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63]삼막마을1-삼막천 좌측(2014.11.15)
2014.11.15/ #안양 #도시 #동네 #골목 #안양기억찾기탐사대 #석수1동 #삼막골 # 63차/ 제63차 여정으로 찾아간 곳은 안양 석수동 삼막삼거리에서 경인교대 앞 삼막IC 방향 도로 좌우측에 있는 삼막골이라는 동네로 예전에는 집과 집 사이로는 나무가 우거진 골목이 있었고, 마을 안쪽으로는 개천이 흐르고 집 마당에는 감나무와 은행나무, 고염나무가 자라는 등 농사를 짓고 오손도손 살던 주민들의 공동체가 끈끈하고 평화롭던 곳이었으나 이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뀌고 말았다.
삼막골은 안양천의 지천인 삼막천을 우측에 끼고 삼막사로 가는 초입부터 현 경인교대 앞쪽까지를 통칭해 부르는데 1980년대 이전에는 석산부지에서 돌을 캐 나르는 차량들이 오고가는 좁은 도로가 놓여져 있었으며 길 옆 주변으로는 단독주택이 뜨문뜨문 자리했던 한적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초 삼막마을 입구(현 삼막사거리) 우측의 구룡마을이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주공아파트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2002년부터는 석산부지에 경인교대 경기캠퍼스(2005년 개교) 조성 공사가 착수되고, 2003년에는 삼성산을 터널로 관통해 서울 신림 - 안양 삼막골석산부지 산업도로간 지방도로 개설로 도로가 크게 확장되면서 마을은 개발의 바람앞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특히 2003년 부터는 마을뒤로 제2경인고속도로와 삼막IC공사가 시작되면서 마을은 도로로 둘러쌓인 섬주거지로 전락하면서 과거 주거지는 이제 도로를 따라 음식점과 카페가 들어선 거리로 바뀌고 말았다. 여기에 2007년 완공을 목표로 안양~성남간 제2경인 고속도로 연결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돼 현재 안양소년원(정심여자정보고) 뒷쪽에서는 현재 관악산을 관통하여 동편마을 뒤로 나오는 터널공사가 한창으로 삼막골 마을 위로는 도로 교각이 여기저기 지나고 차량 소음으로 몸살을 앓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마을 주민들은 1년에 2번 느타나무 할아버지 나무와 할머니 향나무 할머니 앞에서 마을제를 지내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원주민들이 마져 하나둘 떠나고 공동체 역시 예전갖지 않아 마을제 또한 맥이 끊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탐사코스: 삼막로-느티나무버스정류장-주말가는가는골목길-도로확장으로짤려나간기와집-삼막칡냉면-제2경인고속도로굴다리-삼막농원-쌈밥집-은행나무골목-컬러샷시창고-삼막로91번길-둘레길-실개천-나무와담장있는정겨운집-커피숍풍경-안양성남고속도로공사현장-삼막로-중국집락천-석수교-삼막로95번길-삼막로24번길-삼막1교-끝
삼막골(三幕洞)
밀양박씨, 진주하씨, 청송심씨 등의 누대 세거지로, 진주 하씨의 집성촌 이라 하여 보통 하씨촌(河氏村) 으로 불리워오고 있다. 이 마을에 진주 하씨가 처음 살기 시작하기는 진주하씨 문효공파(文孝公派 세종때 영의정을 역임한 河演을 말함) 후손인 하우청(河禑淸1561-1622 호는 낙선재이며 의금부도사를 역임)의 묘를 이곳 뒷산에 쓴 후에 그의 후손들이 묘하에 세거하면서 부터이다. 삼막골 (三幕洞)이란 마을 명칭은 통일신라 시대의 고승인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 윤필거사(尹弼居士)의 세 성인이 삼성산에서 수도하며 유유산업 부근에 제1막을 짓고, 기아의 집(구 안양관광호텔)뒤 수도사(修道寺석수1동 241-40)부근에 제2막을 짓고, 제 3막은 석수1동 산10-1에 지어 이를 삼막사(三幕寺)라 칭했는데, 그 후 그 아래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사찰명을 취한 것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이상의 세 성인이 이 마을에 처음 살아 각자 1막씩을 짓고 살았다 하여 삼막골(三幕洞)로 칭했다는 것이나, 옛 읍지나 지리지 등에 는 고려말엽 불교계를 대표하는 지공(?-1363), 나옹 (1320-1376), 무학 (1327-1405)이 삼성산에서 수도했다는 연유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나 어느 설이 옳은 지는 알 수가 없다. 안양소년원과 구룡마을 사이에 위치 한 삼막골은 삼막천을 경계로 동쪽지역(안양소년원방향)을 웃말, 서쪽지역을 성재이라 각각 칭하고 있다. 이 마을은 구한말(1898-1904) 지방관리들의 탐학과 한국의 주권이 외세 (일본)에 의해 박탈되어 가자 분연히 일어서 농민운동을 주도한 하영홍이 태어난 곳이며, 1901년에는 하영흥이 선교활동을 할 만큼 일찌기 기독교가 전래되기도 하였다. 또 마을 어귀에는 하우청의 묘가 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7월 1일과 10월 1일에 성재이에 있는 느티나무(마을에서는 아래 서낭할아버지로 통칭)와 웃말에 있는 향나무(웃말 서낭할머니로 통칭)앞에서 나무제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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