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진기록/동네탐사

[탐사47]안양 석수2동 석수시장 주변(2014.05.03)

안양똑딱이 2018. 7. 26. 15:18

 

[탐사47]석수2동 석수시장 주변
2014.05.03/ #도시 #동네 #골목 #안양탐사대 #석수2동 #석수시장 #스톤앤워터/ 안양기억찾기탐사대가 47차 탐방으로 찾은 곳은 석수2동 두번째 여정으로 석수시장 주변입니다. 코스는 석수도서관 정류장(만석교회앞)-양화로--적성3차아파트-군부대 담벼락-석천로159번길-양화로222번길-양화로234번길-석천로171번길-석수시장-스톤앤워터-석천로181번길-석수전화국사거리-탐사끝-동안문화관(김광남.김명자 쿠바여행사진전)-뒷풀이(스 펑키엘)

안양 석수시장에 오랫만에 가보았습니다. 시장 주변에는 뉴타운사업이 무산된 이후 시장 주변에는 도시생활형주택들 신축공사가 곳곳에서 진행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네요.. 석수시장안의 풍경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공공미술을 통해 재래시장을 활성화시키겠다고 다부진 꿈을 펼쳤던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의 프로젝트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고, 옥상 정원은 이제 폐허더미로 변모하고 말았네요.

 

안양 석수2동은 동(東)으로 석수1동, 서(西)로 석수3동, 남(南)으로 박달동, 북(北)으로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흥동 및 광명시 일직동과 각각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취락으로 꽃챙이(花倉洞). 벌터(坪洞), 신촌(新村), 연현(鳶峴) 등이 있습니다.
안양 서북단에 위치한 석수2동은 지금의 안양육교 일대가 예전에는 산세가 높고 후미진 곳이어서 서울로 가는 과객이나 보부상 등이 이곳을 지나치자면 산적이나 강도들에게 수난을 겪을만큼 험준한 곳이었으나 구 한말에 경부선의 철도부설로 고개가 낮추어졌고, 이어 신작로가 건설되면서 교통의 편리로 점차 취락이 발달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안양육교는 1905년 을사조약이 조인된 지 5일 후인 동년 11월22일 민족의 원흉 이등박문(伊藤博文)이 기고만장하여 수원지방에 유람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안양출신 원태우(元泰祐) 지사에게 돌멩이 세례를 받아 치욕을 당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광명시 일직동과 접경한 벌터마을은 1960년대 초에 경기도종축장이 들어서면서 폐동되었으나, 경기도종축장이 1970년대에 다시 경기도 광주로 이전되자 폐허화 되었으며, 안양천변과 만안로변에 자리잡은 신촌은 1956년 수도영화사에 의해 안양촬영소가 설치되어 한 때는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본 고장으로 각광을 받던 곳입니다. 또 꽃 재배지로 유명했던 꽃챙이 마을은 아파트단지와 주택지로 상전(桑田)이 벽해(碧海)되었지요.
석수동(石水洞)은 관악산과 삼성산에 둘러쌓인 안양유원지 일대에 석 (石工)이 많아 石手洞이라 하였으나, 1932년 안양풀(과거 안양유원지 - 현 안양예술공원)에 개설된 수영장이 石水洞水泳場 으로 불리면서 石手가 石水로 바뀌게 됩니다.

 

시장 속 예술의 시작 ‘스톤앤워터’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재래시장에서 예술하기
비영리예술단체 ‘스톤앤워터’가 펼치는 ‘지역예술공동체 세상’
[출처]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ami0904&logNo=220184249844

구도시와 신도시. 도시의 중심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동한다. 엄마 세대엔 중심지였던 곳이 이젠 사람들이 찾지 않던 구도시가 되는 일이 다반사다. '스톤앤워터'가 활동하는 안양 역시 마찬가지다.
'석수동'이란 동네가 위치한 ‘안양’은 크게 동안구와 만안구로 나뉜다. 이중 동안구는 1993 ‘평촌신도시’가 조성된 뒤 인근지역으로 교통, 산업, 교육 시설들이 밀집되면서 현재까지 ‘안양의 중심지’ 역할을 맡고 있다. 반면 과거 중심지인 만안구는 그 기능을 동안구에 넘겨준 뒤, 자연스럽게 ‘구도시’가 되었다. 이젠 만안구는 수시로 바뀌고 번복되는 재개발 분위기 속에서 정체기를 겪고 있는데, ‘석수동’은 바로 이 ‘구도시’에 속한 지역이다.
이 석수동에 '시장'이 자리했다. 정확히 시장은 아니고, 시장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 시장을 처음 찾는 외부인이라면 반드시 동네 주민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만큼 위치를 찾기 쉽지 않고, 공간을 알리는 시장간판도 없다. 최근 재래시장들이 경쟁력을 갖추고자 시설교체 뒤 새단장을 시도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이 시장은 시간이 정지된 모습이다. 몇몇 공간은 닫히거나 비어 있었고, 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손님을 맞는 상인들도 적었다. 시장이라 불리기엔 무색할 만큼 주변은 한산했고, 자세히 살펴보면 구조도 기존 전통시장과는 달랐다.

시장 속 예술의 시작 ‘스톤앤워터’
석수시장은 안양 중앙시장에 몰려 있던 지역 주민들을 안양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려는 계획으로 생겨난 재래시장이었다. 시장은 1979년 정부정책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야채도매시장으로 출발하였다. 3천 여 평 면적의 대지에 자리한 시장은, 정방형 광장을 중심으로 120여 개의 소형 점포들이 광장을 둘러싼 구조였다. 기존 재래시장과는 다른 방식이었고 운영권도 시가 아닌 민간업체인 ‘석수유통’이 맡아 왔다.
하지만 계획은 잘 실천되지 못했다. 이 시장은 시작부터 실패한 반쪽시장이었다. 이후 지역이 '구도시'로 변하고, 대형마트와 주변지역 전통시장들과 대형마트에게 밀리면서 시장은 존속 기로를 논하는 처지가 된다. 현재 시장은 30여 개만 남은 소 점포와 '우리마트'라는 중형마트가 축소된 시장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그런 시장에 2002년 미술작가들로 구성된 비영리예술단체가 들어온다. 바로 이 단체가 소외지역을 대상으로 ‘생활 속 예술’ 추구하고, ‘대안공간의 시초’를 만든 '스톤앤워터'였다.

골목에 스며든 공공예술
‘석수’라는 시장이름에서 따온 ‘스톤앤워터’는 2002년부터 한 해도 빠트리지 않고 시장을 무대삼아 ‘석수아트프로젝트’라는 기획행사를 진행하였다. 주민들이 생활 속에서 예술을 쉽게 접하는 게 이 단체의 취지였다. 넓게는 예술의 '자율성'과 시민을 위한 '공공성'에 주력했다.
시장 속 유휴공간은 전시공간과 작가 창작스튜디오로 만들어 석수시장을 하나의 ‘예술촌’으로 만들었다. 시장 내 점포와 점포 사이에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 들어서면서 예기치 못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으나, 오히려 이 과정이 작가들에겐 예술 실험의 소재로 적용되었다.
또 스톤앤워터는 시장상인과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리폼공작소' 프로그램, 지역학교와 연계한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을 무대로 한 공공예술을 시도해왔다. 스톤앤워터가 추진하는 이 과정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경기문화재단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통해 진행해왔다. 단, 적은 예산이어서 지역 기업들과 개인들의 기부금으로도 운영되고 있다.
요즘 진행되고 있는 많은 공공미술은 마치 게릴라처럼 한 지역에 들어와선 순식간에 작업하고 사라져버리고 현상이 많죠. 이렇게 그 지역에 대한 이해나 소통 없이 작품들만 남겨 놓는 공공미술 과정을 탈피하고자 스톤앤워터가 시도한 게 시장 내 창작스튜디오였어요.
스톤앤워터는 석수시장에서 다져놓은 경험을 바탕으로 만안구 다른 지역으로도 ‘생활 속 예술’을 넓히는 중이다. 지난 9월 29일 스톤앤워터는 만안구 박달동 소재의 박달시장에 복합문화공간인 ‘밥그릇’을 만들었다. 밥그릇은 8평 규모의 반찬가게 자리로, 소모임과 문화예술교육 과정을 진행하는 공간으로 재 단장했다. 이 공간은 시장을 찾은 지역주민과 상인, 예술가가 만나는 거점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뒤이어 10월 16일에는 안양역이 위치한 안양1동에 위치한 유흥업소 '목련'을 ‘안양 1, 2번가 문화발전소 _ 매그놀리아(Magnolia)'로 변신시켜 예술로 지역주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매그놀리아는 과거 안양의 최대 유흥가, 번화가였던 곳에 위치한 업소였으나 오랜 시간 방치되었다. 이 빈 공간을 스톤앤워터가 전시, 워크숍, 창작작업실 등이 이뤄질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구도시 소재 재래시장을 대상으로 공공미술운동을 펼쳐 온 ‘스톤앤워터’.
비영리예술단체가 도시변화와 시장경제에 의해 쇠퇴하는 재래시장을 예술가의 방식으로 지역문화를 조성하였고, 나아가 지역의 특성을 재발견하여 새로운 마을공동체를 형성한 사례다. 스톤앤워터가 만드는 예술로 살아나고 하나되는 마을을 기대해본다.
글. 이나미 (사회적기업 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