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김윤주]책이 있어 행복한 군포시를 꿈꾸며

안양똑딱이 2016. 7. 24. 17:01
[김윤주]책이 있어 행복한 군포시를 꿈꾸며

[2011/04/28]군포시장


 

어린 시절 경북 예천의 시골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어디랄 것 없이 전란 이후의 마을 풍경은 을씨년스럽기만 했습니다. 어른들은 먹고살 걱정, 아이들은 놀이걱정, 학생들은 진학걱정에 여념이 없었다고 기억됩니다.
7남매의 장남인 저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집안일을 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진학포기가 앎에 대한 저의 집념마저 꺾지는 못했던 모양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농사를 도우면서도 매일 밤 동네 외삼촌 책방을 찾아가 책을 읽곤 했었는데, 그 습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절, 책은 제게 밤하늘에 뜬 보름달처럼 삶을 밝혀주는 희망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삼촌의 책방에 있던 책을 빠짐없이 다 읽게 됐습니다. 골라 읽은 것이 아니라 그저 눈에 들어오는 대로 읽었기 때문입니다. 식욕 못지않게 왕성한 독서욕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책방은 저에게 늘 새로운 선물을 쥐어주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읽었던 책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 두고두고 삶의 양식이 되고 있습니다.
외삼촌 책방의 책을 다 읽고 난 뒤 고향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후 도시의 생활은 저를 단련시켰습니다. 책을 통해 세상으로 난 문을 열 수 있었다면, 노동 현장에서의 호된 경험은 삶의 의미와 삶의 방식을 깨닫게 해줬습니다.
그런 경험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민선5기 군포시장이 되자마자 ‘책 읽는 군포’를 선언했으면서도 정작 저는 요즘 제대로 책을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찾던 휴식처였던 서점을 가본 지도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대신 요즘은 종이로 된 책이 아닌 시민들이 한 장 한 장 넘겨주는 삶의 이야기라는 책장을 더 많이 넘기고 있습니다. 종이책보다 더 생생한 삶의 책장을 넘기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닙니다. 더구나 삶의 책속에는 재미만 있는 게 아닙니다. 깊은 한숨과 쓰라린 상처와 회한 등 훨씬 직접적이고 다양한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책은 종이책이나 전자책 구분 없이 매력적인 존재입니다. 바쁜 생활 가운데에서 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만나고, 새로운 생각을 접하는 일은 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되어줄 때가 많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정도로 책을 읽었다면 다른 사람들과 같은 정도에 머무르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개인, 기업, 국가 차원에서도 전체적인 실력과 경쟁력 향상을 원한다면, 그 구성원의 독서를 제도적으로 권면하는 게 지름길일 것입니다.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방식과 내용은 다르지만 다채로운 ‘책 읽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 15년을 넘어선 지금 더 이상 선심성 혹은 겉치레 사업으로는 시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없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 역시 민선5기 출범 초기부터 ‘책 읽는 군포’를 핵심 사업으로 내걸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즐겁게 책을 읽고, 지식의 풍요 속에서 삶의 활력이 넘치는 복합문화도시를 꿈꾸며 생활 속에 깊이 뿌리박힌 독서문화의 활성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앞서 민선2~3기 군포시장을 지낼 당시에는 ‘사람 냄새나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펼쳤던 기억입니다. 군포시는 수도권 위성도시로서 특산물이나 고유의 지역문화가 부족합니다. 이런 군포에 어떤 정체성을 확립할 것인가는 시장인 저로서는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고민의 결과 ‘사람 냄새나는 도시’ 구상을 마무리 하는 의미에서 ‘책 읽는 시민, 책 읽는 도시, 책의 도시 군포’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미 건립된 다섯 개의 시립도서관 외에도 아파트, 동네파출소, 주민센터, 공원 등 편의시설마다 작은 도서관을 만들 생각입니다. 군포출신 명사나 작가를 초청해 시민들과 만남의 자리를 만들고, 시민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지속적으로 열 계획입니다. 도서관 대출정보는 물론 시민들의 성향을 분석해 맞춤형 도서를 추천해주는 홈페이지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고책 나눔장터와 북페스티벌 등 책 관련 행사와 함께, ‘군포의 책’을 선정해 함께 읽고 토론하고 서평도 쓸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물론 책을 읽은 수치나 통계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는 내가 읽은 한 권의 책, 한 줄의 글이 오늘 나의 마음을 따스하고 환하게 밝혀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어린 시절 제가 그랬던 것처럼 군포시민들이 언제 어디서나 책과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삶의 현장 곳곳에서 책을 읽어 행복한 군포시민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1-04-28 13:4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