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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안양역앞 미륵당과 미륵불 이야기

1934년 2월 20일 경기도 안양의 안양역 앞에 있던 미륵당. 옆 가게에 안양음식점과 술이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보인다. 이 사진은 민속학자인 석남 송석하가 촬영한 것으로 유족들이 당시의 자료들을 지난 1996년과 2005년 2회에 걸쳐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고 박물관측이 최근 '처음으로 민속을 찍다' 제목의 전자책(DVD)으로 펴냄에 따라 실체를 드러낸 것으로 3컷이 수록되어 있다. 미륵당에 있던 미륵불은 인근에 지어진 용화사 마당으로 옮겨진다. 안양 도심(현 안양CGV 사거리 대동서점이 있는 건물)에 있던 용화사는 1943년 금강산에서 오신 화응 큰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1983년 4월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337-6번지로 이전하였다가 인근에 아파트가 조성되자, 의왕시 내손동 827번지 종교용지를 매입..

1934년의 안양역앞 풍경(안양주막)

1934년 2월 20일 경기도 안양의 안양역 앞에 있는 미륵당. 옆 가게에 안양음식점과 술이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보인다. 이 사진은 민속학자인 석남 송석하가 촬영한 것으로 유족들이 당시의 자료들을 지난 1996년과 2005년 2회에 걸쳐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고 박물관측이 최근 '처음으로 민속을 찍다' 제목의 전자책(DVD)으로 펴냄에 따라 실체를 드러낸 것으로 3컷이 수록되어 있다

1970년대 초반의 안양유원지 입구 풍경

#안양 #안양유원지 #1970년대 / 사진속 풍경은 1970년대 안양유원지 초입의 모습이다. 1950-1980년 안양유원지는 수도권 주민들의 인기 피서지중 한곳이었다. 특히 1970년대에는 삼성천 계곡을 따라 대영풀장, 맘모스풀장, 안양관광호텔수영장, 만안각수영장들이 줄줄이 들어서 수영하기는 좋았던 반면 지하수를 마구잡이로 뽑아쓰면서 게곡의 수량이 줄어들고, 쓰레기 등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하는 등 유원지가 점차 훼손되는 계기가 된다. / 사진제공-이정범 선생

군포, 항일 시민 독립만세운동 기념탑 세워

군포, 항일 시민 독립만세운동 기념탑 세워 군포역 광장에 건립… “애국심 기리며 애향심도 키워” 군포시가 일제강점기에 항일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던 군포시민들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군포역 광장에 높이 11m의 기념탑을 세웠다. 시에 의하면 1919년 3월 31일 군포장(軍浦場, 오일장, 현 호계동)에는 장날을 맞아 2천여명의 주민이 모였고, 이들은 1.8㎞ 떨어진 일본의 군포장경찰관주재소(현 군포시 군포로 538번길 16)로 행진하며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각종 사료에는 당시 일본이 경찰 외에도 군 병력까지 출동시켜 총을 발포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한 시민을 해산시켰다고 나온다. 이에 따라 시는 죽음을 각오하고 조국 독립을 위해 나선 옛 군포시민들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기념탑을 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