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김대규]시인의 안양이야기(1)/ 채만식의 ‘안양복거기(安養卜居記)’

안양똑딱이 2017. 2. 18. 15:19

김대규시인의 안양이야기(2008.12.29)

채만식의 ‘안양복거기(安養卜居記)’

안양은 1960년대 이후부터 급속히 성장·발전한 후발 산업도시지만, 문학의 경우는 이보다 앞선 1930년대부터 1940년대에 걸쳐 극작가 이서구(李瑞求), 소설가 이무영(李無影)·채만식(蔡萬植), 시인 박두진(朴斗鎭), 평론가 정귀영(鄭貴永) 등의 문인들이 작품활동을 한 관계로 일찍이 문학성이 높은 지명으로 알려져 왔다.
그들 가운데서 정귀영만 아직 생존해 있지만, 92세의 고령으로 인천의 한 노인병원에서 요양 중에 있다.
위의 네 선구자들이 안양에 남긴 업적 가운데서 문학적 유산으로 기릴 수 있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가 아닐까 한다.
첫째는 정귀영·박두진 등이 1947년에 ‘안양문학동인회’를 결성하고, 안양 최초의 동인지 『청포도』를 창간했다는 것. 이는 ‘안양문학’의 공식적인 출범으로서, 이를 깃점으로 한 『안양문학60년사』가 곧 출간 준비 중에 있다.
둘째는 1958년에 정귀영이 성기조·노영수·김창직 등과 함께 『시와 시론』을 창간하여, 소읍(小邑)이었던 안양을 지방문학의 요람으로 부각시킨 일이다. 이의 문학적 성과에 대해서는 상술하지 않겠다.
그리고 세 번째가 이 글의 주제인 채만식의 ‘안양복거기’이다. 소설 『탁류(濁流)』로 유명한 채만식은 1940년에 인천 송도에서 ‘양지말’(현 안양 3동)로 이사를 와 작품활동을 하다가 1946년에 낙향(이리)하여 4년간의 폐결핵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
‘안양복거기’는 그가 새롭게 삶의 터전으로 삼게 된 ‘안양의 인상기’라 할 수 있겠는데, 아주 긴 편지 형식의 글이다.
‘P형’에게 보내는 ‘안양복거기’는 “이번에 불시로 송도를 떠나 안양으로 이사를 했오. 경부선 안양역이고 경성(京城)과는 바로 24킬로 상거(相距)에 아주 지근한 사이고, 여름 한철이면 푸울과 포도와 수박으로, 그밖에도 관악산 하이킹의 초입처로 두루두루 서울 주민들에게(그러니까 형한테도) 잘 알려진 그 안양이오.”라는 대목으로 시작된다.
글 가운데는 주거 환경의 어려움이 적잖게 나타나 있지만, ‘복거(卜居)’라는 말이 “살 만한 곳을 가려서 정함”이라는 뜻인 점에 비춰, 그래도 안양으로의 이주에 정서적인 거부감은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이 ‘안양복거기’를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삼는 것은 그것이 문학작품이어서가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 특히 안양과 관련된 생활사 연구의 자료적 가치 때문이다.
예컨대 1940년대 양지말의 집값이 ‘270원’이었다는 점, ‘역전의 조선직물이라는 푯말’, 대부분의 집에 울타리와 사립문이 없었고, 등기조차 나지 않았으며, 수리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홍수때는 범람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고(바로 그곳에서 78년 수해가 났다), 건너 편에 공동묘지(현OO아파트)와 마을에 상여집이 있었으며, 안양에 공중목욕탕이 없어 ‘목간’을 하려면 서울로 가야 했고, 여름엔 푸울에 가서 씻었으며, 목욕비가 1원이요, 편지는 기수일(奇數日)의 격일제 배달에, 인력거(人力車)가 없었으며, 당시 서울은 외미(外米) 백미 잡곡 비율이 3:4:3 이었는데, 안양은 5대1의 잡곡 대 백미 혼합이었다는 것. 또한 물이 대단히 흔하고 수질이 좋아 집집마다 우물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물이 좋아서 이 고장 사람들은 체증이란 걸 모른다고까지” 할 정도여서 “일설에는 ‘안양물을 오랫동안 먹으면 디스토마가 없어진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수리산 아래로는 ‘수천 주의 밤나무가 울창했고(율목동), ‘하천을 지나 자갈 운반의 인입선(引入線) 철둑을 넘어서면 이내 그 율림(밤나무숲)이 나타나니’, 그곳이 바로 현재의 시민체육공원 가는 길이다.
채만식은 특히 이 밤나무숲에서 울어대던 두견을 좋아해서 “이 두견의 울음 하나만 가지고도 풍류객으로 하여금 안양을 귀히 여기게 하기에 족한 것이오”라고 쓰고 있다.
양지말은 내가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곳이어서 더욱 마음이 이끌리는 글이지만, 자연 하나만으로도 행복했고, 그래서 안양을 귀하게 여긴 한 소설가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는 것이다.  2008년 12월 29일(월) 01:01 [안양시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