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677

[20221209]1939년 의왕 왕송저수지로 소풍 사진의 진위 여부

2022.12.09/ #아카이브 #옛사진 #왕송호수 #소풍 #sine1939/ 시흥군 왕송저수지(현 의왕시 왕송호수)로 소풍 온 기념사진. 이라 제목을 달았지만 이후 진위 여부를 확인한바 왕송호수가 아니라 수원 서호에서의 기념사진이다. 이 사진은 의왕시가 2017년 시민과 관내 학교, 단체등으로 부터 수집한 빛바랜 사진중 하나로 의왕시홈페이지-포토갤러리에 왕송호수 제방이라 게시된 자료다. 사진속 학생들이 입은 복식을 볼때 소학교 교복으로 1930-40년대 당시 시흥군에 있던 소학교로는 군포공립보통학교(1920년 개교)와 안양공립보통학교(1929년 4년제로 개교), 고천공립보통학교(1936년 4년재로 개교)가 있어 사진은 당시 고천공립보통학교 고학년들의 소풍 사진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그런데 사진에는 풀..

[20221208]1984년의 군포역(1938~1988까지 사용)

2022.12.08/ #도시기록 #아카이브 #옛사진 #군포역/ 군포역은 군포 구도심인 당동에 있는 역으로 대한제국 당시인 광무 5년(1905년1월 1일) 경부선 개통과 함께 문을 연 경부선의 철도역으로 1905년 군포장역으로 개업하였다가 1937년에 군포역으로 변경된 유서깊은 역이다. 군포역은 전철이 운행하기 전에는 여객열차도 정차했었지만 현재는 수도권 1호선 완행과 서울-천안 급행열차만 정차한다. 한때 여객열차가 정차하던 역이기에 역사 남쪽으로 과거에 사용하던 저상 승강장의 흔적이 남아있다. 사진은 역명이 군포장역에서 군포역으로 변경된 이후인 1938년 무렵에 지어진 역사 모습으로 삼각지붕 형태가 이색적이다. 이 역은 1974년 수도권 전철 운행이 시작된 이후에도 그대로 사용하다가 1988년에 현재의 ..

[지도]일제강점기 시흥군 약도(현 광명지역 교통기반 시설)

2022.12.08./ #옛지도 #아키이브 #기록 #시흥군 #근대 #시흥군약도(始興郡略圖)/ 일제강점기 경기도 시흥군의 도로·철도 등의 기반 시설을 표시한 약도. 재질은 한지이며, 도면 크기는 가로 79.7㎝, 세로 52.4㎝이다.전체적으로 도로와 철도 그리고 수계가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는 점이 주요 특징이다. 부군계(府郡界), 국도(國道), 면계(面界), 삼등 도로(三等道路), 도로, 하천, 철도, 정거장, 군청, 동리(洞里), 면사무소, 우편국, 경찰서, 학교조합,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 보통학교, 분감(分監), 금융조합, 도로상의 판로(阪路), 산악(山岳) 등이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 군현의 개정 전 면 경계는 점선으로, 면의 이름은 검은색으로 처리했고, 개정 후 면 경계는 붉은색 점선으..

[20221119]25만명 아기들이 태어난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신영순병원

25만명의 아기들이 태어난 신영순병원 안양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포도, 영화, 안양유원지 그리고 신병원이 있다. 1965년 5월, 경기도 안양시 안양1동(안양시 안양동 674-179)에서 신영순산부인과로 개업한 후 1979년 신영순병원과 1996년 12월 안양8동에 병원을 새로 신축해 이전하면서 신병원으로 이름이 바뀌고 2003년 폐업하며 문을 닫기까지 34년 동안 25만명이 넘는 아기들이 태어난 곳이다. "지역주민에 대한 양질의 의료보건서비스와 모자보건 및 가족계획사업의 선구자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은 물론 질 높은 의료기관으로서 국민보건향상과 복지사회 건설을 위해 인술 · 친절 · 봉사의 정신으로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문병원이 되고자한다" 박애·인화·노력은 이 병원의 운영이념인 동시에 환자..

[지도]1979년 안양의 주요시설 표기된 그림 약도

2022.11.12/ #기록 #지도 #안양약도 #아카이브 #자료/ 1979년 3월 14일자 경향신문 지령10000호특집 江山萬里(강산만리) 안양편에 삽입된 안양 약도. 당시 안양의 주요시설들이 표기돼 있다. 관악산, 삼막사, 불성사, 망월암 등 주요사찰과 유유산업, 현대양행(만도기계), 태평방직, 동일방직, 금성사(금성통신), 락희유지(럭키화학.하이타이) 등 굴뚝공장과 함께 시청(안양6동.현 만안구청), 관악전철역, 명학전철역, 신학대학(현 성결대학교) 등이 표기.

[20221112]1949년 안양 고려석면에 축구단이 있었다

2022.11.11/ #옛사진 #아카이브 #안양 #축구/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안양 축구의 역사를 보여주는 옛 사진 한장. 안양4동(현 2001아울렛&벽산아파트)에 자리했던 고려석면에 축구팀이 있었다. 안양의 원로 임정조 어르신이 입수해 전해주신 사진을 보면 단기 4292년(1949년) 6월5일로 한국전쟁 직전인 해에 열린 어느 대회인지 우승깃발을 들고 축하단체 사진을 찍은 고려석면 축구단의 모습이 담겨져있다. 사진 뒤로 굴뚝이 보이고 앞쪽에 집들이 보이는걸로 볼때 고려석면 안양공장 뒷쪽에 있던 장내동성당( 현 안양중앙상덩) 부근이 아닌가 싶다. 한편 기록을 보면 안양3동(현 댕리단길)에 자리했던 금성방직에 축구단이 1963년 1월 창단되어 1963년부터 1966년까지 4시즌 동안 실업축구에서 ..

[20221106]1975년 안양6동의 안양시청 청사(현 만안구청) 신축 공사

2022.11.06/ #기록 #옛사진 #기억 #만안구청/ 1975년 APRIL 안양시청(현만안구청) 공사 모습. 왼쪽으로부터 오인욱감리관(현 경원대학교 건축학과교수) 안양시감독관 건설회사감독 사진출처:오인욱 감리관(만문누리 최승원 위원 입수) 현재의 만안구청은 평촌신도시가 들어서기전 안양시청이 있던 곳으로 우리나라 근대건축가 중 한명인 나상기(1927∼1989)씨가 30대 젊은 시절에 설계한 건물이다. [만안구청 건물 자료-안양시사에서] 이 건물의 설계자는 나상기 건축가였다. 이 건축물의 대지는 남쪽은 도로가 반듯하게 나 있으나 북쪽의 도로가 상당히 급한 예각으로 꺾여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다. 건축가는 이러한 대지 조건을 충분히 활용하여 ㅅ자형으로 건물을 앉혔다. 서쪽의 정문으로부터 접근하여 주현관 으로..

[20221102]1970년대 안양 비산3동의 모습

2022.11/02/ #도시기록 #옛사진 #비산동 #1970년대/ 비산동 음식문화특화거리 벽화 사진에서 비산동의 옛지명들 ■수푸루지(林谷洞, 林川) 비산사거리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 이곳은 조선조 인조 때 좌의정을 역임한 심기원(沈器遠 ?∼1644)이 그의 부친인 심간(沈諫. 1560∼1624. 청풍군수 역임)이 죽자 이 마을 뒷산에 예장한 후 그의 후손인 청송 심씨가 묘하에 세거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그 뒤 수원 백씨, 고령 박씨, 곡부 박씨, 전주 이씨, 안동 김씨 등이 살기 시작하였다. 이 마을은 깊은 골짜기에 나무와 숲으로 둘러싸인 고을이라 하여 ‘수푸루지(林谷洞)’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또 마을 앞으로 큰 하천(안양천, 임곡천)이 흐른다 하여 ‘수풀내(林川)’라 부르기도 하였다. 수푸루지는 19..

[지도]기억을 더듬어 그린 어릴적 장내동골목 고샅길 그림지도

마을길과 집사이를 연결하는 앞마당길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할것 같은데 지난시절의 내가 살던곳은 지금의 기준으로보면 시골이었고 그 시골의 작은 장안 골목, 내가 기억속에서 찾고자 한 그길을 "고샅길"이라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것이다. 그 고샅길을 수없이 넘나들며 뛰어놀며 감정의 변화 쌓아갔을텐데, 언제부터인지 그 골목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었다. 자동차가 불편하지 안게 다닐 수있는 몇십메타짜리 대로를보며 차가 움직이는데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과 어느날 십충짜리 이상의 새로운 건물이 보이면 유심히 건물의 이름이며 용도를 알아보건만, 내 소중했더 기억들이 잊혀지고 없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을 쓸수가 없었다. 그많큼 바쁘게 살아왔을터이고 한편으로는정신을 놓고 살아왔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은 것에 대..

[지도]1940년경 시흥군 서이면 안양리(이용구선생 손그림)

1940년경 시흥군 서이면 안양리 중심가(현 안양 만안구 지역) 약도(자료 발굴; 건축사 최승원 선생님) 안양3동 양짓말에 사시던 이용구 선생께서 손으로 그린 그림지도로 안양포도 재배를 시작한 오끼이 집과 농장, 과거 수암천 물길, 안양역, 미륵당, 주재소와 신사, 변전소와 우체국, 우시장, 양조장 등의 위차가 기록돼 있다. 이 지도를 그린 이용구(李瑢求) 선생은 1926년 10월생으로 안양3동 양지마을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유년시절 동네 서당에서 천자문(千字文)과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배우고 9살 나던 1934년에 안양공립보통학교를 7회로 입학해서 졸업했다. 이후 경기공립상업학교를 다닌 선생은 졸업한 이듬해인 1945년 1월부터 40년간 근속으로 철도청에서 근무한 후 1984년 정년으로 공직생활을 마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