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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조성원]작은고추처럼 매웠던 소골안 아이들

안양똑딱이 2017. 3. 17. 03:41

[조성원]작은고추처럼 매웠던 소골안 아이들
(외국에 나가면 꼭 떠오르는 말)

작은 고추는 맵다. ' 참 그 속담은 우리에게 유효적절하다. 체구가 약간 작더라도 벅찬 일을 잘 치러내는 강단 있는 사람을 가리킬 때 흔히 우린 이 말을 쓴다.
어릴 적 앞줄을 벗어날 수 없던 아이로 그 말이 그 시절부터 꽤 위로가 되고 또 든든하였다. 난 그 말을 한 기억으로 꽤 실감한다. 원래 수컷들이란 자웅을 겨뤄 제일 힘이 센 자를 고르는 본능적 기질이 있지 않은가. 그 시절 아이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부가 지배하는 교실안과 교실 밖의 공기는 사뭇 달랐으며 서열 또한 틀렸다.
시내 쪽에 사는 아이들은 소골안쪽 보단 얼굴도 뽀얗고 행색도 괜찮았다. 타이스 양말을 신은 것 하면 가죽 가방에 운동화를 버젓이 신고 다니는 애들이 시내 쪽이라 할 것이면 소골안 쪽 아이들은 찢어진 검정고무신에 보자기 가방이고 양말은 생각지도 못할 행색이었다. 툭하면 신발주머니가 없어지던지 우산이 없어지는 소동이 일어나곤 했는데 늘 지목 받는 쪽은 소골안 아이들 이었다.
패거리들은 늘 아옹다옹 이었다. 드디어 가는 방향이 엇갈리는 흙산 밑에서 큰 결판이 벌어졌다. 아이들 수로 보나 덩치로 보아서도 도저히 소골안 아이들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한 왜소한 아이 하나가 코피를 흘리면서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더니만 끝내는 큰 돌멩이를 주어 들었다.
한 편에서 코피가 나면 거의 싸움은 끝이고 주먹을 쥐고 노려보기만 해도 겁을 먹기 마련인 그 나이에 이는 분명 대담한 공포였다. 싸움에 반칙이란 없다. 이후로는 누구든 그 아이에게 꼼짝을 못했다. 시장 통에 사는 아이들이나 고아 애들도 감히 소골안 아이들을 넘볼 수가 없었다. 나도 그 바람 잘 지냈다. 검정고무신에 보자기로 책을 싸서 메고 다니던 한 아이, 작은 고추는 실로 매웠다.
일찌감치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작은 고추가 맵다.’란 말은 분명 생명의 말이다. 자산도 없고 자원도 부족한 나라에서 우리는 지금 고추처럼 매운 기세를 이 세상에 드높이고 있지 않은가. 유럽 중심가 한가운데 내 걸린 우리나라 상표를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 없다. 실제로도 보통 청고추보다 작은 청양 고추가 몇 배나 더 맵다. 
 
조성원의 수필 '나 어릴적' 초고에서 발췌. 이 글을 쓴 조성원(어릴적 이름 조형곤) 수필가는 1957년 안양에서 태어난 안양초교 38회, 안양중학교 23회 졸업생으로, 저하고는 동창이지요. 오랜 기간 대덕 모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는데 블랙죠라는 이름을 글을 쓰다가 수필가로 등단해 현재는 한국수필가협회와 수필문학가협회에서 이사직으로 적극적인 문단 활동을 해오며 제2회 문학저널 창작문학상과 수필문학사가 주관한 제1회 소운문학상을 수상도 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수필집인 ‘빈 가슴에 머무는 바람 1&2’이외에도 ‘송사리 떼의 다른 느낌’, ‘작게 사는 행복이지만’, '‘오후 다섯 시 반’ 등 7권의 수필집을 내놓었으며 ‘2천 년 로마 이야기’와 ‘스페인 이야기’ 등 여행 에세이집도 발표했습니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