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달동의 박달은 ‘밝다’, ‘밝은 산’ 또는 ‘밝은 땅’의 뜻으로 보기도 한다. 또 배우리 선생의 ‘우리땅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에 따르면 ‘높은 산’의 뜻도 가진다. 박달1동은 조선시대에는 금천현 현내면 박달리였다. 정조 때 만안교가 가설된 후 시흥현 현내면 박달리로 개청됐다. 후에 1973년 7월 안양시 박달동이 됐다. 박달1동사무소 일대는 ‘먹해이 들’이라고 불렀는데 박토여서 농사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평양육군병기창 안양분창 건설로 마을이 폐동됐다. 박달2동은 자연취락지역으로 수리산 서쪽 끝 산에서 줄기를 따라 크고 작은 산으로 이뤄졌다. 햇골, 선녀골, 곤두레미 고개와 남쪽으로 마을이 형성됐다. 이밖에도 능골, 동수암, 막상골, 미름물, 범고개, 붓골, 삼봉마을 등의 부락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