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667

1968년 안양유원지 가는길옆 아이스크림 장수

#안양 #안양유원지 #여름 #닐미샬로프 #기록/ 지금이나 예전이나 무더운 여름철이 오면 시원한 것으로 찾지요. 1968년 7월 안양유원지 들어가는 길의 풍경으로 아이들의 시선이 아이스크림에 팍 꽂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전의 모습이니 사진속 주인공들은 이제 60세의 어른들이겠지요. 이 사진은 당시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인 제83보급대대에서 우편물 수송담당으로 근무했던 주한미군병사 닐 미샬로프(Neil Mishalov)씨가 컬러슬라이드로 찍은 너무나 귀한 기록사진입니다. 제 유년시절의 기억으로는 당시에 안양읍내에는 태극당과 미승당, 풍미당 제과점에서 아이스께끼와 하드를 만들어 팔았는데 까까머리 고학생들이 길거리에서 안에 스티로폴을 넣은 나무께끼통을 어깨에 메고 '께끼나 학드'를 외치고 다녔지요. 그때도 ..

1979년 안양 만안교 이전 관련기사

한컷의 사진을 찾았습니다. 정조임금이 건설한 안양 만안교 이전복원 옛 기사(경향신문 1979.4.14일자) 에 기록된 당시의 만안교 사진으로 현재의 위치에서 남쪽으로 약 400여미터 지점에 있었던 당시 만안교의 모습입니다. 만안교는 안양천위에 놓여진 안양교(구도로)를 지나 안양예술공원 지하차도앞 교차로에서 서울방향으로 약 20미터 지점(현 영화아파트) 앞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번 국도확장사업으로 1980년 8월 약 200미터 북쪽의 안양시 석수동 260번지 석수교회앞 삼막천 위로 옮겨 다시 축조한 것이지요. 이때 다리의 방향도 동서로 길을 건너게 90도 돌려 놓아지고, 또 주변 난간이나, 또 바닥 석을 보면 다른 곳 에서 사용하던 가공된 돌이 깔려 있는 것이 보여 옮기는 과정에서 원형대로 옮기..

1969년 안양 화단극장에서의 안양여고 문화예술제

1969년 안양여고생들의 사진으로 하얀칼라에 검정색 치마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학교 강당이 없어 인근에 자리한 영화관인 화단극장(지금은 없어짐)에서 개최한 문화예술제에 참석해 1층과 2층 객석에 빼곡히 들어앉은 모습으로 2010년 안양여고 개교 50주년 행사에서 전시됐던 사진입니다. 1960-70년대 시흥군 관내 초중학교 가운데 강당이 있던 곳은 안양초교 단 한곳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따라서 전교생이 모이는 행사는 관내에 있는 극장을 빌려 행사를 가졌습니다. 화단극장은 해방 이후인 1963년 3월에 개관한 안양지역 최초의 극장으로 두번째 극장인 읍민관(1968년 안양극장으로 이름 바뀜. 현 2001아울렛사거리), 세번째 개관한 삼원극장(현 CGV자리)과 함께 1970년대 후반까지 3관 체제로 운영되며..

1983년, 안양종합운동장 기공식 장면

#안양 #옛사진/ 1983년 안양공설운동장(현 안양종합운동장)의 기공식 장면입니다. 시흥군 안양읍 당시 안양 석수동 충훈부(석수동) 현 럭키아파트 자리에 공설운동장이 있었는데 1986년 6월 30일 비산동에 새 운동장을 건립해 이전합니다. 최근 작고하신 지역원로 변원신 어르신의 말씀에 의하면 그 이전인 1960년대 공설운동장 마련을 처음 논의하는 과정에서 안양9동 새마을지역을 후보지로 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석수동의 안양공설운동장은 1970년대 시흥군과 안양읍 당시 다양한 행사들이 치러졌으며 1977년 안양 대홍수때는 피난민 수용지로 대규모 천막들이 설치되기도 합니다. 이후 안양읍이 안양시로 승격하면서 안양시 공설운동장 설립이 추진돼 현재의 비산동에 새로 공설운동장을 마련하게 된 것이지요. 안양 안양종..

1949년 종친회 안양 선산을 찾은 백범 김구선생

백범 김구 선생께서 해방 직후인 1946년(일부 기록에는 1949년) 4월 5일 청명일(한식)에 안양을 다녀가셨는데 당시 관양동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얘기를 몇년전 들었습니다. 며칠전 김구 선생의 모습이 담긴 그때의 귀중한 사진을 입수해 소개해 드립니다.이 사진은 안양 토박이로 관양동에 사는 제 후배 김재훈님의 집 족보책에 있는 사진입니다. 족보에는 단기 4282년(1949년)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종친회 일부 기록에는 1946년이라고 되어 있어 확인이 필요합니다. 김구 선생이 안양에 오신 이유는 안양 관양1동 329-1에 안동김씨 대종친회 문영공(휘 恂:충렬공 3째 아드님) 산소가 있는데 참배하러 오신 것이지요. 당시 전국 종친 100여 명이 모여 절사(節祀)를 올리고..

1970년대 중반 안양시내 중앙로

#안양 #도시 #골목/ 1970년대 중반 안양시내 중앙로의 모습. 현재의 2001아울렛 사거리에서 서울 방향으로 찍은 사진으로 좌측이 중앙시장, 우측이 인양 일번가입니다. 사진 좌측에 단층의 읍민관(안양극장)을 허물고 빌딩이 들어서고 거리를 오가는 택시들이 현대 '포니'로 불때 1970년대 중반 이후로 사료됩니다. 사진자료-안양시청

1960년대 1번국도만 있던 시절의 안양읍내

#옛도시 #안양 #마을 #동네 #골목 #1960년대 1960년대 중반 안양시 만안구(당시 안양읍)의 모습입니다. 북쪽인 석수동 방향에서 남쪽인 안양1동 시내쪽을 항해 찍은 항공사진으로 안양읍내의 북부동(안양2동) 지역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변원신 어르신의 구술에 의하면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에는 대부분 오끼농장이 있던 자리였다고 합니다. 농장의 흔적은 1960년대에도 만안초등학교 북쪽, 안양보육원(현 좋은집) 인근에서 볼 수 있었지요. 사진 아래쪽 큰 건물이 만안초등학교입니다. 그, 앞으로 흐르는 하천이 수리산에서 안양9동과 3동을 거쳐 안양역 옆으로 흘러 다시 박달동쪽 안양천으로 연결되던 수암천입니다. 현재의 수암천 물줄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지요. 사진은 겨울의 풍경으로 하얗게 언 하천의 모습..

1980년대 초 안양역과 한국제지 안양공장 주변

네이버에서 안양을 검색하면 나타나는 사진으로 1980년대 초 안양역과 역앞 로터리의 풍경입니다. 사진 중앙은 안양역, 사진 윗쪽은 서울 방향으로 도로변에 시커멓게 보이는 곳이 연탄공장, 안양역 우측에 보이는 곳은 1958년에 설립된 한국제지 안양공장의 모습이며, 안양역앞으로 서울-수원간 1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지요. 사진 중앙의 시계탑이 세워진 원형 로터리에서 좌측길(삼원극장 방향) 초입에는 당시 유명세를 날렸던 대영카바레 건물(현재 짓다만 철골조 빌딩)이 보이고 로터리 윗쪽으로 시외버스터미널과 그 위에 수암천이 흐르고 있고요. 사진 좌측 아랫쪽에는 안양1번가로 들어가는 골복길도 보입니다. 당시 안양역은 1호선 전철과 함께 완행열차와 무궁화, 통일호가 간혹 정차하던 아주 단촐한 역이었으나 2002년 2만..

가왕 조용필이 작곡한 안양 비산초교 교가

대한민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일컫는 가왕 조용필이 초등학교의 교가를 작곡했다? 사실이랍니다. 사진에 보는 것처럼 경기 안양시에 있는 비산초등학교의 교가를 작곡했지요. 추적을 해보니 이 학교는 1978년에 설립되었는데 교가가 없었답니다. 80년 무렵 마침 이 학교에 조용필씨의 조카(조수지)가 다녔는데 학교측의 부탁을 받고 1983년 교가를 작곡해 주었다는 군요. 학교측에 따르면 작사는 당시 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전정술 교장 선생님'이 글을 썼다고 합니다. 조용필씨는 조카 수지를 무척이나 아꼈는데 그 애정은 일본 최고의 뮤지션들이 참여해 만들 10집 Part I의 네번째 트랙의 '수지'(조수지 작곡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조용필 작곡으로 저작권을 조카에게 선물했을 정도라는군요

1968년 안양 화단극장 삼거리

#안양 #화단극장 #타임머신/ 위 사진은 주한미군병사 닐미샬로프가 1968년에 컬러슬라이드로 촬영한 안양 화단극장앞 삼거리(안양여고사거리에서 구도로쪽)의 풍경이다. 화단극장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안양 최초의 극장으로 사진 삼거리 에서 우마차가 나오는 좌측 길로 가면 있었고 오른쪽 길은 안양역 방향이다. 아이스케키 가게 뒤로는 경부선 철길이 지난다. 아래 사진은 45년이란 시간이 흘러 2013년 12월8일에 같은 자리에서 촬영한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