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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헷갈리는 서울 시흥, 경기도 시흥
1. 개요
시흥(始興)은 원래 구한말까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영등포구(양화동과 조선시대-구한말 한정으로 여의도 제외), 구로구 동부, 관악구 상당 부분, 동작구 일부 및 경기도 광명시,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박달동 일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시흥의 행정구역 변천을 보면 고구려 때 잉벌노현(仍伐奴縣)에 속해 있었으며 757년 경덕왕이 곡양(穀壤)으로 고쳐 율진현(栗津縣)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초기에 금주(衿州)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폐하여 수주(樹州)에 예속시켰다. 1172년(명종 2) 감무(監務)를 설치했다.
그 뒤 여러 차례의 변천을 거쳐 1416년(태종 16) 금천현(衿川)으로 하여 현감을 두었다. 세조 때 과천군에 편입되었으나 정조 때 시흥이라 개칭하였다. 금천현은 조선 초기 과천현의 일부를 병합하기 전의 독립된 현이었으므로 그 뒤의 시흥현과는 영역이 다소 다르다.
일제강점기~1989년 폐군까지의 기간 중 시흥군에 속했던 지역은 영등포구, 구로구 동부, 관악구, 동작구, 금천구, 서초구 대부분 및 경기도 광명시, 안양시, 과천시, 군포시, 안산시, 시흥시, 의왕시 일대를 포함했을 만큼 거대했다.
오늘날에는 '시흥'이라 하면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과 경기도 시흥시를 가리키는데 혼란을 야기한다.
2.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5개 행정동이 나누어 관리하는 법정동이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시흥이라는 지명의 기원이자 시흥의 뿌리.
이 지역은 원래 경기도 시흥군 동면에 속했던 지역이다. 1895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이 근처의 지명인 '시흥'을 따 시흥군이라 불렀던 것이다. 또한 시흥군의 중심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시흥군청이 이 곳에 있다가 영등포(1914년)-안양1동(1945년)-안양6동(1975년)-소래읍(1980년)-소멸(1989년)으로 이전한다.
1963년 시흥군 동면일대가 서울특별시로 편입이 되었고 기존 경기도 시흥군에서 분리되면서 지금처럼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으로 재정립 되는데 서울 대확장 이전에는 '시흥'이라고 하면 지금의 금천구 일대 내지는 금천구를 비롯한 주변 지역(관악구, 광명시)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6.25 전쟁 당시 '시흥지구전투사령부'가 금천구 쪽에 있었다. 사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영등포권을 거쳐가는 버스들 노선표에는 '시흥동' 대신에 그냥 '시흥'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서울에서 영등포 지역 택시를 이용할 때 시흥에 가달라고 하면 90% 이상의 확률로 금천구청 앞이나 시흥사거리, 금천우체국 등 시흥동으로 간다. 서울 택시로 시흥시에 가려면 기사에게 신천동, 월곶, 시화산업단지 등 동 단위 지역명을 말해 주거나 시흥'시'같이 시를 붙여 말해 주어야 한다.
특히 현재의 금천구청역은 2008년까지 시흥역이었다. 시흥역은 1908년 4월 1일 역사를 개업한후 100여년을 시흥역으로 영업을 해 왔으니 '시동네 주민뿐 아니라 수도권 주민들에게는 시흥하면 금천구의 시흥동이 친숙하게 다가온다.
이에 타지에서 방문한 사람들에게 경기도 시흥시를 지칭하는 줄 착각해 시흥역을 잘못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고, 시흥역 구내에는 '경기도 시흥으로 가실분은 4호선 오이도역이나 정왕역에서 하차'를 권하는 문구가 있었다. 여튼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08년 말 금천구청 신청사가 준공되면서 시흥역을 금청구청역으로 역명을 변경하며 혼란을 줄이지만 아직 시흥군 시절에 친숙하게 불리웠던 시흥동이 아직 현존하고 있다.
3. 경기도 시흥시
현재의 시흥시 지역은 원래 인천도호부(옛 소래읍)와 안산군(옛 수암면, 군자면)의 땅으로, 현재의 시흥시 남부는 1914년에, 현재의 시흥시 북부는 1973년에 시흥군으로 편입되었으나 전통적 의미의 시흥과는 단한치의 연관도 없다 할수 있다.
1914년 이전의 오리지널 시흥 땅을 가지고 있지 않던 시흥시가 시흥이라는 이름을 물려받는 바람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 시흥하면 아직도 서울 시흥동을 가리킨다. 시흥동이 과거 시흥군의 핵심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현 시흥시는 '소래'나 '신천리', '시화'나 '정왕동'이라 해야 알기 쉽다. 편이 더 낫다. 이런 현상은 시흥시의 정체성이 확고해지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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