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안양천으로 부르고, 그것이 공식 명칭이 되었지만 사실 안양천의 본래 이름은 대천(大川)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천현>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대천(大川)이 금천현의 읍치(邑治)에서 서쪽으로 5리(里)에 있다. 과천현(果川縣)의 관악(冠岳) 청계(淸溪) 등 여러 산에서 발원하여 나와 북쪽으로 흘러 양천현(陽川縣)의 철곶포(鐵串浦)로 들어간다.
읍치(邑治)는 고을의 수령이 정사를 펼치는 관아(官衙)가 있는 곳을 일컫는 말로
금천현의 관아는 지금의 금천구 시흥동에 있었다.
그리고 양천현에 있다는 철곶포는 양평교와 목동교 사이 양정고등학교 부근에 있던 포구(浦口)였다.
대천(大川)은 아마도 말내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한 것일 것이다.
말매미 말벌 말잠자리 등에서 보듯 말이 큰 것을 지칭할 때 쓰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보통 안양천을 대천이라 불렀지만 안양천이 대천으로만 지칭되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이름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호계(虎溪)이다.
조선 현종(顯宗) 때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 편찬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금천현>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호계(虎溪)는 민간에서는 대천(大川)이라 칭하는데 금천현의 읍치에서 서쪽으로 4리(里)에 있다.
과천현(果川縣)의 관악(冠岳) 청계(淸溪) 등 여러 산에서 발원하여 나와 북쪽으로 흘러 양천현(陽川縣)의 철곶포(鐵串浦)가 되어 한강(漢江)으로 들어간다.
안양천이 호계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된 것은 검지산의 또 다른 이름인 호암산(虎巖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검지산은 금천현 읍치(邑治)에서 동쪽으로 5리에 위치한 산이다. 검지산이 호암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검지산에 범과 같이 생긴 바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천현>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호암산(虎巖山)이 금천현의 읍치에서 동쪽으로 5리(里)에 있다. 범과 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 그러한 까닭으로 이름이 되었다.
호암산에서 호(虎)를 취하여 호계(虎溪)라 불렀을 것이다. 옛날 호계리(虎溪里)라는 마을도 있었다.
안양천의 또 다른 이름으로 검암천(黔巖川)이 있다.
<<여지도서>> <금천현>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검암천(黔巖川)이 금천현의 읍치에서 남쪽으로 3리(里)에 있다.
관악(冠岳) 청계(淸溪) 두 산에서 발원하여 나와 여러 내가 합쳐 대천(大川)이 된다. 수 십리를 관개(灌漑)하는데 북쪽 철곶포(鐵串浦)로 흘러간다.
아마 검암천의 검암(黔巖)은 호암산의 호암(虎巖)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었을 것이요.
어쨌거나 또 김정호(金正浩, ?~1864)가 1864년에 저술한 <<대동지지(大東地志)>> <시흥(始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대천(大川)은 검암천(黔岩川)이라고도 한다.
수원(水原) 광교산(光敎山)과 과천(果川) 청계산(淸溪山)에서 발원하여 합쳐지는데 서쪽으로 흘러 군포천(軍?川) 호계(虎溪) 안양천(安養川)이 되고 금천현 읍치를 돌아 서남쪽으로 꺾여서 북쪽으로 흘러 현(縣)의 서회리(西回里)를 지나 북쪽으로 15리에 이르러 기탄(?灘)이 되고 철곶포(鐵串浦)가 되어 양화도(楊花渡) 아래로 들어간다.
여기서 서회리는 지금은 경기도 광명시(光明市) 소하동(所下洞)이 된 소하리(所下里)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소하리는 당시 시흥현 서면(西面)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기탄은 구로동 부근의 안양천을 일컫던 말이다. 그곳에 옛날 기탄교가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대동지지>>가 안양천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타나는 기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천의 일부 구간을 지칭하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안양천이란 이름이 어떤 연유로 대천이라는 이름을 삼켜버리고 공식이름이 되었는지 불가사의한 일이다. 안양천의 또 다른 이름으로 누동천(樓洞川)도 있었다.
<<여지도서>> <금천현>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누동천(樓洞川)이 금천현(衿川縣) 읍치(邑治) 남쪽 박달리(博達里)에 있다.
곱고 깨끗한 모래와 흰 돌이 수십 리에 걸쳐 평평하게 펼쳐 있는데 아래로 양화진(楊花津)에 닿아 있다. 중국사신 주지번이 석주(石洲) 권필(權?)과 더불어 양화도를 유람할 때 누동천의 물고기를 잡아서 먹고 말하기를 맛이 동정(洞庭)의 물고기의 맛과 흡사하다고 하였다. 대개 내의 형세가 평평하고 험한 여울과 큰 바위가 없기 때문에 물고기 맛이 동정호(洞庭湖)의 물고기와 흡사한 것이다.
또 맑은내 오목내 갈천이라는 이름도 있다.
배우리(1938~ )씨가 1994년에 출간한『우리 땅이름의 뿌리를 찾아서 1』을 보면 오목내(오목천(五木川))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안양천(安養川)으로 불리고 있는 내(천(川))이다. 안양시에서부터 흘러와 영등포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간다. 내가 오목하다고 해서 ‘오목내’인데 다른 이름으로는 ‘갈천(葛川)’이라고도 하고 내의 상류쪽에선 ‘맑은내’로도 불리었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있는 ‘오목교(梧木橋)’는 이 내에 놓인 다리로, ‘오목내’의 ‘오목’을 이름에 넣었다.
이런 이름들이 안양천을 일컫던 또 다른 이름들인데
생각해 보면 이들 이름을 두 종류로나눠야 할 것 같다. 내 천체를 일컫던 이름과 내의 일부 구간을 일컫던 이름으로 말이다. 대천 호계 검암천은 전체를 일컫던 이름이고,
군포천 안양천 누동천 오목내 맑은내 갈천 기탄 등은 일부 구간을 일컫던 이름이었을 것이다.
영등포문화원에서 실시란 <영등포의 역사와 지명이야기>에서 발췌한 자료다
<영등포의 역사와 지명이야기>는 영등포와 옛날 영등포가 속해 있던 고을인 금천현의 역사와 지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강좌로 2017년 창원대학교 민긍기 교수가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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