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진기록/동네탐사

[탐사46]안양 석수2동 오랜 동네 화창마을(2014.04.26)

안양똑딱이 2018. 7. 2. 05:15

 

2014.04.26/ #도시 #동네 #골목 #안양탐사대 #석수2동 #화창마을/ 안양기억찾기탐사대가 46차 탐방으로 찾은 곳은 석수2동 첫번째 여정으로 화창마을입니다. 코스는 석수도서관 정류장(만석교회앞)-화창로92번길-화창초교후문-양화로223번길-화창로95번길-꽃밭속한옥집-산자락정원멋진양옥집들-화창로큰길-삼거리길-화창로106번길-양화로-탐사끝.

 

화창마을-꽃챙이(花倉洞.串昌洞)

 

안양 서북단에 위치한 석수2동은 동(東)으로 석수1동, 서(西)로 석수3동, 남(南)으로 박달동, 북(北)으로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흥동 및 광명시 일직동과 각각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취락으로 꽃챙이(花倉洞). 벌터(坪洞), 신촌(新村), 연현(鳶峴) 등이 있다. 신촌과 벌터는 잘 쓰이지 않지만 화창과 연현마을이라는 명칭은 지금도 쓰여지고 있다.

화창마을은 충훈부 동북쪽에 있다. 이곳은 조선조 말엽까지만 해도 미곡을 저장하는 창고와 철쭉밭이었으나, 일제강점기 초에 광명시 가학동 공석골 출신 성만제(成萬濟)(1890-1959, 시흥시 미산동 구시미에 묘가 있음)씨가 이 마을에 처음으로 정착한 후 벗나무등을 식재하면서 각종 꽃이 재배되기 시작했다. 그 후부터 꽃과 창고가 있는 마을이라하여 꽃챙이 (花倉洞)이라 칭하고 현재는 화창마을로 불리우고 있으며 아파트단지와 주택지로 상전(桑田)이 벽해(碧海)되었다.
'조선지지자료' 경기도 시흥군편에 곶창(串昌) 이라고 기재된 것으로 보아 예전엔 이곳 일대가 안양천변에 위치한 곳(串, 바다에 뽀죽하게 내민 땅)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마을 내에는 효종 때 예조(禮曹) 및 병조(兵曹)판서를 역임한 박서 (1602-1653)와 일제 강점기 만석꾼으로 자본가였던 김만식(金潤植)의 묘가 있다.

참고로 석수2동 지금의 안양육교 일대는 예전에 산세가 높고 후미진 곳이어서 서울로 가는 과객이나 보부상 등이 이곳을 지나치자면 산적이나 강도들에게 수난을 겪을만큼 험준한 곳이었으나 구 한말에 경부선의 철도부설로 고개가 낮추어졌고, 이어 신작로가 건설되면서 교통의 편리로 점차 취락이 발달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안양육교는 1905년 을사조약이 조인된 지 5일 후인 동년 11월22일 민족의 원흉 이등박문(伊藤博文)이 기고만장하여 수원지방에 유람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안양출신 원태우(元泰祐) 지사에게 돌멩이 세례를 받아 치욕을 당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광명시 일직동과 접경한 벌터마을은 1960년대 초에 경기도종축장이 들어서면서 폐동되었으나, 경기도종축장이 1970년대에 다시 경기도 광주로 이전되자 폐허화 되었으며, 안양천변과 만안로변에 자리잡은 신촌은 1956년 수도영화사에 의해 안양촬영소가 설치되어 한 때는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본 고장으로 각광을 받던 곳이었다.

[출처] 만안구 석수2동

행정구역 개편

석수2동은 조선시대에는 금천현(衿川縣) 현내면(縣內面) 안양리(安養里)였다가, 정조 19년(1795)음력 윤 2월 1일 시흥현(始興縣) 현내면(縣內面) 안양리(安養里)로 되었다가, 고종 32년(1895) 5월26일 칙령 제98호에 의거 시흥군(始興郡) 군내면(郡內面) 안양리(安養里)로 개칭되었다. 1914년 3월1일 부령 제 111호에 따라 시흥군(始興郡) 동면(東面) 안양리(安養里)라 했다가, 1963년 1월1일 법률 제1175호에 따라 안양읍(安養邑) 신안양리(新安養里)로 되었다가, 다시 1964년 1월1일 안양읍(安養邑) 신안양제2리.3리(新安養2里.3里)로 개편된 후, 1973년 7월1일 시제가 실시되면서 안양시(安養市) 석수동(石水洞)이 되었고, 1979년 4월 28일 시 조례 제340호에 따라 석수1동은 분동해 충훈부(忠勳府), 꽃챙이(花倉洞) 등의 제 지역을 석수2동(石水二洞)이라 하였으며, 1987년 1월1일 대통령령 제 12007호에 따라 광명시 소하1동의 일부가 편입되었다. 그 후 1989년 5월 1일 시 조례 제 931호에 따라 만안출장소에 편제된 후, 1990년 1월1일 시 조례 제1000호에 의거 충훈부지역을 석수3동으로 분동(分洞)해 석수2동에서 분리되었고, 이어 1992년 10월 1일 내무부 승인 제 892호에 따라 만안구로 편제되었다.

화창마을은 참 아늑했습니다. 재개발을 추진하다 표류중인데 골목길에서 사업 백지화 빨간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습니다. 동네 주민들도 집을 개조해 가꾸며 살고 싶다고 얘기들 하네요. 이미 한 연립주택단지 마당에는 주민들이 예쁜 꽃들을 가꾸고 있네요. 주민참여예산 또는 마을만들기 사업이 추진되기에 적당한 동네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