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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16]안양 비산동 망해암과 비행기 등대(2013.06.01)

안양똑딱이 2017. 5. 17. 04:09

 

 

안양기억찾기탐사대가 16번째 여정으로 찾은 곳은 안양8경중 제1경인 망해암 일몰이 멋진 비봉산 자락의 망해암과 비행기등대인 무선표지국이다.

망해암(望海庵)은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 241-54번지 관악산 동남기슭에 위치하는 조계종 사찰로 망해암에서 바라본 일몰은 안양시가 선정한 안양8경중 제1경이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1번 국도를 타고 평촌에 이르기 직전 대림대학 방향으로 좌회전 한다. 대림대학 정문을 지나 마을길을 따라 계속 가다가 마을이 끝 날 때 쯤 부터 산길로 약 2㎞정도 오르면 된다. 소형차는 망해암까지 들어갈 수 있지만 산행삼아 관악산의 수려한 경관을 즐기며 2㎞ 정도 걷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망해암에 오르면 안양시가지(만안구)가 한 눈에 들어온다. 탁 트인 시야 때문에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데, 절 뒤편 바위 사이로 오르면 있는 전망대에서는 바라보는 일몰이 장관이다. 야경은 절벽위에 세운 절 난간에서 보는 것도 멋있는데, 절 장독대 뒷편으로 돌아가면 암벽위에서 바라보는 일몰과 야경이 으뜸이다.
1986년에 새워진 <안양망해암사적비>에 따르면 망해암은 신라문무왕5년(665)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이것은 1940년대에 쓰여진 <봉은본말지>에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원효 창건설을 뒷받침할만한 아무런 근거는 없다. 대부분의 사찰이 원효와 의상의 창건설을 주장하는 것은 두 스님이 직접 창건했다기보다는 그 스님들을 계맥하고 있다는 차원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망해암이 역사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조선 태종 때의 일이다. 태종은 한양의 풍수적 균형을 위해 사방에 절을 지었는데 이 때 망해암도 중수되었다. 망해암의 창건은 관악산의 연주암처럼 기암괴석 틈바구니에 옹색하게 지어진 지형적 특징으로 볼 때 드센 기를 누르고 취약한 부분을 치료하기 위한 비보사찰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적비에는 또 세종 때의 미륵불에 대한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전설로 전해진다.
삼남지방에서 세곡을 거두어 여러 척의 배에 나누어 싣고 인천 앞바다의 팔미도(八尾島)를 지나고 있었다. 이 때 갑자기 심한 풍랑이 일어 배들이 전복될 위기에 처했다. 생사의 기로에서 당황한 선원들이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 할 때 홀연히 스님 한분이 뱃머리에 나타나 선원들을 안심시키고 스님의 인도로 무사히 위기를 면하게 되었다. 풍랑도 잠잠해지고 안정되자 목숨을 건진 선원들은 ‘대사님은 어느 절에 사십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스님은 ‘관악산 망해암에 있노라’하고 또 홀연히 사라졌다. 선원일행은 한강까지 무사히 도착한 후 생명의 은인이요 신통자재했던 스님을 찾아 망해암에 올랐다. 하지만 스님은 보이지 않고 다만 스님과 용모가 비슷한 미륵부처님 만이 법당에 모셔져 있었다. 그들은 부처님의 크신 자비와 신통력으로 자신들이 살아났음을 깨닫고 곧 왕에게 상소하여 사실을 알렸다. 소식을 들은 왕은 크게 탄복하여 매년 한 섬씩의 공양미를 불전에 올리도록 했으며 이것은 이후 400년간 지속되었다.
이러한 전설은 미륵불의 신통력을 나타내는 것이며 다만 전설을 통해 태종 이후 조선 왕실과 인연을 갖고 망해암이 유지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설이외에 조선중기 이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은 없으며 다만 순조3년(1803)에 홍대비(洪大妃)가 재물을 내어 중수했다고 하였다. 여기서 홍대비는 혜경궁 홍씨를 말하는 것으로 사도세자의 부인을 가리킨다. 조선시대에서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여인으로 꼽히는 혜경궁 홍씨가 절을 중창한 것은 남편의 비극적인 죽음을 달래기 위함이라고 보인다. 이후 철종14년(1863)에 대련(大蓮)주지스님이 중창하였고 1922년에 화재로 전소된 것을 1926년에 법당과 요사채를 중건했다. 1939년에는 용화전을 중건하고 1940년에는 대방을 중수하였으나 6.25전쟁으로 또다시 전소했다. 그래서 지금의 건물들은 6.25이후에 모두 새로 중창한 것들이다. 1973년에는 보경스님이 대방을 증축하고 도량을 일신하였다.
지금은 꽤 여러 채의 건물들이 있다. 절은 전체적으로 인천 앞바다를 바라보며 서향하고 있다. 현재는 차량으로 오르기 때문에 절 뒤쪽이라고 할 수 있는 동쪽에서 진입한다. 망해암의 주전은 미륵불을 모신 미륵전이다. 용화전 또는 미륵전이라 부르는 이 전각은 6.25 직후인 1952년에 지어진 것으로 정면3칸, 측면2칸인데 당시의 어려운 사정을 반영하듯 규모도 작고 부재의 쓰임도 열악하다. 전면에만 조각한 살미부재를 사용해 장식했으며 나머지 삼면은 아무런 장식이 없다. 처마는 부연이 있는 겹처마이고 팔작지붕이지만 웅장함과 화려함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소박한 건물로 내부에는 미륵석불입상을 모셨다.
이 미륵불은 1479년(조선 성종 10년)에 조성된 것이라는데 보개(寶蓋)를 쓰고 도톰한 코와 입, 길게 늘어진 귓볼에 법의(法依)는 통견(通肩)이며 굵은 U자형의 옷자락선이 조밀하게 표현 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안정된 상호(相好) 등은 당시의 불교신앙과 대불조성(大佛造成)에 대한 시대적 유형을 살피는 자료로 평가된다.
특이하게도 현재 미룩불은 가슴 이하는 마루 밑에 묻히고 그 이상만 나와 있다. 얼굴과 몸은 하얗게 회를 발랐는데 특히 얼굴은 두껍게 발라 석불의 느낌이 전혀 없고 미륵불의 소박하고 투박한 맛이 사라졌다. 머리에는 둥근 두관을 썼는데 검은색 칠을 했다. 석불의 높이는 223㎝인데 지금은 극히 일부분만 노출되어 있다. 장기적으로는 건물을 헐고 원래 모습처럼 야외에 노출된 미륵석불로 중창불사한다는 계획이다.
용화전 바로 앞에는 3층으로 된 콘크리트 건물의 설법전을 두었다. 1973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용도는 대방이었다고 한다. 대방은 경기도 사찰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왕실이나 귀족들의 원찰에서 왕실이나 귀족들이 절을 찾았을 때 기도하는 건물이다. 대개 불전 앞에 지으며 불전보다 큰 것이 특징이다. 미륵전 서북쪽으로는 정면3칸, 측면1칸의 맞배집으로 지은 삼성각이 있으며 그 앞에 석탑과 사적비가 놓였다. 미륵전 남쪽으로는 서향하여 정면3칸, 측면2칸의 규모가 작은 맞배건물로 관음전이 놓였으며 그 남쪽으로 인접하여 사방 단칸의 범종각이 있다. 관음전과 범종각 앞쪽, 즉 서쪽으로는 민가풍의 선실과 객실이 놓여 선방과 요사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건물들은 대개 바위 암반을 활용해 경사지에 옹기종기 놓였으며 건물들 앞으로는 최근에 마당을 만들고 마당 앞쪽에 정면8칸, 측면2칸의 우람한 누각을 새로 지었다. 이곳은 현재 종무소로 쓰고 있는데 규모가 절을 압도한다. 중창불사 계획도를 보면 앞으로 설법전과 관음전, 요사채 등을 헐고 정면3칸, 측면3칸의 대형불전을 지을 계획을 갖고 있다.

 

안양 상공은 비행기 항로의 광화문 사거리

망해암에서 50여 미터 더 올라간 비봉산 정상에는 1950년대 설치된 관악산 무선표지국이 있다. 이곳은 지상항법 유도장비인 ANYANG VOR(VORTAC)가 있어 비행기들의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

지상으로 자동차, 사람이 다니기 위해서는 길이 있듯이 하늘위를 날아다니는 비행기도 지정된 길(항로)이 정해져 있다. 특히 안양은 비행기 항로의 심장 부분에 해당되는 곳으로 안양상공을 오가는 비행기가 많아 꽤 복잡한 지점이다.

VOR이란 VHF Omni-directional Range 라는 뜻으로 VOR 지상국은 360도 전 방향으로 전파를 방사하여 항행하는 항공기에 방위정보를 알려 주는 장비로 하늘의 길목에도 이를 가리키고 유도하는 등대나 이정표 역할을 하는 일종의 "무선국"이다.

VOR의 주 임무는 항공기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 공항의 방위각정보, 즉 방향을 제공하는 시설로 선박으로 치면 항해지도에 해당하는 엔루트챠트(En-route Chart)에 군데군데 VOR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

여기서는 주파수 108∼118MHz, 출력 50∼100W의 정현파(正弦波)로 변조한 9,960Hz 전파를 전 방향으로 쉴 사이 없이 발사하고 있어 항공기는 이 신호를 받아 위치를 확인하고 목적지 공항의 방향과 남은 거리 등 정보를 얻게된다.

안양 관악산 상공은 지도상으로 보아도 우리나라의 한 가운데에 있고 여러 항로가 만나고 갈라지고 있어 가장 붐비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즉 우리나라 항로의 간선 교차로가 되는데 도로로 치자면 광화문 사거리 정도에 해당한다.

관악산 정상의 안양 VOR을 기점으로 서쪽으로 가면 인천공항이나 중국으로, 동쪽으로 가면 강릉, 일본, 미주로 가는 항로가 되고 남쪽으로는 제주, 광주, 동남아, 호주 방면으로 이어지는 항로가 된다.

항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항로란 사전에서 보면 항공기가 다니는 비행경로로 공중에 설정된 일정한 폭(이를 보호공역이라 한다)을 지닌 통로로 항공로라고도 한다. 중심선 좌우 폭이 최소 4nm(7.4km)씩 이므로 8nm(14.8km)의 띠 모양의 공간이다.

이들 항로에는 군데군데 VOR이 있어 일종의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즉 비행기는 VOR 상호간을 연결하는 길을 따라 날게되는데 이를 VOR의 첫 글자를 따서 빅터항로(victor airway)라고 부르며 국내 항공로의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비행기는 항로의 중앙선을 따라 비행하며 동일방향 동일고도를 비행하는 항공기와는 서로 시간차를 두고 같은 방향, 다른 고도의 항공기끼리는 29,000피트 이하에서는 2,000피트 차이를 두어 분리하고 29,000피트 이상에서는 4,000피트 씩 간격차이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