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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영화촬영소 제2스튜디오 상량식(1958년)

안양 석수동에 자리했던 수도영화사 안양촬영소 제2스튜디오 상량식(1958년) 출처: 조선일보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동양의 헐리우드를 꿈꾸며 수도영화사 홍찬 사장에 의해 안양시 석수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영화촬영시설인 안양촬영소를 설립했다. 당시 기공식에서는 이승만 대통령까지 참석해 테이프를 끊고 축하했다. 안양영화촬영소는 대지 3만평에 500평과 350평의 스튜디오 2개동과 수중촬영장, 현상소 및 영사실 등을 비롯 촬영, 편집, 녹음 등 영화작업을 일괄 처리하는 동양최대의 시설로 한국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인 이강천 감독의 '생명'을 첫 작품으로 제작했다

1958년 동양 최대 규모였던 안양영화촬영소

안양 석수동에 자리했던 안양영화촬영소 전경(1958년) 1954년 수도영화사 홍찬 사장의 주도하에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종합촬영시설인 안양촬영소가 안양시 석수동에 들어선다. 당시 기공식에는 이승만 대통령까지 참석할 정도로 동양의 헐리우드를 꿈꾸며 3만평의 대지 위에 각각 500평과 350평의 스튜디오를 갖추고 촬영, 현상, 편집, 녹음 등 영화작업을 일괄 처리할 수 있도록 한 동양 최대의 시설이었다. 그러나 수도영화사가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자 신상옥 감독이 1963년 안양촬영소를 인수하여 1966년에 명칭을 '신필림'으로 바꾼다. 신필림에서는 1970년대 중반까지 150여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부부는 1966년 설립한 안양영화예술학교를 통해서도 많은 연기자들을 배출하며 충무로의 패왕..

1970년대 안양천을 건너던 드럼통 줄배

1970년대 안양천을 건너던 드럼통으로 만든 줄배입니다. 사진속 어린이가 손으로 줄을 잡아 당기고 있는 것처럼 하천 양쪽에 로프줄을 묶어놓고 줄을 당겨 건너 다녔지요. 당시 안양천에는 물이 많았답니다. 이 배가 운행되던 곳은 현재의 양명고앞인데 먼길을 돌아다녀야 했던 주민들과 여름철에는 안양유원지로 가고자 하는 이들이 이배를 타고 건너가기도 했지요. 저도 어렷을 적 이배를 타본 경험이 있답니다

[안양권지도]1975년의 시흥군

2002년 1월20일 충남 공주시 계룡산 답사 도중 작고하신 고 이한기 선생이 수집한 자료중 하나인 1975년 시흥군 지도입니다. 현재 시흥시에 보관돼 있을껍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6개구와 안양, 군포, 의왕, 과천, 시흥, 부천, 광명, 안산시 등 경기도의 8개시로 나뉘어 뿔뿔이 흩어졌지만 1895년 5월 26일 탄생되어 1988년 12월 31일로 93년만에 폐군되기까지 거대한 행정구역이었지요.

1968년의 안양읍내 두번째 극장 읍민관

#안양 #닐미샬로프(http://www.mishalov.net/) #기록#역사/안양읍내에 있던 극장인 읍민관의 1968년의 모습입니다. 당시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에 전령으로 근무하던 닐 마샬로프씨가 컬러슬라이드에 담은 기록으로 이젠 사진으로만 남아 있지요. 읍민관은 안양에서 두 번째 생긴 극장으로 1965년 무렵 안양4동 중앙성당 가는 길목 오른쪽(얼마전까지 1층에 외환은행 안양지점이 있던 자리. 현 1층에 다이소)에 문을 열었지요. 읍민관은 1968년 안양극장으로 상호를 바꿔 운영되다가 2005년에 폐관되고 맙니다. 참고로 안양시내 최초의 극장은 화단극장으로 해방 이후인 1953년 3월에 개관했지요. 위치는 구도로변 현재의 있었답니다. 1965년인가 ‘저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이곳에서 상영됐는데 제 기억..

1943년 안양역앞 주막집 풍경

안양지역에 음식점(주막집)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아마도 한양을 오가던 삼남대로가 지나는 길목인 인덕원 사거리 일대에 자리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남아있는 기록은 없지요. 그렇다면 사진으로 남아있는 것은 없을까. 1943년 2월 20일 민속학자 송석하(宋錫夏) 선생이 안양역을 지나가다 역 앞에 있는 미륵당과 미륵불을 3장의 흑백사진으로 기록합니다. 그중 한장의 사진에 안양음식점이란 상호의 간판을 내건 주점이 담겨져 있습니다. 주점 출입문 위에는 '술'이라는 글씨도 보이네요. 1926년생으로 안양3동에서 태어난 이용구 옹은 어린시절의 풍경을 눈썰미있게 기록한 [양지마을의 까치소리]에서 1930년 당시 안양은 안양역을 중심으로 밀집된 곳에만 겨우 전깃불이 있을 뿐, 그 외에는 밤이면 희미한 석유 등잔불만이 가물..

1906년 9월 안양역에 정차한 기차

100여년전인 1906년 9월 안양역에 정차한 기차의 모습입니다. 독일인 헤르만 구스타프 테오도르 산더(1868∼1945)가 1906년부터 1년여간 러일전쟁의 흔적을 조사하는 여행길에 흑백필름에 담은 1906년 9월의 '안양역 풍경'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과거속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이 사진은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시장에서 전시되었던 '독일인 헤르만 산더의 여행'전에 선보였던 것으로 어찌보면 현존하는 사진 기록으로는 가장 오래된 안양지역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1930년대 안양역 구내 승강장 풍경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운영을 시작한 안양역사의 모습으로 철길이 복선으로 놓여져 있는 것을 볼때 1930년대 중반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1900년까지만 하더라도 서이면사무소도 등이 자리하는 등 군포장(안양 호계동 사거리)이 중심지였다면 안양역이 개통되면서 지역경제와 행정의 중심이 안양으로 이전하지요. 특히 안양천의 풍부한 수량으로 안양에는 섬유와 제지공장들이 들어서고 일본인들이 대규모 농장(오끼농장)도 만들고 이때 부터 포도농사도 시작됩니다. 1898년 군포 궁례동에서 안양리로 시집 온 고 강주희(1883년생) 여사도 시집올 당시 안양행궁 주변으로 집들이 십여 채에 불과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것을 2005년 말 작고한 고 장배순(1921년생, 전 안양시시정자문위원장) 옹이 생전에 증언한 바..

1934년 안양역앞 미륵불 의왕 용화사에 있다

1934년 2월 20일 경기도 안양의 안양역 앞에 있는 미륵당. 이 사진은 민속학자인 석남 송석하가 촬영한 것으로 유족들이 당시의 자료들을 지난 1996년과 2005년 2회에 걸쳐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고 박물관측이 최근 '처음으로 민속을 찍다' 제목의 전자책(DVD)으로 펴냄에 따라 실체를 드러낸 것으로 3컷이 수록되어 있다. 현재 의왕 용화사에 있는 미륵불. 안양역 앞에 있던 미륵불이 본백화점이 자리했던 용화사에 이어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하지만 많은 변형으로 과거의 형태와 완전히 다른 것 같은 미륵불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