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20240104]1968년 안양 석수동 미 83병기대대 탄약보급창

안양똑딱이 2024. 1. 4. 09:01

서울에서 남서쪽으로 20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안양 리(Anyang-Ri) 탄약보급창(ASD)에서 한국육군 제575탄약중대와 미육군 제58병기중대가 2.5톤 트럭 뒤쪽을 유개화차에 연결하여 군수품을 내리는 모습.

 

2024.01.04/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역사 #미83병기대대 #안양 #석수동 #since1968/ 안양 석수동에 있던 미 83병기대대대에 있던 탄약보급창(ASD)의 모습이다.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에 소장된 기록(문서번호 CC51419)으로 기록을 생산한 이는  SP4 Bryan K. Grigsby로 1968.09.18 ~ 1968.09.24에 촬영했다.

기록을 보면 포탄과 지뢰를 수리하고 한국육군 제575탄약중대와 미육군 제58병기중대가 군수품을 운송했다고 적혀있다.

한편 안양 석수동 자리했언미 83병기대대는 특수탄약을 관리하던 부대로 박달동 수리산 자락의 군용지라 불리우던 탄약 벙커에 있던 전술 핵탄두와 로켓을 관리.운용했다. 석수동에 있던 부대는 당시 영내에는 PX는 물론 영화관, 소방대까지 있을 정도로 컸다. 당시 부대 주변 동네에는 양복점, 양화점, 잡화점, 병원, 여관(Hotel) , 고깃집, 식당 등이 있었고 미군을 상대로 하숙까지 치면서 당시 석수동은 안양시내 변두리에 있었지만 상권과 생활에 있어서는 오히려 더 풍족했던 동네였다.
만안초등학교 다니던 열한살 무렵의 어렷을적 기억으로는 당시 비포장도로였던 안양-안산간 도로에서 핵폭탄을 쏠수 있는 는 허큘리스미사일을 싣고 가던 대형트레일러 트럭을 목격했었다. 간혹 트레일러와 호위 차량이 지나가면서 사탕과 쵸콜렛 등을 아이들에게 던져주기도 했다. 어느날 학교갔다 귀가하는 길에 미군이 트럭에서 던져주는 노란 과일을 받았는데 껍질에 영어로 'Made in USA'라 적혀 있었다. 당시 그것은 국내에서는 볼 수 없던 것이었는데 미깡(귤감)이었음은 뒤늦게 알았다.
석수동 미둔부대는 1970년대 중반쯤 철수하고 주공아파트가 들어섰다가 현재 그 자리에는 안양 석수대림아파트 단지가 자리했다. 1번국도(현 만안로)에서 부대가는 길에는 경부선 철길에 땡댕댕 건널목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현재의 대림아파트와 경남아너스빌 아파트 단지 사이에는 옛 동네와 골목길의 흔적이 일부 남아있다.

한편 1968-69년 당시 부대 전령으로 근무했던 닐 미샬로프 (Neil Mishalov)가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 주변 석수동 사람들과 안양의 풍물을 비롯 한국사회의 생활상을 당시로서는 매우 귀했던 컬러슬라이드와 흑백필림에 담있는데 이 기록이 시공을 초월하여 아주 귀중한 역사 자료가되고 있다. 그는 한국을 떠난지 34년만인 지난 2003년 10월에 안양시 초청으로 한국을 다시 찾았다. 당시 안양시는 시 승격 3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안양시민축제에서 안양의 역사와 과거를 담은 '닐 미샬로프 특별전'을 열었으며 그에게 명예시민증을 전달했다. 그는 보관했던 1300여점의 한국 관련 사진 자료들을 2017년 국가기록원에 기증했다. 

서울에서 남서쪽으로 20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안양 리(Anyang-Ri) 탄약보급창(ASD)의 유지보수 과정중에 민간 수리공이 M6A2 대전차 지뢰 폭파장치를 청소하는 모습.
서울에서 남서쪽으로 20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안양 리(Anyang-Ri) 탄약보급창(ASD)의 유지보수과정중에 민간 수리공이 산탄 표면에 줄무늬를 하얀색으로 분사하여 만드는 모습.
서울에서 남서쪽으로 20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안양 리(Anyang-Ri) 탄약보급창(ASD)에서 한국육군 제575탄약중대와 미육군 제58병기중대가 2.5톤 트럭 뒤쪽을 유개화차에 연결하여 군수품을 내리는 모습.