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진기록/동네탐사

[탐사8]안양2동 좋은집과 양명고의 문화유산(2013.03.30)

안양똑딱이 2017. 5. 16. 06:50

 

안양기억찾기 탐사 8번째로 찾아간 안양 최초의 사회복지시설 ‘좋은집’과 양명고입니다. 이곳에는 1930~1950년대 지어진 옛 건물들이 남아 있습니다. 사회복지시설 좋은집은 1918년 서울에서 경성기독보육원으로 출발한 고아원이 1936년 안양으로 이전해 기독보육원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으며 이후 해관보육원, 현재는 좋은집으로 불리우고 있지요.
기록을 보면 좋은집에는 한국 첫 여류화가, 문필가, 여성운동가였던 나혜석이 시대적 편견에 떠밀려 유랑생활을 하던 중인 1947년에 이곳 농장에 머물었으며, 당시 이화여대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있던 젊은 시절의 화가 박인경(한국 동양화가의 대가 고암 이응노 화백의 미망인)이 이곳에서 나혜석을 만나는 등 문화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데, 정작 안양시와 지역문화계에서는 잘 모르고 있는 듯 싶네요.
재일교민 시사정보지 [아리랑] 에 다음과 같은 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긍선(경성기독보육원 설립자)은 1919년 서울 서대문 옥천동(玉川洞) 3천 평의 대지 위에 경성보육원을 설립한다. 세브란스 의전 교장 시절인 1936년경에는 넘쳐나는 고아들로 비좁아져 이를 경기도 안양읍 관악산 밑에 전야(田野) 8만평을 사들여 옮긴다. 따라서 이름도 자연히 안양기독보육원이 되었다. 우리 나라 최대의 고아원이었다. 유치원과 보통학교도 만들어져 있었다. 원래 이곳은 일제 때 일본인의 목장 즉, 마쓰모토 목장(松本牧場)이 있던 자리였다. 오긍선은 1916년 4월부터 1917년 5월까지 동경제대 의학부에서 연구생활을 한 바 있다. 이 시기 나혜석과 오긍선의 도쿄 생활은 겹쳐진다. 이 인연으로 후에 오긍선이 갈곳 없는 나혜석을 보호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좋은집과 비로 인접한 양명고에도 옛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양명고 자리도 원래 기독보육원(현 좋은집)이었는데, 매각되면서 학교가 들어선 것이지요. 학교 뒷편에 보면 돌로 쌓아 만든 건축물과 보육원이 있을 당시 창고로 사용하던 건물 등 보전 가치가 있어 보이는 건물들이 남아 있는데 좋은집에 남아 있는 한옥 건축물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한 건물은 아직 사용하고 있어 깨끗하지만 다른 건물들은 창고 등으로 사용하고 있어 학교측도 보전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있는 듯 싶습니다.
이날 탐사를 안내한 김귀연 안양2동주치민자치위원장은 양명고 테니스장은 보육원 예배당이 있던 자리로 1950~60년대 안양에 예식장등이 없을 당시 이곳에서 결혼식이나 큰 행사 등이 자주 열렸다고 합니다. 특히 내부가 전부 나무로 매우 아름다운 공간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네요. 제 앨범속 빛바랜 흑백 사진에도 제가 초듣학교 4학년 때인 60년 말 무렵 이곳 예배당 앞에서 찍은 사진이 있네요.
양명고에는 수령이 100년이 넘는 오래된 소나무들이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과거 정조대왕 능행차길이 이곳을 통과했을 것으로 추정하네요. 즉 한양을 출발한 능 행차가 노량진을 지나고 만안교를 지나 보육원 옆 야산(동네 어른들은 호랑이 꼬리 부분-관악산)을 끼고 돌아 이곳을 통과해 안양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이지요.
참고로 좋은집과 양명고 자리는 일제 강점기 당시 오끼이농장 이었습니다. 일본 토호 오끼이는 1930년대 안양에서 대규모 농사를 지었는데 안양2동 대부분이 그의 농장이었을 정도로 그 면적 어마어마 했던 것으로 예기되고 있습니다. 과거 안양포도가 유명했는데 사실, 오끼이, 야스에와 같은 일본인 영농가들이 '30년대 중반 일본에서 묘목을 가져다가 재배하여 전국으로 퍼져나간 역사를 갖고 있지요.
기록에 의하면 조선 후기의 문신인 심기원의 묘가 좋은집 자리에 있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청송 심씨 대동보에 「과천 서이면 안양리」라고 기술되어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파악되지 않았으며 비산동에 거주하는 청송심씨 문중에 따르면 1930년대 경성보육원(현 안양기독보육원) 공사 때 그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묘가 발견되어 신문지상에 분묘이장공고까지 냈으나 후손이 나타나지 않자 당시 보육원 측에서 이장했는데 어디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지요.
김귀연 위원장은 좋은집 옆 야산 정상에 일제 신사 흔적이 있었다고 하네요. 또 야산에 무덤이 하나 있었는데 현재 위치를 대략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