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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정진원]인덕원에서 지지대고개까지

안양똑딱이 2018. 8. 12. 13:20

[정진원]인덕원에서 지지대고개까지

 

  “… 동재기 바삐 건너 승방들, 남태령, 과천, 인덕원 중화하고, 갈미, 사근내, 군포내, 미    륵당 지나 오봉산 바라보고 지지대를 올라서서 …”「춘향전」의 한 대목이란다.

 

  ‘동작진(洞雀津)-승방평(僧房坪)-남태령(南太嶺)-과천(果川)-인덕원(仁德院)-갈산점(葛山    店)-사근평(肆覲坪)-지지대(遲遲臺)-수원(水原)’ 김정호의「대동지지」가운데 일부분이다.

  ‘중화(中火)’한다는 것은 길을 가다가 점심을 한다는 뜻이므로 한양을 바삐 떠나 한강을 건너고, 세네 시간 걸려서 점심때쯤 인덕원에 당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몽룡이 인덕원에서 어떤 점심을 먹었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인덕원 사거리에서 남쪽으로 학의천이 흐른다. 그 개울을 건너면 벌말(평촌)인데, 마을 규모가 비교적 큰 편으로 길가를 따라 기다랗게 된 동네였다. 일종의 노촌(路村)이었다. 그러나 마을의 역사가 짧아서인지 옛 문헌이나 지도에는 잘 나타나 있지 않은 동네였다. 그러나 나중에 이 동네 이름 ‘벌말’에서 한자 지명 ‘평촌(坪村)’이 나오게 되었고, 그 일대가 전에는  전부 논이었으나,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변화되어 평촌신도시가 형성되었다.

  벌말을 지나 조금 나가면 민백이란 동네였다. 지명의 연유를 찾지 못했다. 벌모루 개울을 건너서 들판을 걸어 나가면 벌말 남쪽 끝부분에서 민백이 마을 뒤쪽으로 들어가게 되었었다. 내손리 능안에서도 모락산 중턱을 넘어오게 되면 그곳에 갈 수 있었다. 민백이에서 오른쪽으로 한참 떨어져 귀인이란 동네가 보였고, 거기서 더 나가면 갈미 마을이었다. 

 갈미는 한자로 ‘갈산(葛山)’이라 하여 ‘갈미, 갈뫼, 갈산, 갈현’ 모두 칡(葛)이 많은 산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어디에나 많은 지명이다. 모락산 서편 기슭의 동네여서 오뉴월 모락산 칡덩굴이 이 동네까지 뻗어 나와서 붙여진 이름이리라 생각해 본다. 갈미에서부터는 제법 긴 한길이 뻗어있고, 오른편 멀리로는 범계(범내, 虎溪) 마을이 보였다.  

  군포장이 멀지않은 언덕배기 길을 올라가면서 오른쪽으로 덕현마을이 있었다. 당시 올라가고 있는 언덕길 밖에는 큰 고개란 없었는데, 마을 이름은 ‘큰고개’라는 뜻의 ‘덕현(德峴)’이었다. 안양에 대해서 수푸르지 마을 같은 것이 군포에 대해서 덕현 마을이었다. 여기서 조금 내려가면 군포였다. 안양쪽에서 수원으로 가는 국도를 만나는 사거리 동네였다.

  군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한 마장쯤 가면 사그내였다. 정조의 수원 화산 원행의 행궁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사그내’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분명치 않다. 모래가 많은 개천이란 뜻의 사근(沙斤)내>사그내? 그런데 이곳 한자 지명이 나중에 ‘고천(古川)’으로 된 것을 보면 사그내>삭은내>고천? 으로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곳에 예전 의왕면 사무소가 있었고, 지금은 의왕시청의 소재지가 되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지금의 의왕시청 뒷산인 오봉산을 바라보면서 완만한 경사의 백운산 자락을 오르면 지지대 고개가 된다. 그 고개를 넘어서 내려가면 수원 분지에 접어들게 되고, 수원성 북문에 당도하게 된다. 조선 정조의 원행로였다.

정조는 초기에는 ‘남태령-과천-인덕원-사그내행궁-지지대’를 거쳐서 아버지 사도세자(추존 장조)의 융릉에 참배했으나, 후기에는 ‘시흥행궁-안양-사그내행궁’ 노선을 택했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영의정 김상로의 형 김약로의 무덤이 과천 찬우물 마을에 있어서 그 앞을 지나가기가 싫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조는 이 고개를 오르면 멀리 융릉이 있는 화산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서 시간이 더디게 간다고 생각했을 것이며, 돌아갈 때에는 이 고개를 넘게 되면 수원 화산이 보이지 않게 되므로 고개 위에서 어가를 멈추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고 해서 고개 이름을 ‘지지대(遲遲臺)’고개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필가이자 문학박사인 정진원 선생은 의왕시 포일리 출신(1945년생)으로 덕장초등학교(10회), 서울대문리대 지리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대 대학원에서 지리학,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박사학위논문으로 ‘한국의 자연촌락에 관한 연구’가 있다. 성남고등학교 교사, 서울특별시교육청 장학사, 오류중학교 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