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20240110]안양 부림말과 부림교회의 1970년대 모습

안양똑딱이 2024. 1. 10. 16:52

 

2024.01.10/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안양 #부림말교회/ 안양 부림말과 부림교회. 안양 현 관양동의 중심격인 부림말과 부림교회의 모습이 담겨있는 옛사진으로 안양시청 홍보실에 근무했던 이정범 선생이  1978년 무렵 찍은 사진이다.
부림말에 자리했던 안양 부림교회(현 동은교회)는 1910년 설립된 안양최초의 장로교회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와 당회록에 따르면 1910년 4월 15일 미국산교사 피득(Alex A. Pieters) 선교사가 문학선 씨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설립한 것으로 기록돼 순회선교를 하던 선교사에게 전도를 받은 성도의 가정교회로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1911. 10. 25 문학선씨 소유로 초가1동을 교회당으로 사용
1912. 03. 25 미국선교사 곽안련(Charls Allen Clark)목사, 박태선 조사 내방
문학선씨 부인 음진실, 문성범 최초 학습받음
1913. 01. 14 문경삼, 차군선, 문성범 최초 서리집사로 세움
1913년 10월 12일 기록된 4회 당회록을 보면, "교회당을 세우기로 결정하고 빈궁한 중에도 열심히 모금하여 장래에 교회당 세우는 일에 쓰도록" 결의하는 등 가난한 가운데서도 헌신의 결단을 보였다.
교회에서 운영하던 성경구락부는 지역에서 유명한 기독사학의 모체가 되었다.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장학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며 지역 인재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관양1동과 부림말 (富林洞)

“관양1동은 동으로 의왕시 포일동 과천시 갈현동, 서로 비산3동, 남으로 관양2동, 부림동, 북으로 과천시 갈현동이 각각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취락으로 가운데말(中村), 골안(谷內), 오촌말(吳村洞), 부림말(富林洞) 동편(東便)과 망령골(亡靈谷) 샛말(間村) 뺌말(秀村) 말무덤이(馬賁洞) 등 8개 자연마을이 있었다. 도시와 농촌이 병존하던 관양1동은 조선시대에는 관아가 있는 과천으로 가는 길목으로 고개 셋을 넘어야 갈 수 있다고 하여 삼현원정리라 부르기도 하였던 곳이다. 시제 실시 후 관악로의 개설과 안양6지구 구획정리로 현대아파트를 비롯하여 다세대, 연립주택 등이 들어서면서 인구유입이 급증한 신흥도시 주거지역이긴하나 개발 제한 구역이 많은 도농복합지역으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거주했다.

관양1동의 유래는 1948년 지금에 관양동 1407에 관양초등학교를 건립하면서 관악산 아래 양지 바른 곳에 자리잡은 학교라 하여 관악산의 관(冠)자와 양지의 양(陽)자를 취해 관양초등학교라 하였는데 이 학교 校名으로 인해 1973년 시제가 실시되면서 이 일대를 관양동(冠陽洞)으로 명명했다.”

현재 대규모 아파트촌이된 동퍈마을 초입에는 간촌.동편.부림말 옛터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관악산(冠岳山) 아래 양지(陽地) 바른 곳에 둘러싸인 이곳은 본래 간촌(오촌말, 샛말, 삼곡제, 소능골), 동편(윗말, 아랫말, 망령골), 부림말 등 3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각 마을 주민 모두가 한 가족처럼 오랜 세월 오순도순 살아왔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은 고향땅이 2005년 6월 국책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추진하는 관양택지개발지구로지정 고시됨에 따라 이곳에 거주하던 전 주민이 타 지역으로 이주하게되어 실의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고향의 흙내음, 풀내음, 바람소리를 벗하여 옛 추억을 회상하고 자손들에게도 성실하고평화롭게 살아온 조상의 얼을 느낄 수 있는 교육이 되길 바란다."  2012년 5월 관양동 실향민 일동

 

관양택지개발지구사업을 통해 댜규모 아파트촌이 된  전체를 동편마을이라 칭하지만  사실. 그안에 간촌, 부림말도 포함돼 있는것이다. 인덕원 옆에 위치한 부림말은 가운데말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남평 문씨와 밀양 박씨가 배판했다. 이곳은 예로부터 산림이 울창했을 뿐만 아니라, 인근의 다른 마을보다 부자가 많이 산다고하여 부림말 (富林洞)이라 칭한다. 부림말은 비산동- 인덕원간의 도로확장후 대도, 한미, 골드, 남광, 삼광, 원주 등의 연립 및 아파트가 건립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7월 1일에 관양우체국 옆에 있던 박우물과 신 장로우물, 부림우물(윗우물)에서 마을의 안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정제(井祭)를 지내다가, 우물 주변에 민가가 건립되면서 샘물이 끊겨 폐정되자, 1988년 부터 제를 지내지 않는다.(참고:안양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