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평촌 지역의 자연취락 마을중 가장 늦게 생긴 마을이었던 신말(新村. 현재의 안양 동안구 신촌동)에는 천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과거 한양-남태령고개-인덕원-지지대고개-화성 길이었던 삼남대로가 지나는 귀인마을(귀인동) 남쪽에 위치한 신말(新村) 에는 풍양 조씨가 처음으로 살기 시작했으며 이 마을 서북쪽인 호계동과 경계 지점에는 안양남국교의 전신인 흥안국교가 한국전쟁 직전에 있었다가 1958년 경에 갈미로 이전했다. 신말은 평촌신도시 개발구역에 편입되어 1990년에 폐동되었고 당시 동네 호수는 30여호였다.
평촌들녁이 제1기 신도시 건설로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바뀌었다. 현재의 평촌 학원가. 안양 평촌대로 서쪽 학원가 뒷쪽(안양시 동안구 신촌동 1067-6) 주택가 자그마한 언덕위에는 수령 2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과거 신말 주민들이 어렸을적 보았고, 기억하고 있는 천년이 넘는 느티나무의 새끼 느티나무다. 평촌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이 나무를 보전하기 위해 경관녹지 1개소(소공원)를 만드는 도시계획을 별도 수립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느티나무가 우뚝 서 있는 곳은 단독주택단지의 자그마한 동산인데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소공원이다. 공원입구 나무팻말에 느티나무 공원이라 표기돼 있다.
"아 이 나무가 살아있었네"
어릴적 이 동네(신말)에 살면서 느티나무에 그네를 매달아 타기도 했다는 안양 흥안초 출신의 이근재(1957년생)씨는 지난 2022년 40여년만에 현장에 와서 새끼 느티나무를 보고는 감격해 하면서 천년이 넘는 어미 새끼나무 얘기를 꺼냈었다.
그러다가 인터넷 웹서핑중 네이버 블로그에서 천년이 넘는 느티나무에 대한 구체적인 글을 보게됐다.
"임진왜란,병자호란,일제시대,6.25전쟁등 숱한 위기에서도 1000년이상을 버티던 우리동네 느티나무가 1960년대 어느날 동네어르신 생신날 불에 타 껍데기만 앙상하게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안양시내의 깡패들이 잔칫날 상빨리 안 챙겨준다고 홧김으로 죄없는 느티나무에 불질러 태워버린겁니다.
워낙 오래된 고목이라 가운데가 텅비어있어 불이 삽시간에 번져 미처 불을 끌 시간도 없었답니다.
안양엔 그나마 소방차가 없어서 수원에서 소방차가 왔지만 도착했을땐 이미 다 타버리고 난 뒤였답니다.
어찌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났는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어릴적 불탄 느티나무안에서 친구들 여러명이서 놀던 기억이 납니다.
나무혹에도 두어명이 앉을 정도로 엄청 큰 나무였습니다.
불탄 동그란 나무기둥높이만 약10미터는 족히 된듯합니다.
불탄나무 바로 옆에는 아직도 살아있는 새끼느티나무가 어른한아름이 훨씬넘는 굵기로 자라고 있습니다.
불타 없어진 어미나무의 슬픔을 뒤로하고요.
지금은 흔적조차 없는 불탄 느티나무를 사진으로라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만약에 그 느티나무가 살아 있었더라면 아마 최소한 안양의 명물,아니 경기도의 명물은 되었을겁니다.
한사람의 순간적 충동으로 숭례문같은 국보1호도 불타 없어지는 세상,1000년의 고목이 불타없어지는 세상..."
안양 토박이로 흥안초(현 안양남초)를 졸업한 조한묵씨가 기억하는 안양 신말마을(현 평촌 신촌동) 느티나무 이야기로 네이버 블로그 <이글의 초록바다>(https://blog.naver.com/hanmook111/60062156246) 에 올려져 있는 글이다.
조한묵씨는 또 다른글에서 느티나무에 얽힌 추억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보통 마을이 있다면 반드시 등장하는게 큰 느티나무일 것이다.
당연히 우리 신말 동네에도 아주 큰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엄청 큰 느티나무는 불타 없어지고 사진의 나무가 새끼느티나무인데 새끼라는 말이 안어울정도로 큰 편이다.
약 30년전쯤 동네친구들과 함께 이 느티나무에 올라가서 자주 놀고 여름에는 가지에 걸쳐서 낮잠도 자곤했다.
여름방학때는 동네형들과 시원한 느티나무 아래에서 산들바람을 맞으며 장기와 바둑을 두며 신선놀음도 했는데..
지금은 주변이 개발되어 홀로 동네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
그래도 이 느티나무가 버티고 있기에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옛동네의 위치를 가름해본다.
옛날보다 지금은 더 굵어졌지만 그전의 자연환경에 비해 열악해서 나무가 힘이 없어 보여 안타깝기만하다.
지금은 몸이 둔해져서 올라갈수 없지만 마음만은 느티나무의 가지 사이를 뛰어다닌다.
느티나무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다오."
현재 나무는 새끼 느티나무로 어미 느티나무는 천년이 넘었는데 어른 대여섯명이 감싸안아야 손이 닿을 정도로 컸다는데 1960년대 초 불이나 타버렸다고 한다. 다행히 옆에 새끼 느티나무는 불아 타지 않아 현재까지 잘 자라고 있는것이다. 그야말로 평촌의 보물이라 할수 있다. 안양시사 등 어느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 전설같은 이야기다.
아래 사진들은 [조한묵]님이 앨범에 간직해왔던 사진들이다. 조씨네 집이 카메라가 귀했던 시절 신말에서 가장 부잣집으로 카메라가 있었기에 귀중한 사진을 기록으로 남길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신말(新村) <신촌동>
안양 평촌 지역의 자연취락 마을중 가장 늦게 생긴 마을로, 풍양 조씨가 처음으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마을 서북쪽인 호계동과 경계지점에는 안양남국교의 전신인 흥안국교가 한국전쟁 직전에 있었다가 1958년 경에 갈미로 이전했다. 귀인 남쪽에 위치한 신말은 1990년 명지대박물관에 의해 4기의 지석묘가 발굴조사 되었다. 평촌신도시 개발구역에 편입되어 1990년에 폐동되었고 호수는 30여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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