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규시인의 안양이야기(2)
‘대동문고’와 ‘전영선’ (2008.12.12)
1963년 대학 졸업반 때, 나는 안양여중고에서 아르바이트로 배구코치를 하고 있었다. 그해 가을 어느날, 교문을 들어서려는데 한 젊은이가 상자 판지에 책을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이때나 그때나 책을 좋아 했던지라 몇 권을 골라 샀다.
며칠 후에 또 그가 왔다.
책을 또 샀다.
그러기를 몇 차례,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고 우리는 곧 친한 사이가 됐다.
그가 바로 오늘날 대동문고의 전영선 사장, 그와의 교우는 그렇게 시작됐던 것이다.
45년 전의 일이다.
전영선 사장은 ‘자수성가’보다 ‘입지전적’이라는 말에 더 합당한 사람이다.
전남 영광 출생으로 가정 형편상 중학교 이상의 학업을 계속 할 수 없게 되자, 고학 일념으로 무조건 가출·상경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음식점·세탁소 종업원, 공사판 막노동, 신문배달, 봉투제작, 자전거 용달에다가 뻥튀기·멸치·오징어·아이스 케익·참외 장사 등, 배고픔의 서러움을 흠씬 맛보고, 그래도 공부는 해야겠다고 책은 좋아해서 1961년에 포천에서 헌책들을 모아 ‘대동서점’을 꾸리게 된 것이 서점과의 인연이 된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포천을 떠나 마침내 찾아든 곳이 바로 ‘안양’이었다.
안양여고 맞은 편 셋방에 ‘대동서점’ 간판은 또 내걸었지만, 실제 장사는 당시의 금성방직, 태평방직, 유유산업, 동일방직, 동국물산 등의 회사와 안양공고, 안양여고의 정문 앞, 또는 구시장이나 현 중앙시장에서의 노점상이었다.
그는 정말 근면·성실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작전을 방불케 하는 노력 끝에 노점상을 그만두고 안양공고로 들어가는 길가에 단칸 판자집을 얻어 ‘대동서점’의 둥지를 틀었다.
단 한 권의 책을 주문받아도, 그것이 희귀본이라면 청계천·동대문의 고서점들을 샅샅이 뒤져서 반드시 찾아 왔고, 학생들에게는 덤핑 서적이 아닌 양서를 공급하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지성감천이라고 ‘대동서점’은 날로 번창하여 드디어 8층의 매장 건물과 서너 곳에 별관까지 설치한 대형서점으로의 성장·변신을 이룩해내고 명칭도 ‘대동문고’로 바꿨다.
전영선 사장은 서적상이기보다 철저한 교육주의자다.
자신이 더 배우지 못한 한을 대신 풀기 위해 불우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새마을문고 안양지부장 재임시에는 안양교도소에 ‘독서대학’을 개설, 재소자들의 독후감을 모아 「책 속에서 새 인생을」(1984)이라는 책을 펴내고, 안양시 각 동에 새마을문고를 설치해 도서 기증을 하고, 각종 지역문화예술 행사는 물론이요, 최근에는 중국 요녕성의 조선족 중학교에까지 지원의 손길을 펼쳤다.
이와 같은 그의 헌신적인 봉사에 감동한 안양지역의 퇴직 교장단은 수년 전부터 자원봉사단을 결성하고 주 6일간 대동문고 현장에서 독서지도와 책도우미 활동을 하고 있다.
아, 그런데 그 대동문고에 부도가 난 것이다.
바로 앞 건너편에 대형문고가 들어서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현 위치로 확장·이전한 것이 무리한 투자였다고 한다.
어쨌거나 안양시민에게 서점의 상징이자 문화적 명소로 자리매김한 45년 전통의 대동문고가 존폐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에 평소 전영선 사장을 아끼는 사람들이 서둘러 ‘대사모(대동문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만들고, 시민들에게는 한 권의 책이라도 대동문고에서 구입해 주기를, 금융기관과 출판사 측에는 부도처리 기간을 연기해 대동문고가 재생할 수 있도록 선처해 줄 것을 당부하는 ‘호소문’을 작성·배포했는데, 대동문고의 부활에 일조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구나 전영선 사장 내외가 오랜 지병으로 건강이 여의치 못한지라 설상가상의 고통인들 오죽하랴. 사람에 따라서는 사정(私情)에 치우친 글이라고 탓할 지도 모르겠으나, 반 세기에 가까운 우정도 우정이려니와, 안양에서 대동문고가 45년 간 쌓아 올린 문화·교육적 상징의 탑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도 안타깝고, 한 인간의 입지전적인 신화가 물거품이 되는 것도 후세들이 본받을 인생교본의 상실이라는 점에 인간적 연민이 더해져, 누구보다도 ‘전영선’이라는 인간을 잘 아는 사람으로 이 글을 쓴 것이다. 2008년 12월 12일(금) 01:01 [안양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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