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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정진원]남태령에서 부림말까지

이야기보따리/기억

[정진원]님태령에서 부림말까지

 

옛날 과천(果川)은 한때나마 서울(한양)의 관문이었다. 과천에 ‘관문리(官門里)’가 있는데, 그것이 옛날 과천군의 관문(官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괜찮은 지명이지만, 한양의 관문이란 뜻이라면 관문(關門)이 맞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서울이 낭(떠러지)이라니까 과천서부터 긴다’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한양 남쪽 사람들이 인덕원을 거쳐 과천으로 들어오고, 남태령을 넘어 지금의 사당동을 거쳐 동재기(동작)나루나 노량나루에서 한강을 건너 한양에 입성했을 것이다. 또는 과천 삼거리에서 지금 양재동(옛날 말죽거리)으로 나가 새말(신사동)나루나 압구정나루에서 한강을 건너기도 했었다.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양재역에 이르매, 신하들이 급히 죽을 쑤어 바치니 왕이 말 위에서 죽을 먹고 과천으로 떠났다는 데서 ‘말죽거리’라는 지명이 생겨났다고 한다. 옛날 내 할아버지께서는 가을철 모과를 따서 마차에 싣고, 과천-남태령을 넘어 서울에 가서 팔고 오셨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옛날 과천은 한양 남쪽 강남의 유명 고을이었다. 문화 도시였으며, 교통의 요지였다. 일찍이 1912년 과천보통학교가 세워져서 내 선친과 숙부님들이 모두 그 학교를 졸업했으며, 숙부 한 분은 과천보통학교를 마치고, 경성사범학교에 진학해서 졸업 후 화성군(지금의 의왕시, 화성시)에서 초등교육에 헌신하셨다.

그렇던 과천이 지금처럼 정부 부처가 들어오고, 아파트단지가 되기 전까지는 아주 오랫동안 시골 읍내의 초라하면서도 순박한 모습 그대로 있었다. 그대로라기보다는 안양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침체, 퇴보해서 지방의 한촌(閑村)으로 남게 되고 말았다. 그곳은 관악산 남향받이 양지바른 곳에 있는 안온한 동네였다. 지금 과천에 별양동(別陽洞)이란 지명이 있는데, 그곳은 본래 ‘베레이’인데, 볕이 잘 드는 마을이란 뜻일 것이다.

과천이 신도시 안양에 눌려서 한적한 시골 동네로 처지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안양이 이른바 ‘경부발전축’의 서울 근교 거점이 되면서부터일 것이다. 국토를 종단한 1번국도(목포-신의주)가 안양을 지나가게 되고, 철도가 그곳을 통과하게 되면서 안양은 졸지에 과천을 누르고 근대도시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내 어릴 적 과천은 이미 늙어버린 구읍이었고, 안양은 청년기에 든 신흥도시였었다.

관악산 남태령에서 과천 쪽으로 내려오면 왼쪽 우면산 밑으로 뒷골이란 동네가 있었고, 삼거리에서 지금의 양재동(말죽거리)으로 나가는 길이 갈라지게 되었고, 길가에 선바위(입암) 마을이 있었다. 아래로 내려오면서는 관악산 기슭에 향교말이 있고, 길가에 새술막이 있었다.

지금 서울대공원이 된 지역에는 과천저수지가 있어서, 청계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가둬두고 있었다. 청계산은 토산(土山)이어서 그런지 그 산을 흘러내리는 개울이 특별히 맑았었던 것 같다. 청계산 서쪽 과천저수지 일대를 막계동(莫溪洞)이라 부르는데, ‘막계’는 ‘맑(은)내’의 어색한 한역일 것이다.  

길가 새술막 안쪽으로 남양 홍씨 집거촌이라는 홍촌(洪村)이 있었고, 조금 내려와 길 건너쪽으로 구리안 마을이 있었다. 조금 남쪽으로 찬우물이란 동네가 있었다. 우리나라에 흔한 지명이다. 안양에도 냉천동이 있는데, 같은 뜻의 지명이다. 그 동네 길가에 큰 배밭이 있었고, 배밭을 오른쪽에 두고 들어가면 가루개(갈현리) 마을이 있었고, 조금 더 들어가면 제비울, 가는골(세곡) 마을, 그 사이에 샛말이 있었다.

지금 과천-의왕간 도로 변에 세워진 제비울미술관이 그 제비울 마을터에 세워진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찬우물 아래로 가일이란 마을이 있었고, 서편으로 벌말이란 동네가 있었는데, 그다지 넓지 않은 벌에 있는 동네였다. 지금 무슨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 아닌가 싶다. 찬우물에서 가일을 거쳐 야트막한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부림말이었다.   

 

수필가이자 문학박사인 정진원 선생은 의왕시 포일리 출신(1945년생)으로 덕장초등학교(10회), 서울대문리대 지리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대 대학원에서 지리학,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박사학위논문으로 ‘한국의 자연촌락에 관한 연구’가 있다. 성남고등학교 교사, 서울특별시교육청 장학사, 오류중학교 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