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 690

[추억의광야]신영순산부인과 지하에 있던 추억의 명다방

글쓴이:안양초고 34회(1953년생) 카페에서 추억의광야(2004.10.16) 나는 최초 음악을 좋아하게 된 동기가 비키라는 여가수의 White house를 듣고 부터다. 그 이후 All for the love of a girl 이라는 노래와 CCR의 Who stop the rain 이라는 노래와Have you ever seen the rain, Dont for get to remember로 이어지며 노래를 즐겨듣고 키타를 배우며 노래를 불렀었고, 나중에는 밤무대에서 통키타 가수로 약간 활동을 하기도 했었다. 우리가 성장할 때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들이 그렇게 많지를 않았었는데 당시 안양에서유일한 음악다방이 신영순 산부인과 지하의 명다방이 었었다. 그 다방에 나는 일찍부터 드나들었는데 당시 이명욱형..

[20220910]1960년대 명절에 최고 인기 선물은 설탕

2022.09.10/ #추석 #선물 #옛신문보기/ 1960년대 추석 선물로는 설탕이 인기 품목. 특히 설탕이 들은 케이스가 양철로 만든 쇠통이었는데 털실이나 반짓고리 등 생활속 물건들울 보관하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어 내용물보다 케이스가 더 인기였음.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곧 다가옵니다. 설과 추석 같은 명절에는 가족 및 가까운 사람들,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이들에게 선물을 보내곤 하죠. 하다못해 회사에서는 ‘스팸’이나 ‘올리브유’라도 받고요. 그런데 이런 선물들, 언제부터 시작됐으며, 예전에는 어떤 선물들을 주고받았을까요? 명절에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조선시대에는 설이면 그림을 담당하는 관청인 도화서에서 부적 역할을 하는 그림 세화(歲畵)를 임금..

[옛신문]최초의 원자력연구소 안양 박달리에 건설하려 했다.

2022.03.07/ #옛신문읽기 #아카이브 #기록 #역사 #응답하라1958 #안양 #원자력연구소/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연구소 안양 박달리(군용지)에 건설하려 했다. 옛 신문과 초대 문교부 원자력과장을 지냈던 윤세원 박사의 비망록 등 기록을 보면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은 원자폭탄에 관심을 갖고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로(연구용 원자로)를 서울에서 떨어진 진해, 안양 등지에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미국측의 반대로 결국 서울공대가 있던 공릉동에 지어졌다. “이승만 대통령도 원폭제조 시도” 2005년 05월2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서울대 김성준 연구원(과학사 및 과학철학협동과정)은 지난달 28일 서울대에서 열린 한국과학사학술대회에서 ‘1950년대말 두 미국인 과학자의 한국 원자력 보고서’를 발표했다. 김연구원은 ..

[최병렬]우리 이름 벌말역을 평촌역으로 왜 바꾸었나 추적(20220304)

2022.03.04/ #안양 #옛신문읽기 #기록 #기억 #아카이브 #평촌역 #벌말역/ 지하철 4호선 벌말역은 왜 평촌역으로 명칭이 바뀌었을까. 지하철4호선 평촌역.개통 당시에는 순 우리말을 딴 벌말역으로 명시돼 사용되다가 어떤 이유에서 한자 지명을 딴 평촌역으로 바뀌었을까. 당시 신문을 통해 속사정을 살펴본다. 평촌은 한역된 이름이고 순우리말 지명은 벌말이다. 평촌역은 개통을 앞두고 처음 역명을 지을 때 경남 진주 인근으로 경전선의 기존 철도역인 '평촌역'과의 중복을 피해 옛 지역인 '벌말역'으로 이름지었으나 촌스럽다는 + 신도시로 몸값을높이기 위한 지역 주민들의 요구와 안양시의회의 결정으로 1996년 '평촌역'이 됐다. 이에 대한 반대도 적지 않았다. 당시 안양시민신문 김우태기자는 "정겨운 우리 땅이름..

[옛신문]신륵사 소풍길 대참사 당한 안양 흥안초 어린이들(1963.10.24)

2022.03.03/ #옛신문읽기 #아카이브 #기록 #역사 #응답하라1963 #참사 #사고 #안양 #흥안초교 #안양남초 #남한강 #여주/ 안양의 큰 아픔중 하나로 1963년 여주 신륵사 소풍길에 남한강을 건너다 숨진 안양 흥안초교생들 이야기 안양과 여주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인연이 있다. 교명이 바뀌었지만 현재의 안양 남초등학교는 1960년대 흥안국민학교로 불리웠다. 특히 노년의 졸업생들에게 여주하면 슬픈 추억이 서려 있다. 신륵사로 소풍갔다가 남한강에서 익사한 선후배들이 있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5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63년 10월 23일 안양시 흥안초등학교 5·6학년 학생과 교사, 학부모 총 158명이 여주 신룩사로 수학여행을 왔다가 귀가하던 오후 2시 50분 무렵 여주읍 연양리에서..

[옛신문]안양, 시 승격 당시 땅값 평당 3-5만원 수준

2022.02.26/ #옛신문읽기 #아카이브 #기록 #역사 #응답하라1974 #안양 #군포 #부동산 #지역경제 안양 시승격 당시 1970년대 중반 땅값 평당 3-5만원 수준. 각광의 여울따라 ---전철역 주변 부동산 가이두 3 安養(안양)지구 조선일보 | 1974.03.12 기사(기획/연재) 안양지구 70% 오른 곳도, 거래한산 도심까지 30분대 지주,값조종-8월 겨냥 안양은 서울역에서 24km 떨어진 인구 12 만명의 위성도시로 서울과 수원의 중간지점. 관악산 입구의 유원지와 근교의 포도밭은 서울 시민의 당일 레저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60년대 후반부터 굵직한 공장들이 다. 투어 들어서 시외곽지대는 많은 공장이 들어섰고 작년 7월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시로 승격, 도시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6..

[옛신문] 1964년 지축을 흔든 모락산 탄약분해소 폭발사고

2022.02.25/ #아카이브 #기록 #역사 #옛신문읽기 #의왕 #대폭발 #응답하라1964/ 안양의 지축을 뒤흔든 폭발사고 세건이 있다. 그중 옛 신문에서 찾아낸 기록은 1964년 3월 5일 오후 3시경 모락산 자락 안양교도소 인근에 위치한 안양탄약분해소 폭발사건으로 당시 중앙일간지 신문 1면 톱에 실렸던 엄청난 사건이었다. 첫번째는 일제시대 말기인 1941년 천혜의 요새인 박달동 수리산 깊은 골짜기에 일제가 육군성 소속 탄약 저장시설(일명 군용지)을 설치하면서 안양과 폭발물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일제의 패망으로 탄약저장 시설과 탄약을 인수한 미군은 일본군 탄약을 안산 넘어가는 본드레미 고개 아래 굴을 파서 그 안에서 폭발시켜 폐기처리했다. 당시의 목격자 중의 한 분인 고 변원신씨는 주민대피령이 내린 ..

[옛신문]안양 명학시장 분양 광고(1979~1980 일간지)

2022.02.23/ #신문광고 #아카이브 #안양 #동네 #골목 #상가 #안양6동 #명학시장 #재개발/ 비그라운드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윤경숙 소장이 페북에 올린 안양6동 명학시장에 대한 글과 사진을 보고 찾아본 옛 신문. 1979~1980년대 분양 당시 조선일보,동아일보, 경향신문 등에 하단 전면 광고까지 냈었네요. 한두번도 아닌 무려 11차례 가까이.. 안양6동 434-3번지에 자리한 명학상가(면적 2,359.7㎡)는 1977년에 공사를 시작해 1978년 5월 23일 소매시장으로 문을 연 4층 건물(지하1층부터 지상2층까지는 상가이고 3층과 4층은 주거공간인 주상복합건물의 초창기 형태이지요)로 3층에는 공동 마당이 있어 주거공간을 쾌적하고 여유있게 합니다. 건축한지 44년이나 되는 현재 건물은 노후화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