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이 체결된지 5일 만인 1905년 11월 22일 안양역 인근 석수동 서리재고개에서 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던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한 청년이 있다. 당시 시흥군 안양리에 거주하던 원태우(元泰祐, 1882~1951)라는 23세의 청년이 열차에 탄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돌멩이를 던져 부상을 입힌 것이다. 이로 인해 일본 헌병대에 붙잡힌 원태우는 2개월간의 감금과 태형을 받아 평생 불우의 여생을 보내야 했지만, 한민족의 분노를 온몸으로 대변한 의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기록, 안양시지 자료, 안양시 관내 각 조형물의 안내문 등 공식 기록을 통해 이름, 사망일자, 이미지 등 가짜 정보가 안내되고 지식백과 등 온라인상에서도 원태우 대신 ‘원태근’이란 잘못된 이름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