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진기록/동네탐사

[탐사21]안양 비산3동(1) 주민자치센터 주변 골목길(2013.07.13)

안양똑딱이 2017. 5. 19. 02:22

 

안양기억찾기 탐사 21차(2013년 7월 13일)에 찾아간 곳은 안양 비산3동으로 안양 비산운동장 사거리에서 출발해 운동장 남문과 매곡성당을 거쳐 삼호아파트 뒷편 동네의 골목길을 돌아보고 안양3동주민자치센터까지의 여정으로 의외로 동네의 면적이 제법 크고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곳곳에 눈에 띄는 자그마한 텃밭 등 눈길을 끄는 것들이 너무 많아 당초 계획했던 탐사일정의 절반밖에 돌아보지를 못했네요.
이 동네의 예전 지명을 보면 구름울과 안날미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예전에는 구름울에 속해 마장골을 웃말, 구름울을 아랫말이라 각각 칭하고 매곡동이라 부르기도 하는 등 예쁜 이름으로 불리우던 동네입니다.
동네가 아담하고 차분하다는 느낌입니다. 오르락 내리락 아주 높지도 낮지도 않은 언덕길과 좁지도 넓지도 않은 골목길에는 단독주택과 연립, 다세대, 다가구, 대규모 아파트 단지까지 다양하게 존립하고 있습니다. 특히 골목길이 오거리, 육거리로 마치 방사형으로 연결된 곳이 많은 것이 타 동네에서는 보기 드물더군요. 동네 뒷편으로는 야산에 올라가면 관악산 둘레길과 비산동 레미안 아파트와 연결되는 오솔길이 있는데 마치 깊숙한 산속에 들어온 듯 합니다. 야산 한쪽에는 면적이 제법 큰 청주한씨 묘가 있기도 합니다.
이 동네에는 교회들도 많습니다. 힌 교회에 들어서니 건물 옆으로 휴식공간을 겸한 화원을 멋지게 꾸며 놓았는데 이름모를 예쁜 꽃들이 수줍은 듯 인사를 하고, 한 교회에는 교회 지하로 스며드는 지하수를 퍼내는데.. 식수(얼마전까지 음용했는데 지금은 부적격)로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여름철 인공풀을 만들어 동네 어린이들의 수영장으로 제공한다고 하네요.
동네 한 가운데 언덕에는 명칭(표지판)이 없는 공원이 하나 있네요. 산자락 중간에 정자와 커다란 바위, 옆으로는 교회가 있는데 왜 철조망으로 둘러쳐 놓았을까. 잘만가꾸면 돌네 주민들의 명소가 될텐데.. 어떤 사연이 있는 듯 싶네요.
여느 동네 골목길처럼 이곳에도 노인들이 모이는 장소가 있는데 환경이 너무 열악하기만 합니다. 경로당에 안 가시고 여기들 모이는 이유를 여쭈었더니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경로당이 있는데 자신들은 이용할 수 없다고 하네요. 사연과 이유가 있겠구나 싶으면서도 이왕이면 동에서, 아니면 주민참여예산으로 골목길에 짜투리 공간이 있으며 나무의자 테이블이라도 놓아 노인들의 사랑방을 만들면 어떨까 합니다.

 

안양 비산3동의 지명유래

■안날미(內飛山)
안양종합운동장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조선시대에는 과천군 상서면 내 비산리(果川郡 上西面 內 飛山里)라칭했다가, 1914년에 내비산리와 외비산리를 통합, 비산리로 통칭 되자 자연취락으로 전락되었다. 이곳에 처음 세거한 성씨는 전주 이씨 익안대군파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후 덕수 장씨, 문화 류씨, 보성 오씨 등이 살아와 현재는 전주 이씨가 집성을 이루고 있다.
비산동 골짜기 안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안날미라 칭하고 있는데, 마참고:안양시지 을 중앙을 가로지르는 개천을 따라 동쪽 지역은 웃말(또는 음짓말), 서남 쪽지역은 아랫말(또는 양짓말)이라 각각 부르고 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10월 초에 길일을 태해 안양종합운동장 북쪽 류덕옥(柳德玉1653 - 1711 안악군수 역임)묘소 위에 있는 노송 앞에서 마을의 안정을 위해 산신제를 지내다가 외지인이 많이 입주하자 1970년대 말부 터 제(祭)를 지내지 않고 있다. 이곳에는 류덕옥의 묘를 비롯하여 유탁 (1686- ?, 문과급제), 장언방(병조참판 역임) 등의 묘가 있다.

■박날미(外飛山)
삼호아파트 서북쪽에 있는 매곡동과 수푸루지 등의 제 지역을 통칭해 일컫는 말로, 비산동 골짜기 밖에 위치해 있어 박날미(外飛山)라 칭한다. 조선시대에는 과천군 상서면 외비산리라 불렀다.

■마장골(梅谷洞)
구름울과 안날미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예전에는 구름울에 속해 마장골을 웃말, 구름울을 아랫말이라 각각 칭했다. 이 마을은 샘머루에 살던 안동 권씨 정승공파 후손들이 분가를 하면서 형성되었고, 그 후 청주 한씨 등이 세거하기 시작해 광복직전에는 30호가 있었다.
그 후 관청 자리에 1978년 비산국민학교(비산동 315)가 건립되고, 안양7지구 구획정리 사업으로 화남아파트(1986), 호성빌라(1986), 삼호빌라(1989), 두산빌라(1989) 등의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 등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마장골 이란 조선시대 관가에서 사용하던 말(馬)을 이곳에서 사육했기 때문인데 후대에 내려 오면서 다음과 같은 전설로 인해 매곡동(梅谷洞)으로도 불리우고 있다.
조선조 중엽, 마장골에 사는 어느 농군의 아낙네가 갓난 아이를 풀밭에 뉘여 놀게 하고 자신은 김을 매고 있는데, 매가 갓난아이를 채어 날아갔다고 한다. 아이를 잃은 아낙네는 그 날로 몸져 눕게 되었는데, 그 후 이 마을 나무꾼이 이곳에서 나무를 하려고 산을 오르려는 순간 커다란 매가 공중을 빙빙 돌기 시작하자 주위를 살핀 이 나무꾼은 갓난 아이가 있는 곳을 확인한 다음 곧 마을로 내려와 마음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리자, 이 소문이 널리 퍼져 임금님까지 알게 되어 급기야는 어전회의(御前會議)까지 열리게 되었는데, 대신들이 이는 좋지 않은 징조이므로 퇴치해야 한다고 하여 어명을 받은 원님이 포졸과 함께 현지에 도달했으나 보금자리만 있을 뿐 갓난 아이와 매는 온데간데 자취가 없어졌다. 이상하게 여긴 원님은 갓난 아이가 필경 독수리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고 철수를 하였다고 한다. 이 후부터 이 마을에는 매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며, 마을이름도 매곡동(梅谷洞) 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마장골에는 흥국사(비산3동 306-12)와 약수암(비산3동 292-1) 등의 사찰이 있고, 마을에서는 구름울, 수푸루지 주민들과 함께 해마다 음력 10 월 2일 평화보육원 동쪽에 있는 당봉(또는 매봉)에서 산신제(山神祭)를 지낸다.

■구름울(雲谷洞)
삼호아파트와 안양시 제1정수장(위치 비산동 산 142)사이에 있으며, 마 을의 지세가 흡사 구름에 둘러 쌓인 것 같다 하여 구름울 (雲谷洞)이라 부르고 있는데, 보통 삼호아파트 안동네라 칭하기도 한다. 이 마을은 샘머루에 살던 안동 권씨 정승공파 후손들이 분가를 하면서 취락이 이루어졌다고 하며, 현재도 안동 권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구름울은 광복 직전까지만 해도 33호가 있었다가, 마을 앞에 삼호아파트가 들어선 후 1986년에 영진빌라를 비롯하여 1989년에 현대빌라, 선영빌라, 산정빌라 등의 다세대 주택이 건립되었다.
마을에서는 마장골, 수푸루지 주민들과 함께 평화보육원 동쪽에 위치한 당봉(또는 매봉) 정상에서 해마다 음력 7월 2일과 10월 2일에 산신제(山神祭)를 지내다가, 1980년대부터 음력 10월 2일에만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