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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5]안양기독보육원장 오긍선박사 길러낸 존 A. 알렉산더

조선의 醫師 오긍선박사 발굴하고 길러낸 미국인  존 A.  알렉산더[출처]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1409100057 월간조선: 양국주 서빙더네이션스 대표 : [역사발굴] 일제강점기 조선땅에 온 벽안의 선각자들 ⊙ 프린스턴·컬럼비아의대 나온 大부호의 아들… 1902년 來韓했으나 父親喪으로 두 달 만에 귀국⊙ 조선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과 지속 교제… 순천에 알렉산더 병원 등 교회당과 병원 건립⊙ 배재학당 졸업한 청년 吳兢善을 켄터키 루이빌로 데려가 朝鮮 최고의 의사로 키워⊙ 1929년 우드포드에서 향년 53세로 별세… 吳兢善 키우는 등 선교사 역할 톡톡히 해내 1902년 늦가을 11월, 그는 여느 선교사처럼 조선에 ..

[20250215]시흥군청 영등포에 있던 1911년 경기도 약도

2025.02.15/ #아카이브 #옛지도 #기록 #시흥군 #since1911/ 시흥군청이 영둥포에 있던 1911년 발행된 경기도 약도 조선시대 경기 시흥동(현 금천구)에 있던 시흥군청 소재지가 일제강점기인 1910년 영등포로 이전한다. 이 지도는 명치44년(1911년) 2월에 발행된 옛 경기도 약도로 군청소재지와 경계, 경부선과 경인선 철도, 도로, 한강 등이 표기돼 있다. 자료를 보면 시흥군청은 1911년부터 1949년까지 지금의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경인국도 언덕배기에 있었다. 일제 때에는 현 영등포구의 절반과 대림동 일대까지 시흥군에 속했을 정도였다고 한다.행정구역상 아주 거대했던 시흥군의 역사를 보면 1910년 시흥동에 있던 시흥군청(始興郡廳)이 지금은 영등포동이 된 영등포리(永登浦里)로 이전한다..

[20250214]1971년 남한관광안내지도에 표기된 <안양포도>

20215.02.14/ #아카이브 #옛지도 #기록 #안양 #관광안내 #포도/ 옛 지도를 조사하다 1971년 발행된 남한관광안내지도에서 안양의 관광상품으로 표기된  포도원을 발견하다.  발행년도 : 1971년 10월 1일제작소 : 영진문화사(제도인 김원모)크기 : 54*781971년 1월 영진문화사에서 발행한 남한지역 관광안내지도로 당시 각 도시의 관광지와 특산품, 철도와 도로망이 표기돼 있다. 확대한 지도에는 지금은없어진 협궤 전동차가 다니던 수인선,수여선 역이 표시되고 특히 안양에는 포도를 그려놓고 포도원이라 표기해 안양을 대표하는 주요 관광 상품이었음을 알수 있다.안양 포도는 부천의 복숭아,수원의 딸기와 함께 경기 3미로 불리우며 교과서에도 살렸을만큼 아름을 날렸다. 1967년 9월 15일 경기도 ..

[20250213]1919년 의왕 독립만세운동(매일신보 4월 5일자)

1919년 3월 31일 밤 의왕면사무소 앞에서 주민 800여 명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이는 당시 매일신보 4월5일자 신문기사에 경기도지역 만세운동 소식과 함께 실렸다. [박철하]일제강점기 시대의 의왕의왕문화원 부설 의왕지역문화연구소장 1910년 강제로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후 우리 민족은 조선총독부의 강압적인 무단통치 아래 놓이게 되었다. 조선총독은 입법권과 사법권, 행정권, 군사권을 모두 장악하고 헌병경찰을 동원해 우리 민족을 억압하고 토지를 비롯한 경제수탈을 자행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는 문화통치를 내세웠지만 이는 민족분열정책에 불과했다. 일제는 중국 침략을 본격화하면서 민족문화를 말살하고 인적․물적 자원을 강제 수탈했어요. 그러나 우리 민족은 이에 굴하지 않고 반일 독립운동을 전..

[20250213]1971년 새서울지도에 표기된 안양 <범계방죽>

2025.02.13/ #옛지도 #아카이브 #역사 #기록 #연구 #범계방죽 #방축말/ 옛 지도를 조사하다 1971년 발행 새서울약도에 표기된 범계방죽을 발견하다. 과거 벌말이라 불리우며 논 농사가 한창이었던 1970년대 평촌에는 대규모 저수지가 있었는데 범계방죽이라 부르던 곳이다.안양 호계동에 자리했으며 물이 밀려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쌓은 뚝이면서 평촌벌에 농사 짓는 물을 대주었던 범계방죽은 현재의 안양시 호계동 방축사거리 우측의 귀인로와 무궁화효성한양아파트 일부, 목련동아경남아파트 일부 지역과 귀인초교 주변에 있었다.옛 기록들을 살펴보니 범계방죽은 안말과 샛터말 사이에 있으며 조선시대에 물의 범람을 막기위해 둑을 쌓았는데 그 주변에 마을을 방축말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 방죽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

[20250213]의왕 하우고개 가던길 1980년대 청계삼거리

2025.02.12/ #아카이브 #엣사진 #기록 #의왕/ 안양 인덕원사거리에서 성남가는 길(현 안양판교로)의 1980년대 청계삼거리 풍경이다. 사진은 의왕문화원에 발굴한 기록으로 삼거리 정면의 2차선 도로는 하우현성당이 있는 원터를 지나고 청계공동묘지가 있는 하우고개를 넘어 성남가는 길이고 우측은 청계저수지(현 백운호수)로 가는 길이다. 현재 안양 판교로라 통칭되는 이 도로는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인덕원사거리에서 경기도 의왕시를 경유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백현1교차로까지를 잇는 길이 12.3km의 도로로 57번 지방도에 포함된다. 원래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길은 안양공동묘지 한복판을 통과해서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넘어가던 가로수가 울창한 2차로 도로였는데 계속되는 ..

[20250212]1970년대 다운타운 태평방직과 구시장 이야기

2025.02.12./ #안양 #도시 #마을 #동네 #골목 #옛사진 #안양1동 #태평방직 #구시장 #수푸루지 #임곡교 #안양천 #시대동/ 안양3동의 금성방직과 함께 1950-70년대 굴뚝공장 산업단지 안양을 상징하던 안양1동의 태평방직과 주변 풍경으로 국가기록원 자료에서 찾아낸 1970년대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사진 중앙의 거대한 공장이 안양3동의 금성방직과 함께 시흥군 지역 경제를 살리던 태평방직이다. 사진 좌측위로는 안양천이 보이고 사진 우측 아래로는 경부선철길과 1번국도가 보인다. 사진 좌측 아래 주택들이 보이는 동네가 당시 시대동(안양1동)과 안양시장(구시장)으로 1950-60년대 안양의 다운타운이었다. 사진 가은데 위 안양천에 다리 교각이 보이는데 비산대교가 개통되기 전으로 안양시내에서 비산동을..

[20250211]안양천 쪽다리와 삼영농장과 기독보육원

2024/02.11/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기억 #안양 #since1960/ 안양박물관에서 VTR로 방영하던 안양의 옛모습 영상중 한컷으로 1960년대 안양2동으로 망해암과 안양풀 가기위해 안양천을 건너던 지름길인 나무다리와 뒤로는 별장같은 건물이 자리한 삼영농장(현 대우아파트)이 엿보인다. 사진속 당시는 양명고와 양명여고가 자리하기 이전으로 나무다리를 건너 좌측은 안양기독보육원(현 좋은집), 우측으로는 삼영농장이 있었으며 쪽다리를 건너 보육원과 농장 가운데 사잇길을 지나 쭉 가면 망해암 올라가는 산길이다. 당시는 망해암 뒷산(현 비봉산)을 깍아 개설한 경수산업도로가 생기기 전이다. 1970년대 경수산업도로(현 1번국도)가 놓여지면서 산 끝자락에 있던 삼영농장과 안양기독보육원 땅이 많이 훼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