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석수동에 자리했던 안양영화촬영소 전경(1958년)
1954년 수도영화사 홍찬 사장의 주도하에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종합촬영시설인 안양촬영소가 안양시 석수동에 들어선다. 당시 기공식에는 이승만 대통령까지 참석할 정도로 동양의 헐리우드를 꿈꾸며 3만평의 대지 위에 각각 500평과 350평의 스튜디오를 갖추고 촬영, 현상, 편집, 녹음 등 영화작업을 일괄 처리할 수 있도록 한 동양 최대의 시설이었다.
그러나 수도영화사가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자 신상옥 감독이 1963년 안양촬영소를 인수하여 1966년에 명칭을 '신필림'으로 바꾼다.
신필림에서는 1970년대 중반까지 150여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부부는 1966년 설립한 안양영화예술학교를 통해서도 많은 연기자들을 배출하며 충무로의 패왕으로 군림한다.
하지만 거대 왕국의 몰락은 정점의 순간에서부터 시작됐다. 기대했던 정부의 지원이 약속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막대한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재정적 위기에다가 박정희 군사정권으로 부터 지원도 시원치 않고, 과도한 제작편수에 따른 태작들을 양산한 결과, 흥행 성적마저 변변치 않으며 신필림은 1970년 회사 규모를 줄인 뒤 안양영화주식회사, 1973년 주식회사 신프로덕션 등으로 개명하면서 연명하지만, 전성기로의 회귀나 부활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더욱이 1975년 11월28일, 신필림은 홍콩과 합작한 '장미와 들개'의 예고편 중 검열과정에서 삭제한 키스장면을 극장에서 상영했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영화사 등록 말소 명령을 받는 수모까지 당한다.
1978년에는 영화배우 최은희씨가 북에 납치되고 신 감독도 북으로 가면서 주인 잃은 영화사는 1981년 문을 닫고 역사의 뒷쪽으로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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