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영화 중 블록버스터의 효시는 어떤 작품일까. 영화진흥위가 지난 1월 발행한 연구보고서 ‘한국영화산업 구조분석’에 따르면 ‘쉬리’를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초 작품이라 했다. 하지만 ‘쉬리’가 우리나라 블록버스터의 효시는 아니다. ‘쉬리 ’가 31억원의 제작비(마케팅비 포함)와 초특급흥행(전국관객 약 580만명)이라는 기록을 남긴데다 강제규 감독이 이 영화로 100억원이나 벌었으니 한국형 블록버스터 하면 팬들이 제일 먼저 ‘ 쉬리’를 떠올리는 것 같다. 하지만 영화연구가 정종화씨의 주장은 다르다.
“1960년대는 우리나라 영화의 전성기였어요. 그 당시에 지금의 블록버스터에 해당하는 영화가 여러 편 있었는데 권영순 감독의 ‘진시황제와 만리장성’은 초대형작품이죠. 한양영화사가 3500 만원을 들여 만든 이 작품을 우리 영화사에서는 블록버스터의 효시로 꼽고 있지요.” 정씨는 “‘진시황제와 만리장성’은 돈을 많이 들여 캐스팅하고 화려한 볼거리로 영화를 치장하며 대대적인 마케팅 공세와 함께 개봉관을 대량 확보했다”며 “이 영화는 단기간에 관객을 흡입해 흥행 기세를 폭풍처럼 몰아가는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전략을 구사했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그 근거로 여러가지 자료를 제시했다.
1962년 추석 흥행을 목표로 제작된 이 영화는 김승호, 김진규, 신영균, 박노식, 허장강, 김희갑, 김지미, 이빈화, 윤인자 등 그 당시 스타가 총출연한 화려한 캐스팅에다 엄청난 물량을 투입해 만든 세트장 등 블록버스터의 요건을 두루 갖추었다는 것이다. 거대한 중국 만리장성을 경기도 안양의 산에 재현해놓고, 서울 뚝섬의 한양영화사 스튜디오에 웅장한 진시황제의 왕궁 등 건물을 지어놓은 후 촬영에 들어갔다고 한다. 정씨는 “장수들이 벌이는 스릴 넘치는 마차 경기가 마치 한국판 ‘벤허’를 보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5000여명의 엑스트라와 출연자 의상비만도 엄청났다고 한다. 정 씨는 “62년 6월10일 화폐개혁으로 100환이 10원이 되었죠. 그때 영화제작비 3500만원을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0억원이 넘을 것”이라며 “그후 ‘진시황제와 만리장성’ 만큼 많은 제작비를 들여 만든 대작은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서울 인구가 250만명이었는데 국도(서울)극장에서 개봉돼 8만여명이 이 영화를 봤다고 한다. 하지만 그후 흥행실패로 ‘진시황제와 만리장성’을 제작한 한양영화사는 재정이 바닥나 64년 문을 닫고 말았다.
“지난주 권영순 감독 타계 10주년을 맞아 한국영상자료원 주최로 권감독 회고전이 있었죠. 그 자리에 김수용, 고영남, 정진우 감독과 강한섭 교수 등이 참석했는데 ‘진시 황제와 만리장성’이 우리 영화사에 남을 블록버스터의 효시라는 제 주장에 수긍했어요.”
국내에서 상영된 외국영화와 방화의 제목만 대면 감독, 배우와 줄거리를 총알처럼 쏟아내 충무로에서 ‘움직이는 영화사전’으로 불리는 정씨의 이같은 주장에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신일하 연예칼럼니스트/ 연예X파일/ 한국 블록버스터 효시는 ‘진시황제…’ [문화일보 2002-12-20]
“1960년대는 우리나라 영화의 전성기였어요. 그 당시에 지금의 블록버스터에 해당하는 영화가 여러 편 있었는데 권영순 감독의 ‘진시황제와 만리장성’은 초대형작품이죠. 한양영화사가 3500 만원을 들여 만든 이 작품을 우리 영화사에서는 블록버스터의 효시로 꼽고 있지요.” 정씨는 “‘진시황제와 만리장성’은 돈을 많이 들여 캐스팅하고 화려한 볼거리로 영화를 치장하며 대대적인 마케팅 공세와 함께 개봉관을 대량 확보했다”며 “이 영화는 단기간에 관객을 흡입해 흥행 기세를 폭풍처럼 몰아가는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전략을 구사했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그 근거로 여러가지 자료를 제시했다.
1962년 추석 흥행을 목표로 제작된 이 영화는 김승호, 김진규, 신영균, 박노식, 허장강, 김희갑, 김지미, 이빈화, 윤인자 등 그 당시 스타가 총출연한 화려한 캐스팅에다 엄청난 물량을 투입해 만든 세트장 등 블록버스터의 요건을 두루 갖추었다는 것이다. 거대한 중국 만리장성을 경기도 안양의 산에 재현해놓고, 서울 뚝섬의 한양영화사 스튜디오에 웅장한 진시황제의 왕궁 등 건물을 지어놓은 후 촬영에 들어갔다고 한다. 정씨는 “장수들이 벌이는 스릴 넘치는 마차 경기가 마치 한국판 ‘벤허’를 보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5000여명의 엑스트라와 출연자 의상비만도 엄청났다고 한다. 정 씨는 “62년 6월10일 화폐개혁으로 100환이 10원이 되었죠. 그때 영화제작비 3500만원을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0억원이 넘을 것”이라며 “그후 ‘진시황제와 만리장성’ 만큼 많은 제작비를 들여 만든 대작은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서울 인구가 250만명이었는데 국도(서울)극장에서 개봉돼 8만여명이 이 영화를 봤다고 한다. 하지만 그후 흥행실패로 ‘진시황제와 만리장성’을 제작한 한양영화사는 재정이 바닥나 64년 문을 닫고 말았다.
“지난주 권영순 감독 타계 10주년을 맞아 한국영상자료원 주최로 권감독 회고전이 있었죠. 그 자리에 김수용, 고영남, 정진우 감독과 강한섭 교수 등이 참석했는데 ‘진시 황제와 만리장성’이 우리 영화사에 남을 블록버스터의 효시라는 제 주장에 수긍했어요.”
국내에서 상영된 외국영화와 방화의 제목만 대면 감독, 배우와 줄거리를 총알처럼 쏟아내 충무로에서 ‘움직이는 영화사전’으로 불리는 정씨의 이같은 주장에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신일하 연예칼럼니스트/ 연예X파일/ 한국 블록버스터 효시는 ‘진시황제…’ [문화일보 2002-12-20]
2006-11-23 23:5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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