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677

[20230802]1967년 안양유원지 시절의 맘모스수영장

2023.08.02/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기억 #안양유원지 #맘모스수영장 #since1967/ 1933년 개장한 안양풀(1956년 안양유원지-2006년 안양예술공원)의 1967년 모습으로 경기도청 자료실에서 발견한 기록이다. 사진 쵤영 날자가 1967년 8월1일 기록돼 있으니 지금부터 56년전 풍경이다. 1933년 안양풀로 개장한 안양유원지는 삼성천 계곡을 막아 조성한 곳으로 초입에 위 아래 계곡을 막아 두개의 풀장이 있었는데 공짜풀로 아래쯕은 물 깊이가 2m가 넘는 성인용. 위쪽은 아이들용이었다. 1960년대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계곡물이 점점 오염되자 유료풀장인 인공수영장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대영풀장, 맘모스수영장, 만안각수영장, 안양관광호텔수영장 등이 있었다. 사진속 수영장은 맘모수영장으로..

[20230801]1967년 안양유원지 시절의 공짜풀 "바글바글"

2023.08.01/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기억 #안양유원지 #since1967/ 1933년 개장한 안양풀(1956년 안양유원지/2006년 안양예술공원) 의 1967년 모습으로 경기도청 자료실에서 발견한 기록이다. 사진 촬영 날자가 1967년 8월1일 기록돼 있으니 지금부터 56년전 오늘 풍경이다. 하지만 사진속 뒷쪽의 안양관광호텔(현 블루몬테) 건물이 완공된 형태인 점을 볼때 사진이 찍힌 시기는 1970년 또는 1971년으로 추정된다. 이는 경기도에서 자료 정리시 유원지 사진들을 한꺼번에 취합하면서 오기를 한것으로 보인다. 1933년 개장한 안양풀(1956년 6월19일 안양유원지로 개장식)은 삼성천 계곡을 막아 조성한 곳으로 초입에 위 아래 계곡을 막아 두개의 풀장이 있었는데 공짜풀로 아래쯕은 ..

[20230731]1977년 안양대홍수, 7월20일 안양시청 방문 박정희대통령

2023.07.30/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기억 #안양대홍수 #77수해/ 1977년 안양대홍수 당시 사진으로 경기도청 자료실에서 발견한 현장 기록물이다. 1977뇬 7월20일 안양시청(현 만안구청)을 두번째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 모습이다. 박통은 안양 대홍수 당시 비가 그치고 다음날인 7월10일 안양시를 처음 방문한데 이어 복구작업이 한창일 무렵인 7월20일 두번째로 안양시청을 방문했다. 당시 박통은 안양시청 2층 시장실(현 구청정실)에서 수해 복구 현황 보고를 받았다. 당시 사진에 기록된 수행원 배석자 인물을 보면 박통 뒷편 오른편에 차지철 경호실장의 모습이 보인다. 1977년 7월 8-9일 이툴간 안양에 내린 비는 무려 467.2mm로 기상청 창설이래 최대의 강우량을 기록하면서 이재민 6만명에..

[20230731]1977년 안양대홍수, 7월14일 시청 수해복구 발대식

2023.07.30/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기억 #안양대홍수 #77수해/ 1977년 안양대홍수 당시 사진으로 경기도청 자료실에서 발견한 현장 기록물이다 1977년 7월14일 안양시청(현 만안구청) 마당에서 경기도수해대책지휘본부 현판식과 함께 안양시와 시흥군 수해복구반 발대식이 열리는 모습이다. 1977년 7월 8-9일 이툴간 안양에 내린 비는 무려 467.2mm로 기상청 창설이래 최대의 강우량을 기록하면서 이재민 6만명에 사망, 실종자 288명이라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혀 안양 대홍수 또는 77년 대홍수라 블려지며 안양시의 첫번째 아픔으로 손꼽는 사건이다. 당시 안양시내 전역이 물에 짐기고, 안양천 모든 다리가 끊기고, 안양철교 교각이 주저앉아 경부선 철도가 수일간 운행하지 못했다.

[20230731]1977년 안양대홍수, 8월 1일 피난민 보호소 모습

2023.07.30/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기억 #안양대홍수 #77수해/ 1977년 안양대홍수 당시 사진으로 경기도청 자료실에서 발견한 현장 기록물이다. 1977년 7월 8-9일 수해 발생이후 25일이 지난 시점인 8월1일 촬영한 안양 석수동 공설운동장(현 럭키아파트)에 마련된 수재민 보호소의 모습으로 당시 100여동이 넘는 천막이 설치됐다. 이곳에는 수해 직후 학교 교실 등으로 임시 피난했던 수재민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며 새 보금자리에 정착할때 까지 구호를 받았다. 1977년 7월 8-9일 이툴간 안양에 내린 비는 무려 467.2mm로 기상청 창설이래 최대의 강우량을 기록하면서 이재민 6만명에 사망, 실종자 288명이라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혀 안양 대홍수 또는 77년 대홍수라 블려지며 안양시의 ..

[20230731]1977년 대홍수, 피해가 가장 컸던 안양3동 율목마을

2023.07.30/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기억 #안양대홍수 #77수해 #복구작업 #경기도/ 1977년 안양대홍수 당시 사진으로 경기도청 자료실에서 발견한 현장 기록물이다. 당시 복구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시작된 7월14일 무렵의 안양시내 모습이다. 사진속 현장은 수리산에서 거세게 몰아처 내려오는 수암천의 거센 물살과 율목마을 뒷산인 노적봉이 무너져 내리는 산사태로 주택 대부분이 흙더미에 파묻히고, 부서지거나 물에 떠내려가면서 당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보았던 안양3동 지역의 현장 모습이 담겨져 있는 마음 아픈 기록이다. 1977년 7월 8-9일 이툴간 안양에 내린 비는 무려 467.2mm로 기상청 창설이래 최대의 강우량을 기록하면서 이재민 6만명에 사망, 실종자 288명이라는 엄청난 인명..

[20230730]1977년 안양대홍수, 복구작업 11~13일 거리풍경

2023.07.30/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기억 #안양대홍수 #77수해 #복구작업 #경기도/ 1977년 안양대홍수 당시 복구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시작한 7월11일부터 13일의 안양시내 모습으로 당시 경기도청 홍보실에서 촬영한 현장 기록물이다. 사진에는 물이 들어찬 안양유원지입구 지하차도, 안양3동 수암천과 뚝이 무너져 휘어져버린 병목안철길, 비산동 임곡마을앞에 널린 빨래들, 비산동네의 소독차량, 교각이 주저앉은 1번국도 안양교 다리와 그 옆으로 교각이 침몰한 경부선 안양철교를 군부대에서 철골 교량을 설치해 임시 복구한 모습과 임시 피난 시설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1977년 7월 8-9일 이툴간 안양에 내린 비는 무려 467.2mm로 기상청 창설이래 최대의 강우량을 기록하면서..

[20230730]1977년 안양대홍수, 7월10일 안양시청 방문 박정희대통령

2023.07.30/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기억 #안양대홍수 #77수해 #박정희 #옛안양시청/ 1977년 안양대홍수 당시 사진으로 경기도청 자료실에서 발견한 현장 기록물이다. 안양 대홍수(1977. 7.8-9) 당시 비가 그치고 다음날인 7월10일 박정희 대통령이 안양시를 방문했다. 당시 박통은 안양시청(현만안구청)을 찾아 2층 시장실(현 구청장실)에서 수해 피해 보고를 받았다. 박통은 이후 복구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인 7월20일 한차례 더 안양시청을 찾아 브리핑을 받았다. 하지만 두차례의 안양 방문 자료중 피해 현장을 직접 방문하거나 수재민을 찾아 위로를 하는 기록은 찾울수 없었다. 혹 국가기록원에는 있지 않을까 싶다. 1977년 7월 8-9일 이툴간 안양에 내린 비는 무려 467.2mm..

[20230730]1977년 안양대홍수, 경수산업도로 복구 향토예비군

2023.07.30/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기억 #안양대홍수 #77수해/ 1977년 안양대홍수 당시 사진으로 경기도청 자료실에서 발견한 현장 기록물이다. 1977년 7월9일 안양 비산동 경수산업도로 현장 모습으로 낙석 및 토사를 향토예비군들이 치우고 있다. 당시 안양시내는 물에 잠겨 다리가 끊어지거니 교각이 주저앉으면서 도로(만안로, 중앙로) 철도 교통망이 완전히 마비됐다, 다행히 관악산(현 비봉산) 산자락을 깍아 도로를 낸 개통한지 얼마 안된 경수산업도로는 높은지역에 자리하고 향토예비군들이 긴급 복구를 하면서 안양 외곽 교통은 11일부터 정상 운행됐다. 1977년 7월 8-9일 이툴간 안양에 내린 비는 무려 467.2mm로 기상청 창설이래 최대의 강우량을 기록하면서 이재민 6만명에 사망, 실종자..

[20230730]1977년 안양대홍수, 7월 8-9일 피해 현장 모습

2023.07.30/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기억 #안양대홍수 #77수해/ 1977년 안양대홍수 당시 사진으로 경기도청 자료실에서 발견한 현장 기록물이다. 1977년 7월 8-9일 이툴간 안양에 내린 비는 무려 467.2mm로 기상청 창설이래 최대의 강우량을 기록하면서 이재민 6만명에 사망, 실종자 288명이라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혀 안양 대홍수 또는 77년 대홍수라 블려지며 안양시의 첫번째 아픔으로 손꼽는 사건이다. 당시 안양시내 전역이 물에 짐기고, 안양천 모든 다리가 끊기고, 안양철교 교각이 주저앉아 경부선 철도가 수일간 운행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