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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박찬응의 ‘이미지로 세상읽기’①

안양똑딱이 2016. 6. 11. 20:27
[기사]박찬응의 ‘이미지로 세상읽기’①

[01/20 안양시민신문]安養通學生一同 16.2.11


 

박찬응의 ‘이미지로 세상읽기’①
安養通學生一同 16.2.11

이 사진이 내 손에 들어온 건 지난 99년이었다. 이 사진 속에 엄청난 양의 정보가 숨어있는 것만은 확실한데 해가 바뀌도록 특별한 정보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게으른 탓이다.

지금까지 읽어낸 몇몇 정보를 기술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사진의 해석에 가장 중요한 단서는 사진 아래 부분에 선명히 새겨진 ‘安養通學生一同 16.2.11’이다. 직역 하자면 ‘소화 16년 2월10일 기차를 타고 통학하던 중고생 29명이 안양역전에 모여 단체로 사진촬영을 하다’이다. 소화 16년이라면 서기 1941년이고 그해 12월7일 일본군은 진주만을 공격했다.

앞줄엔 8명이 의자에 앉았고, 가운데 12명은 서있으며 뒷줄에 9명은 의자위에 서있다. 이들의 교복과 교표는 여러 가지로 보이며, 두꺼운 옷과 얇은 옷, 검은 옷과 색바랜 옷 고운 손과 거친 손 등이 구별된다. 반짝이는 단화와 흙 묻은 작업화도 그렇고, 책가방은 보이지 않고 다리사이로 도시락보자기가 생뚱맞다. 가운데 줄 4명은 안경을 썼다.

당시의 시대상황은 일본의 전쟁에 긴박감이 가해지는 것과 함께, 학교는 폐쇄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고, 모든 교육이 정규교육보다 근로봉사, 생산증강, 방공호 구축작업과 군사훈련에만 더 바빴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요즘처럼 사진기가 흔치않은 시절임에도 이들이 안양에서 일장기를 뒤로 하고 함께 사진촬영을 했다? 누가 왜 찍었을까? 이들은 어떻게 해방정국을 맞이했을까? 이념갈등과 민족전쟁으로 빚어진 분단상황을 어떻게 살아갔으며 어떻게 죽어갔을까? 지금껏 생존자는 누구일까?… 여러 가지 의문이 스쳐지나간다.

내가 파악한 단하나의 사실은 뒷줄 오른쪽 끝에 있는 분은 당시 15세였으며, 해방 후 월북했다고 한다. 그 후의 생사는 모르고 그 가족들은 20년 동안 보안감찰대상으로 시달렸다고 했다.

※같은 사진을 가지고 있거나 이 사진 속의 사람들에 관한 짧은 단상이라도 알고 계신 분은 신문사로 연락바랍니다. 위의 사진을 제공 하신 분은 본인의 뜻에 따라 밝히지 않았습니다.

2006-01-20 17: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