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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레인 속 묻혀버린 아기장군바위

안양똑딱이 2016. 6. 11. 09:31

의왕과 군포와의 경계인 오봉산 기슭에 있던 '장군바위'(일명 아기장군 바위)가 도로확장공사 과정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이 안양지역시민연대를 통해 의왕과 군포 등 지역사회에 알려지며 그 흔적 찾기에 나선 가운데 군포시민신문이 특집으로 이 문제를 다뤘다.

장군바위가 사라진 것을 첫 발견한 의왕향토문화연구소를 비롯 의왕시, 안양방송 취재진에서도 그동안 장군바위의 소재를 추적해 왔으나 현재까지 흔적을 찾지 못한 가운데 사진기록 조차 없어 지역에 내려오던 '장군바위' 설화의 증거가 영영 사라지게 됐다.

이 바위는 아기장수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 문화유산으로 크기는 길이 3미터, 폭 2미터, 높이 2미터 정도로 주민들의 쉼터 역할도 하는 등 인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나 도시개발과 지역사회의 무관심으로 인해 역사를 잃어버린 결과를 초래했다.

장군바위가 있던 위치는 군포시와 의왕시의 경계 지점으로 행정상으로 군포시 당정동에위치하고 있었으며 의왕시는 '장군바위'의 설화를 지역 문화적 전설 유래로 소개 해 온 반면 군포시는 관심을 갖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라진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

이같은 사실은 안양지역시민연대를 통해 소식을 접한 군포시민신문 취재진이 장군바위에 대한 현장조사를 한 결과 군포시 당정동 엘지아파트 뒤편 오봉산 밑, 새전마을에서 의왕시로 넘어가는 경계 군포쪽에 위치하고 있던 장군바위의 모습은 없음을 소개했다.

군포시민신문은 전통문화유산이 개발과 함께 사라졌음에도 군포시는 사라진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으며, 법적으로 지정된 문화재가 아니라 특별히 관리할 주체도 없었다는 등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며 문화재 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현재로서는 길이 3미터, 폭 2미터, 높이 2미터 크기의 장군바위가 고급 정원석으로 어디론가 팔려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해당 지자체의 관심도 소재지를 찾기위한 노력도 없는 것이 현실로 지역 문화유산의 사라짐은 지역사회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아기장군바위 증언 녹취록

이 지역 원주민 최병희 할머니와 그 따님의 증언입니다.
녹취: 의왕향토문화연구소(김진필, 조창연)
일시: 2005. 4. 14. (목) 17:00


[군포시민신문/ 포크레인 속에 묻혀버린 '군포 설화' ]

당정동 '장군바위' 도로 공사 후 소실 뒤늦게 알려져
군포시는 사라진 사실 조차 몰라

 


▲ 장군바위가 사라진 당정동 LG아파트 부근 도로. 신설된 후 장군바위에 위치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설화가 깃든 전통문화유산이 개발과 함께 사라졌으나 군포시는 사라진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문화재 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

의왕문화원에 따르면 군포시 설화집에도 나오는 장군바위(당정동 소재)가 몇년전 인근 도로 공사가 마무리 된 뒤 아무도 모르게 종적을 감췄다.

이 바위는 군포시와 의왕시 경계인 오봉산 인근에 위치해 평소 의왕시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왔으며, 의왕문화원에서 최근 바위가 사라진 사실을 확인하고 장군바위의 흔적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군포시는 사라진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으며, 법적으로 지정된 문화재가 아니라는 등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장군바위는 군포시 당정동 엘지아파트 뒤편 오봉산 밑, 당정동 새전마을에서 의왕시로 넘어가는 경계 군포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몇 년 전부터 아파트가 신축되는 등 개발이 진행 중이었으며 장군 바위가 위치하던 곳 또한 10미터 가량의 왕복 2차선 도로가 신설돼 바위가 있던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장군바위가 이 과정에서 관리소홀로 사라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을 뿐이다.

장군바위는 법으로 지정된 문화재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바위는 아기장수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 문화유산으로 크기는 길이 3미터, 폭 2미터, 높이 2미터 정도로 주민들의 쉼터 역할도 하는 등 인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 부근에서 수십 년을 살았다는 남희옥 할머니는 “몇 년 전부터 안 보인다 했어. 여기 아파트 짓고 개발한 뒤로 안 보이는 것 같아. 예전에 거기 모여서 쉬기도 하고 그랬는데…”라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할머니는 또 “안 보여서 어떻게 된 건가 했는데 정말 사라진 게 맞구먼” 이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주민들이 이처럼 바위가 사라진 사실을 알고 몇 해 전부터 행적을 궁금해 하고 있었던 것에 반해 시는 바위가 사라진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군포시 한 관계자는 “바위가 사라진 것을 몰랐다. 전설이 내려오는 문화 유물의 가치는 알지만 현재 법률상으로는 이런 문화유산의 경우 법적 보호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문화원 관계자는 “바위가 사라졌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설화가 깃든 문화유물의 경우 문화재로 지정이 되지 않아 특별히 관리할 주체도 없어 관리의 어려움이 많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최근 당정동으로 이사를 왔다는 김미숙씨는 “우리 동네에 그런 유물이 있는지 몰랐다. 그런 것을 시가 잘 관리하고 보호한다면 아이들 교육에도 좋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고 말했다./ 박기범 young2576@naver.com


장군 바위는 어떤 바위인가?
아기장수 설화 전래...시민들 휴식과 추억 깃든 장소

군포 문화원이 지난 2004년 발간한 ‘군포시 지명유래 및 씨족 역사’에 따르면 장군바위는 군포1동(당정)의 벌새전리 남쪽에 있는 바위로, 당정리 새전마을에서 의왕읍으로 넘어가는 길 옆에 있는 바위였다. 이 바위에는 아기장수와 용마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가난한 부부가 옥동자를 낳았는데, 부인이 밖에 나갔다가 방에 들어와 보니 아기가 천장에 올라가 있었으며 갓난아기의 옆구리에는 날개가 돋아 있었다. 이 아이가 보통의 아이가 아닌 것을 알게 된 부모는 장차 이 아이가 자라면서 역적이 될 것이 두려워서 이 아이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부모는 곧 아이를 이불로 덮고 무거운 맷돌을 가져다가 아이를 눌러서 죽이고 말았다.

그러자 뒷산인 오봉산에서 용마가 튀어나오더니 무릎을 꿇고 죽었다. 이 용마는 장차 아기장수가 탈 말로서 아기장수가 죽자 용마도 스스로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 바위에는 흡사 말 발자국 같은 자국이 남아있으며, 이런 연유로 인해 이 바위를 장군바위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또한 군포시 지명유래집을 인용한 ‘군포시 전설·설화·민담 조사’에서는 벌새전리 남쪽의 오봉산 밑에 있는 바위로 풍수상 이곳에는 장군이 태어날 자리인데 장군은 태어나지 않고 대신 바위가 있어 ‘장군바위’라고 부른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경우 이 내용과는 다른 설화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A 할머니는 “어느 날 장군이 이 곳을 지나다가 그 바위에 발을 올렸는데, 그 자국이 바위에 찍혔어. 그 때부터 장군바위라고 불렀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주민들의 진술에 따르면 인근 아파트가 개발될 당시만 해도 존재했으나, 아파트와 인근 도로 공사가 끝난 뒤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오래 거주한 어르신들에 따르면 “어려서 바위에 올라가 놀기도 하고 오다가다 힘들면 쉬기도 했다”며 “멀쩡하게 있을 때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더니 왜 이제 와서 그러나 몰라”라며 시민들의 무관심한 태도를 지적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나?
사진 한장 없을 만큼 보존 소홀, 지역에 대한 무관심, 관리시스템 부재 문제

장군 바위는 현재 문헌상의 기록만 남아 있을 뿐 사진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시민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당정동에 오랜 세월 거주한 남희옥 할머니는 “그게 중요한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어. 그냥 오다가다 있는 바위인가보다 하는 거지. 뭐 특별한 바위라는 표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라고 말해 시가 문화유물의 관리는 물론이고 홍보에도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더구나 인근에 아파트가 새로 지어진 다음에 이주한 주민들은 장군바위라는 이름조차 낯설어 한다. 몇 달 전에 이사를 왔다는 김미숙씨는 “이 곳에 장군바위라는 게 있나요? 처음 듣는데요?”라고 말해 장군바위의 소재 파악은 물론 시민들의 정주의식 강화를 위한 대책도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군바위가 있던 위치를 정확히 찾아 안내판을 설치하거나, 장군바위 이외에도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 하는 문화유물들에 대한 관리 및 보호 시스템 마련이 필요한 것이다.

군포 문화원 고문을 맡고 있는 심태섭씨는 “어려서 바위에 앉아서 송기(소나무 어린 가지의 속껍질)를 벗겨 먹기도 하고, 진달래를 찧어서 먹기도 하던 그런 추억이 있던 곳이다. 이런 곳이 한순간에 사라지니 답답할 따름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온고지신이라는 말을 모르는 것 같다. 현대 문명이 발달 할수록 옛것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 요즘은 점점 그런 노력이 희박해지는 것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군포 문화원 관계자는 “개발할 때부터 지켜냈어야 하는데 결국 이런 일을 초래하고 말았다. 앞으로 시와 문화원은 물론 시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