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1970년대 안양3동 병목안로와 수암천과 채석장 철길

안양똑딱이 2017. 2. 24. 16:08

 

#안양 #안양3동 #수암천 #채석장철길 #병목안로 #노적봉 #삼진알미늄 #한국아트제지/ 1970년대 안양3동 병목안로의 풍경으로 새마을쪽에서 안양역 방향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오른쪽은 당시 삼진알미늄과 한국아트제지(현재의 프라자아파트, 1986년 신축, 안양역 뒤에는 한국특수제지-한국제지가 있었음)가 있던 것으로 오른쪽에 살짝 공장 정문이 보이네요. 작고하신 변원신 어르신 구술에 의하면 해방이후 이 자리에는 미군부대가 있었다고 하네요. 당시 미군부대는 수리산 정상(슬기봉)에 있는 통신대를 운영했지요. 수리산 통신대는 석수동에 있던 미군부대가 이전하기 전인 1970년대 중반까지 운용하다가 한국군이 인계받아 단말기 중계소를 운용했는데 제 어릴적 기억으로는 수리산정상에 1개 분대 정도가 근무했던 것으로 압니다. 현재는 거대한 규모의 공군기지가 자리하고 있지요.
사진 왼쪽으로는 노적봉(현재의 안양예고로 산봉우리를 잘라 학교 부지를 만듦)이 있고 산밑에는 수암천을 따라 판잣집들이 있었는데 1977년 안양 대홍수때 싹 쓸려 내려갔는데 1977년 7월 8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불과 4시간 동안 쏟아진 집중호우로 해발 110m의 노적봉이 산사태로 천변에 살던 8가구 29명이 몰사(沒死) 당하는 아픔이 있는 곳으로 이후 정부의 주거환경개선정비사업을 통해 노적봉 옆에 1999년 율목주공아파트(안양동 969-1, 2000년 입주, 339세대)가 자리하지요.
부언해 노적봉에 대한 옛날 얘기를 하면 안양하면 과거(1950-70년대) 당도 높은 안양포도가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했는데 그 이전에는 밤나무가 많았었나 봅니다. 밤 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율목동(栗木洞) 이라 칭하고 있는데, 기록을 보면 일제강점기인 1933년과 1934년에는 동아일보사와 그 자매지인 신가정<新家庭>>(현재의 여성동아 전신) 주최로 전국 부녀자 밤줍기대회가 노적봉과 담안(장내동성당 주변)에서 열려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안양을 왔다고 합니다.
사진 왼쪽으로 수암천을 따라 철길이 보이는데 안양역에서 병목안채석장(현재의 병목안시민공원)을 연결했지요.
병목장 채석장은 일제 강점기인 1934년 경부선 복선화공사를 하면서 자갈을 채취하던 곳이었는데 해방 이후에도 철도청은 수도권 일대에 건축용 골재로 제공하기 위해 1주일에 두세 차례 철도운반 화물열차가 다녔답니다.
당시 안양9동과 새마을에 살던 아이들은 열차가 지나갈 때를 기다렸다가 화물차 맨 뒷칸에 몰래 매달려 안양시내로 또는 집으로 가기도 했다.(종종어른도 있었음) 또 철도 레일에 못을 놓아 기차가 지나가 납작하진 못을 갈아 연필 깍는 칼로 쓰기도 했는데 당시로서는 최고였지요.
애환이 담겨 있던 열차 채취용 화물열차 운행은 80년 초반에 중단하고 이후 철길에 놓여져 있던 레일이 전부 철거됐으며 그 이후에는 도로로 사용되고, 도로 확장으로 없어지고 사라지면서 이젠 기억속에만 남아 있습니다.
사진 왼쪽 수암천에 다리가 보이는데 건너편 천변 집들로 가던 다리고 사람과 자전거 정도만 다니는 작은 콘크리트를 얹은 다리였는데 신통하게도 다리가 있던 자리에는 현재 한숲작은도서관과 주차장을연결하는 큰다리가 놓여져 있었지요.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공장 정문앞으로는 개울 건너 판잣집 동네(현 율목 주공아파트 방향)로 들어가는 차량이 지나갈 수 있는 콘크리트로 만든 뚝방다리가 있었는데 이 곳은 60-70년대 동네 주민들의 빨래터이자 동네 아이들의 멱 감는 물놀이 장소로 동네 사람들이 모여 소식을 공유하고 소통하던 곳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