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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64]안양 삼막마을2-삼막천 우측(2014.11.22)

안양똑딱이 2018. 8. 16. 16:40

 

[탐사64]삼막마을2-삼막천 우측(2014.11.22)


2014.11.22/ #안양 #도시 #동네 #골목 #안양기억찾기탐사대 #석수1동 #삼막마을 # 64차/ 제64차 여정으로 찾아간 곳은 안양 석수동 삼막삼거리에서 경인교대까지 좌우로 있는 삼막골(삼막마을)이라 불리우는 곳으로 이날 탐사는 지난주 삼막천 좌측 동네와 골목에 이어 삼막천 우측 동네를 경인교대에서 삼성초교까지 내려오며 살펴보았다.

삼막마을 끝자락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 6-8번지 경인교대 경기캠퍼스 교정안으로 들어서면 삼성산의 한쪽 거대한 단면을 마치 두부 자르듯 짤린 절개면을 볼 수 있다. 사실 이 학교는 1970~80년대 집짓는데 쓰이는 자갈이 부족하다 해서 1979년 7월14일부터 1999년 6월30일까지 20년 동안 7천만톤을 골재를 캐낸 자리다.
삼막마을은 천년고찰 삼막사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삼성산의 빼어난 경관 아래 삼막천에는 물 맑고 가재가 지천으로 아는 이들만이 물놀이 하러 올 정도 한적했던 곳이었으나 변해도 너무 변해버리고 말았다.
이곳 주민들은 70년대 말부터 20년 동안 삼성산에서 돌을 캐내느라 남포소리에 소음과 분진 등으로 고통을 받더니 2002년부터 경인교대 경기캠퍼스 조성공사가 시작되고, 2003년에는 삼성산을 터널로 관통해 서울 신림 - 안양 삼막골석산부지 산업도로간 지방도로 개설로 도로가 크게 확장되면서 마을은 개발의 바람앞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특히 삼막IC와 연결되는 제2경인고속도로가 마을뒤로 놓여지면서 마을은 도로에 둘러쌓인 섬으로 전락하면서 과거 주거지는 개발붐과 맞물려 하나둘 외지인에게 매각되면서 지금은 도로를 따라 각종 음식점과 카페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산자락밑에는 전원주택이 들어서면서 과거 원주민들이 살던 집들은 이제 찾아보기기 쉽지 않다.
경인교대 후문앞 산자락에는 안양지역(안양,과천,군포,의왕,광명거주) 장애 학생들을 위해 건립된 공립정신지체 특수교육기관인 안양 해솔학교(http://haesol.sc.kr/)가 있다. 해솔학교는 2002년 8월 착공한 지 1년6개월만인 2004년 3월1일 준공해 2004 3월 6일 유년,초등,중등,고등 총 19학급 113명에 대한 첫 입학식을 갖고 개교했는데 현재 38학급 249명이 재학 중이며 109명의 교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경인교대 정문을 내려오면 사람은 안보이고 수많은 차량만이 오가는 교통 혼잡 사거리다. 이곳에서 안양방향으로 내려오면 안양터널 공사가 한창이다. 2017년 완공을 목표로 안양-성남간 제2경인고속도로 연결을 위해 안양 관양동 동편마을(관양지구) 뒷쪽으로 관악산의 허리를 관통하는 제1공구 터널 공사다.
안양-성남 고속도로는 안양시 석두동(석수IC)~성남시 여수동(성남~장호원 연결) 구간 21.8km를 4~6차로로 있는 도로로 총사업비 7967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으로 롯데건설 등 11개 민간사업자가 출자한 제이경인연결고속도로가 30년간 운영하게 된다.
이 도로 건설 계획을 보면 삼막IC주변에 교통광장을 만든다. 따라서 조용하고 한적했던 삼막마을은 자동차 소음과 매연으로 뒤덮일 것으로 보인다.
관악산 둘레길 이정표와 돌탑이 세워진 삼막교를 건너면 정심여자정보고(안양소년원)다.
삼막천을 끼고 이어지는 뒷쪽 도로변 그래도 오래된 집들이 하나둘 있다. 산자락에 있는 금강사 가는 소로길(이길는 관악산둘레길)로 접어들면 벽돌로 지은 큰 건물이 우뚝 서 있는데 현판에는 안양교회 교육관이라 적혀있다. 그런데 어느 교단인지.. 정체가 불분명해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 길 끝자락 관악산펜션앞에는 오래된 집 몇채가 있다.
이 동네는 석수1동 삼막로 56번길 19(1통)와 삼막로 39번길 5(2통) 71가구에는 2011년 말 까지만 하더라도 도시까스가 공급되지 않아 연탄과 기름보일러를 주 연료로 사용해야 하는 도심속 오지였으며 지금도 도로개설 공사가 한창이다.
삼막로56번길을 따라 내려와 좌측 음식점들을 지나니 막힌 길이다. 굳게 닫힌 철문안으로는 숲이 우거진 넓은 정원이 보이는데 오래된 나무팻말에 삼양농원이라 새겨져 있다.


탐사코스: 경인교대 정문버스정류장-경인교대경기캠퍼스-안양성남고속도로(안양터널공사현장)-석수교-삼막로96번길-정심여자정보고(안양소년원)-관악산둘레길-안양교회교육관-금강사-관악산펜션-삼막로96번길-삼막로24번길-삼막로56번길-삼양농원-사막로24번길-경수대로1244번길-관악현대홈타운아파트-삼성초교-끝.

 

경인교육대학교 경기캠퍼스
경인교대 경기캠퍼스는 경기도로부터 안양시 석수동에 위치한 삼성산 자락의 석산부지6만5천여평(21만9천566㎡)와 시설비 899억원을 지원받아 2003년 12월 착공한 지 2년여만인 2005년 3월1일 개교했으며 전체 학생수는 2천여명에 달한다.
경기도가 학교 부지와 시설비까지 지원하고 나선 이유는 경기도에 교육대학이 없으나 법률상 수도권에 대학교 설립이 불가능하자 경인교대 캠퍼스 유치에 나선 것으로 도는 2001년 '경기교육대학 설립 1천만 서명운동'을 펼치는 등의 노력 끝에 2003년 경기도가 대학 설립예산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정부로부터 경기캠퍼스 설립을 승인받았다.
경기캠퍼스 건축연면적은 51,735㎡(15,650평)로 2003년 12월23일 착공식을 가졌으며 주요시설로는 지상6층 규모의 2개동 종합강의관(6,880평)과 지상3층의 음악관(794평)을 비롯 학생복지센터(1,759평. 지상5층), 기숙사(1,918평. 지상9층), 체육관(1,398평 지상3층), 대학본부(1,337평. 지상 3층), 도서관(1,483평)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2003년 경인교대 캠퍼스 조성 공사를 하면서 삼막천으로 유입되는 배수구에서 거품을 내는 흰색물이 배출되기 시작했는데 이 물의 정체가 수질기준 10배를 초과한 카드뮴 등 다량의 중금속이 함유된 광폐수(鑛廢水)로 삼막천은 죽음의 하천이 되었다.
주민들은 "골재를 캐낼 당시 석산부지에서는 하루에 많게는 200~300박스의 폭약을 터뜨렸다"면서 "석산부지에서 흘러나오는 흰색물의 정체는 채석장 발파용으로 사용했던 화약가루"라 주장하고 배출수에 화약가루 성분이 함유된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경기도건설본부가 명지대 산학협력단에 용역을 의뢰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배출수는 수질환경보전법 기준치보다 알루미늄 30배, 카드뮴 10배, 망간 7배, 납이 3배 초과했으며 경인교대 경기캠퍼스 인근 토양은 기준치보다 알루미늄 1659배, 망간 1723배, 납 104배 등이 초과한 것으로 분석돼 다량의 중금속이 포함된 유출수가 장기간 안양천으로 유입된 것으로 예측되며 중금속 오염 심각성은 상상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경기도가 도유지를 경인교대 경기캠퍼스로 제공한 것과 관련 지난 2005년 정부합동 감사에서 '국립대학 설립에 지방재정을 부담한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을 받은데 이어 행정안전부로부터도 경기캠퍼스 부지 및 건물의 소유권을 학교 운영주체인 국가(교과부)로 매각하도록 하는 내용의 권고를 받았다.
이에 경기도와 교육과학기술부는 2012년 6월 19일 안양시 관내 경인교대 경기캠퍼스 부지 및 건물과 수원의 서울대 옛 농생대 터를 교환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경인교대 경기캠퍼스 12만2천812㎡와 건물 4만9천186㎡는 정부 소유로 바뀌었다.
경인교대 경기캠퍼스 터와 건물은 1천700억원 상당, 서울대 농생대 부지 및 건물은 1천600억원 상당, 남한산성도립공원내 부지는 100억원 상당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막골(三幕洞)
밀양박씨, 진주하씨, 청송심씨 등의 누대 세거지로, 진주 하씨의 집성촌 이라 하여 보통 하씨촌(河氏村) 으로 불리워오고 있다. 이 마을에 진주 하씨가 처음 살기 시작하기는 진주하씨 문효공파(文孝公派 세종때 영의정을 역임한 河演을 말함) 후손인 하우청(河禑淸1561-1622 호는 낙선재이며 의금부도사를 역임)의 묘를 이곳 뒷산에 쓴 후에 그의 후손들이 묘하에 세거하면서 부터이다. 삼막골 (三幕洞)이란 마을 명칭은 통일신라 시대의 고승인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 윤필거사(尹弼居士)의 세 성인이 삼성산에서 수도하며 유유산업 부근에 제1막을 짓고, 기아의 집(구 안양관광호텔)뒤 수도사(修道寺석수1동 241-40)부근에 제2막을 짓고, 제 3막은 석수1동 산10-1에 지어 이를 삼막사(三幕寺)라 칭했는데, 그 후 그 아래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사찰명을 취한 것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이상의 세 성인이 이 마을에 처음 살아 각자 1막씩을 짓고 살았다 하여 삼막골(三幕洞)로 칭했다는 것이나, 옛 읍지나 지리지 등에 는 고려말엽 불교계를 대표하는 지공(?-1363), 나옹 (1320-1376), 무학 (1327-1405)이 삼성산에서 수도했다는 연유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나 어느 설이 옳은 지는 알 수가 없다. 안양소년원과 구룡마을 사이에 위치 한 삼막골은 삼막천을 경계로 동쪽지역(안양소년원방향)을 웃말, 서쪽지역을 성재이라 각각 칭하고 있다. 이 마을은 구한말(1898-1904) 지방관리들의 탐학과 한국의 주권이 외세 (일본)에 의해 박탈되어 가자 분연히 일어서 농민운동을 주도한 하영홍이 태어난 곳이며, 1901년에는 하영흥이 선교활동을 할 만큼 일찌기 기독교가 전래되기도 하였다. 또 마을 어귀에는 하우청의 묘가 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7월 1일과 10월 1일에 성재이에 있는 느티나무(마을에서는 아래 서낭할아버지로 통칭)와 웃말에 있는 향나무(웃말 서낭할머니로 통칭)앞에서 나무제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