업을 한 꽤 유명한 전관 변호사였다. 반면 새정치국민회의는 지역에 전혀 연고가 없는 민변출신 약관의 인권변호사인 유선호씨를 공천했다. 그리고 통합민주당은 오랫동안 재야민주화운동을 했던 여익구씨가 공천을 받았다. 그리고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인 심양섭씨가 자민련의 공천을 받았다. 당시 현역인 제정구의원이 분구로 인하여 시흥으로 갔기 때문에 군포 총선는 무주공산으로 현역의원이 없이 정치신인들의 대결이 펼쳐졌다. 또한 출마한 유력 후보들이 군포지역에 별다른 연고가 없는 특징을 가진 선거였다. 따라서 군포시가 수도권 선거의 전형적인 형태를 본격적으로 가지게 된 선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출신지역에 따른 정당지지 흐름도 있었지만, 15대 군포 총선은 인물, 경쟁이 전면에 부각된 선거라고 평가 할 수 있다. 강창웅, 유선호, 심양섭 후보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서울대 출신이었고 여익구 후보도 불교계와 재야민주화운동에 뿌리를 두고 지역에서 사회사업을 하던 역량이 있는 후보였다.

따라서 선거는 총6명의 후보가 등록하였으나 초반부터 박빙의 4파전으로 전개 되었다. 신한국당의 강창웅 후보는 여당의 힘과 막강한 재력으로 초반선거를 주도 해 나갔다. 약간 뒤처지던 국민회의 유선호 후보는 지역의 전통 민주당 세력들과 젊은 층이 모여들면서 맹추격을 했다. 여기에서 통합민주당의 여익구 후보는 그간의 민주당 세력들과 호남세력들이 국민회의 유선호 후보를 지지하면서 경쟁구도에서 약간 밀리는 형세였다. 그러나 자민련의 심양섭 후보는 유일한 30대 후보로 신선함과 패기를 기반으로 지역의 충청지역세를 업고 상당한 지지세를 구축하고 있었다. 당시 구도는 보수 계열 2명 진보계열 2명의 후보가 엎치락뒤치락하는 판세가 중반 이후까지 이어졌다. 선거 막판은 결국은 금전과 지지세력 결집으로 결판이 난 것으로 보였다.
당시 군포시 유권자 161,710명 중 101,215명이 투표에 참여하여 62,59%로 전국투표율에 1,3% 뒤졌다. 15대 총선 군포시 당선자는 31,869표(31,9%)을 득표하여 1,746표 차이로 신승한 새정치국민회의 유선호 후보였다. 여당인 신한국당의 강창웅 후보는 간발의 차이인 30,123표(30,15%)로 낙선하였다. 그리고 통합민주당 후보였던 여익구 후보는 진보? 야당 경쟁에서 밀리면서 13,018표(13.03%)을 얻는데 그쳤다. 심양섭 후보는 젊은 패기로 제 4당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며 21,223표(21.24%)을 얻으면서 선전하였다.(심양섭씨가 신한국당 후보였다면 결과 다르게 나왔을 거라는 호사가들의 말들이 있었다.)
당시 선거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 시각이 있지만, 군포에서는 정당경쟁보다는 인물 경쟁이 앞섰던 마지막 선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참고 이야기
- 유선호 후보는 기존도시인 산본1동과 금정동에서 큰 표차이로 이긴 것이 승인이었다.
- 신도시 지역은 강창웅 후보와 박빙이거나 큰 평수에서는 열세였다.
- 제정구의원 시절 주력인 민주당 주요당직자(임석순 등~)와 민주당 성향 지방의원들은 국민회의 유선호 후보 진영으로 대대수가 합류하였다.
- 국민회의 유선호 후보의 선거 기획 총괄은 이후 개혁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의 기반을 놓았던 강영추씨가 맡았다.
- 통합민주당으로 초대 민선시장이었던 조원극 시장은 총선 당시 무소속이었다.
- 여전히 재야진영에 머물던 나는 인권변호사 출신의 유선호 후보를 지원해달라는 당시 재야 지도부? 의 부탁을 받고 후보에게 직접 조언과 강영추 기획실장을 통해 측면 지원을 하였다.
- 당시 모 후보는 개인자금 30~40억을 선거에서 사용하였다는 소문이 파다하였다.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파이프에서 줄줄 샜다는 이야기가 회자되었다.
- 당시에는 각 당의 중앙당에서 중점전략지구에는 선거 자금을 내려 보내는 관행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
- 선거 이후 신한국당의 강창웅씨는 군포에서 정치 활동을 접었다.
- 통합민주당의 여익구씨도 이후 군포에서 정치활동을 중단하고 사회사업에 힘쓰시다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 자민련의 심양섭씨도 지역에서 정치 활동을 지속하지 않았다.
- 지금은 경상남도 도지사인 김경수 지사가 유선호의원의 비서관으로 15대 국회에서 4년간 활동하였다.

-편집자 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소외받는 이들이 없고, 청소년과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사회, 서로에 대한 배려와 정의가 따뜻하게 흐르는 사회를 우리 모두가 꿈꾸고 일꾼이 있다면 그 꿈은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전북 부안에서 태어난 조완기(趙完起.남. 1963/09/14)선생은 서울 갈현초,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온후 공군 현역병 제대,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가톨릭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졸업(행정학 석사)했다. 20대 시절 노동현장에서 일하며 안양사랑청년회 회장, 군포의제21 초대 사무국장(2002), 군포시의회 4대 시의원/광정동(2003-2006), 민주당 국회의원 유선호.김근태 보좌관(4급 상당), 군포YMCA 기록 이사, 노무현 대통령후보 중앙선대위 청년위원회 부위원장, 김상곤경기교육감후보 군포시선대위 공동본부장을 역임하고 현재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으로 안양군포의왕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 서울시의회 입법정책자문관으로 활동하면서 2018년 지방의회와 지방자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행정안전부장관(장관 김부겸) 표창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